니즈와 구매요인
마케팅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뭐냐? 라고 하면 단연 KBF(Key Buying Factor)다. 시장에서 니즈는 확인 됐다는 전제하에 어떻게 하면 고객이 사줄까?에 집중하는데, 이걸 구체적 요소로 정리한 것이 KBF다. 그리고 거의 모든 제품서비스의 KBF 1등은 "가격"이다. 사치재의 경우는 좀 다른 경향이 있지만 순위가 1등이 아닐 뿐, 가격은 에르메스 켈리백을 살 때도 중요하다.
1등이 가격이라고? 그럼 우리도 가격으로 어떻게 해보자고 생각하는 단순한 경영자나 마케터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격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것은 기업에 인프라가 갖춰져 있고 리소스가 풍부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제품서비스를 전체 밸류체인에서 가격 위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일련의 인프라가 그 목표에 얼라인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인프라는 보통 자체 보유인 경우 가장 효율적일 가능성이 높다. 시장의 압도적 리더나 시장 장악을 위해 전 역량을 집중할 때 보통 가격 정책을 많이 쓴다. 일단 가격으로 아무도 덤비지 못하게 만들어 놓고 슬금슬금 가격 정책에서 선회하는 것이다. 최근의 쿠팡을 생각하면 된다. 4900원이라는 압도적 멤버십 가격으로 시장을 장악하는데 수 년이 걸렸고 최근 두 배 조금 못되는 가격으로 멤버십을 올렸다. 이탈도 꽤 있다고 하지만 이미 코 꿰인 많은 사용자들은 멤버십 해지시의 불편이 3천원보다 크다고 생각해서 따라간다.
제품서비스 사용에 본질적이고 직접적 경험을 만들어내는 3~7개의 주요 구매요인이 가격을 비롯한 1~2위 KBF 다음에 엎치락 뒷치락 따라가고, 그 아래로는 조금 덜 중요하거나, 다른 요인과 엮였을 때 파워를 발휘하는 요소들이 따른다. KBF 목록의 중간부터 꼬리까지에는 해당 시장, 산업분야에서 뜨기 시작하는 혹은 새로운 소비자들이 진지하게 고려하는 구매요인이 숨어 있다. 트래킹하지 않고 몇 년에 한 번 씩 시장을 들여다 보면 어?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게 왜 중요해졌지? 싶은 KBF들이 눈에 띄게 되는 것. 환경 변화로 인한 것, 소비자의 세대 변화로 인한 것 등이 여기에 숨어 있다가 어느새 10위 이내의 주요 구매요인으로 부각된다. 그제서야 부랴부랴 시장조사를 하면서 KBF 목록을 수정하는 일도 흔하다.
KBF를가 어떻게 하면 (소비자가) 구매할 것인가라고 말하지만, 조금 더 명확하게, 세분화 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어떻게 하면 살래?라는 질문으로는 아무 것도 얻어낼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가격이 저렴하면 사겠다는 답이 압도적인 경우, 스타트업이나 리소스가 적은 브랜드는 보통 시장에 임팩트를 줄 수 있을 만큼 가격을 낮출 수 없는 상황인 경우가 많으니 물어보나마나 한 결과를 얻게 된다. 이 때, 질문을 바꿔야 한다. 즉 프레임의 전환이다.
1) 왜 안사는가? 무엇이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가?를 찾아낸다.
2) 무엇 때문에 샀는가 & 무엇 때문에 계속 사용하는가? 구매 동인과 반복 구매 동인이 다를 수 있고, 반복 구매가 일어나지 않으면 성장이 어렵다. 즉, 로열티를 만드는 요인을 찾아낸다.
1에 대한 답이 가격인 경우가 아주 아주 많다. KBF의 1순위가 가격인 것과 같은 이유다. 사람들은 진짜로 비싸서가 아니라, 그 가격을 줄 필요를 느끼지 못할때 비싸다, 가격이 문제라는 이야기를 한다. 물론 진짜 비쌀 수도 있다. 그런데 모든 가격은 가치판단에 따라 싸다 비싸다가 결정된다. 1만원짜리가 비싸서 안사요라는 말은 몇 억 짜리 자동차를 구매하는 사람도 한다. 그 사람에게 1만원이 큰 돈이어서가 아니라, 1만원의 가치가 없다는 뜻인데, 자신이 기대했던 혜택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비슷한 브랜드보다 두 세배 이상 비싸다 해도 이유가 분명하고 그게 자신에게 의미가 있으면 비싸지만 산다. 의미가 없으면 비싸서 안산다가 되는 것이다.
또한 다른 많은 요인들을 일일이 설명하기 어려울 때 가격이라는 단일 요인을 든다. 사야하는, 사면 좋을거란 사실을 알지만 다른 이런저러한 것들이 좋을 것 같은 생각보다 훨씬 크면 마음에 들지 않지만/다른 불편함이나 싫은 것들이 있지만 다 설명하기 귀찮고 복잡하니 가격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비싸요! 라는 말을 그대로 믿고 9천원? 8천5백원? 하는 순간 망테크를 탄다. 잊지 말자, 가격은 모든 것을 합리화하는 아주 멋진 핑계다.
