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 첫날
오렌지주스 4.0
커피 2.0
알베르게 12.0
순례자 메뉴 10.0
9시 출발
11시 반 오리손산장 도착
너무 빨리 도착해서 당황하며 커피 한잔 마시다가 숙박 취소를 하고 론세스바예스까지 왔다.
총 구간 27.1km ㅠㅠ
중간에 사과하나 먹고 에너지바 하나 먹고 물 마시고. 그런데도 소화는 안되고 배는 고픈 알 수 없는 상태..
오리손 산장 이후부터는 똥과의 싸움.. 양과 말, 염소, 소 들이 여기저기 자유롭게 싸 놓은 똥을 피하려고 하는데 피할 수도 없는 수준의 똥칠한 길들은 그냥 참아야 함. 인생이 그런 거 같다. 더러운 상황, 관계들을 피해보려 노력하지만 전체가 다 그러면 그냥 거기를 빨리 탈출하기 위해 열심히 앞으로 걸어갈 수밖에.
무거운 짐을 지고 곧 내리막이나 평지가 있겠지 하며 걷는데 문득 부모님 인생이 그랬을까 싶은 생각이 들며 울컥했다. 애가 넷씩이나 되고, 출세는 자꾸 멀어지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길가며 4명의 한국인 청년들을 만났지만 굳이 말을 붙이지 않았다. 자기네들끼리 재미있는 거 같아서. 그런데 론세스바예스에서 알베르게 찾다 결국 말을 트고 밥을 같이 먹음. 일본 청년이 합석해서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영어가 짧고 시끄럽고 해서 몇 마디 도와주며 껴들게 됐는데 그들은 그게 별로 달갑지 않은 눈치였다. 그 이후로 그들과는 만나도 간단한 인사만 하게 되더라.
길에서 만난 미국 여자는 짐 보내고 간단한 배낭만 메고 왔는데 덩치가 있어서인지 매우 힘들어했다. 초코바 꺼내 주며 말 텄는데 자기 전남편이 한국 여자랑 결혼해서 자기 아들은 하프코리안 브라더 둘 생겼다고 함. 힘들다면서도 계속 말을 하며 가니 정말 더 힘들지. 오늘 제대로 왔나 모르겠다.
일본인 모녀도 만났는데 보기 좋았다. 작년에 혼자 왔다가 너무 좋아서 올해 어머니 모시고 왔다고, 로그로뇨까지만 걷는다고 했다. 우리 엄마도 가고 싶어 하