그러니 왜 안사는가? 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여러가지 답변이 나오는데, 항상 비구매요인은 구매요인보다 단순하고 포괄적, 함의적이다. 특히 가격 외에는 필요를 못 느껴서라는 답이 엄청나게 많다. 필요없어?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영원히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왜 필요를 못 느끼지? 라고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그 때는 소비자에게 답을 달라고 하는 것보다는 행동과 습관을 살펴봐야 한다. 사람들은 말과 행동이 다르다. 백프로의 진실을 말한다고 하지만 행동은 10프로의 진실을 반영한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욕망이기 때문이다. 의지와 명분은 그렇게 할 여력이 있을 때 잘 작동한다.
왜 한 번만 사는가? 더 사지 않는가의 답을 찾으면 장기적인 시장 수요를 받아낼 수 있는 결정적 차별점을 만들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 내구재라서, 산업재라서 반복구매가 힘들거나, 아주 오래 걸리는 경우는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구매주기가 길 경우 한 번 구매한 제품서비스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사용되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뭔가를 찾으면 된다.
과자나 음료수 같은 소비재, FMCG의 경우, 맛이 좋아서 계속 사게 만드는 방법도 있고, 특정 상황과 제품사용을 결부시켜 구매해야만 한다는 무의식적 의무감을 심어줄 수 도 있다. 혹은 구매행위 자체가 재미있거나, 제품 자체의 재미를 주는 것도 가능하다.
왜 안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았다 치자. 진짜로 그 제품서비스가 소비자에게 필요 없을 수 있다. 무료로 준다면 사용하겠다, 무료로 준다해도 사용하지 않겠다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말 필요없다니 제품을 접자? NO! 그럴때 피봇팅을 해야 한다. 여기서 PMF(Product Market Fit)가 등장한다.
어떤 니즈를 충족시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과연 하나뿐일까? 그렇지 않다. 아주 다양한 해결방안을 시장은 제시한다. 내가 가진 제품서비스로 특정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나?라는 질문에 답이 아닌 것 뿐이다. 여기서 관점이 소비자냐 회사냐를 결정해야 한다. 내 제품으로 돈을 벌겠다라고 생각하면 조합해 놓은 니즈를 모두 버리는 니즈 피봇팅을 해야 한다. 니즈를 만족시켜 돈을 벌겠다고 생각하면 내 제품서비스를 일단 잊어야 한다. 양쪽 모두 특정해 놓은 상태에서 그 두 가지를 엮으려고 애쓰다 실패한다. 물론 아주 천재적으로 그 두개를 연결시키는 방법, 중개자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보통 뭔가 살짝 바꾸면 혹은 어떤 상황을 살짝 건드리면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 고민 할 사이에 내 제품이나 니즈 둘 중 하나를 고치는게 빠르고 경제적이며 확실하다.
시장은 끊임없이 세분화되고, 니즈는 다변화한다. 한 시장에서 니즈가 존재하지 않거나 충분히 수요화 되지 않으면 다른 시장으로 가야 한다. 싸움의 장을 바꾸는 것이다. 이 피봇팅은 마케팅에서 상당히 자주 써먹는다. 이 제품서비스가 충족켜 주는 니즈가 의미 없다는 뜻은 돈을 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수박에 줄을 하나 더 긋는다고 더 맛있는 수박이 되지도, 더 영양가 있는 수박이 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제품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 중에 돈을 내거나, 행동 변화까지 하고자 하는 것이 있는가를 찾아야 한다. 소비자가 그 제품을 어디에 좋다고 인식하고 사용하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행동파악에서 도출될 수 있다.
특정 니즈를 기어코 해결하겠다면 제품서비스가 바뀌어야 한다. 그걸 소비자 입으로 확인하려고 하면 백이면 백 실패한다. 헨리 포드가 자동차를 만들고 한 말이 사람들은 더 빠른 말을 원한다고 했을거라는 거다. 더 빨리, 편하게 이동하고 싶다는 니즈에 맞는 것이 빠른 말이었던 시대에 머물렀다면 말의 종자를 개량하여 아주 빠른 말을 만들거나, 아주 많은 말이 끄는 더 크고 편의시설이 좋은 마차를 만들었을 것이고, 자동차 산업은 없었을 것이다. 새로운 차원으로 니즈를 해결하는 것은 PMF에서 혁신에 해당한다. 나올게 거의 다 나온 지금은 아주 드물기도 하다.
KBF처럼 니즈도 긴 꼬리를 갖고 있다. 처음 제품서비스를 기획할 때 이거다!라고 생각한 니즈가 실제로는 꼬리 끝에서 두 번째일 가능성도 있다. 니즈는 존재하되 돈이 되지 않는다면 버려야 한다.아무 영향력 없는 KBF가 단순히 차별화된다고 매달리다가 비즈니스를 망치는 경우가 있다. 차별화되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케팅 불변의 법칙이 나온 몇 십년 전에나 먹힐 법한 얘기다. 소비자에게 의미있게 차별화되지 않으면 수박에 줄 하나 더 긋기밖에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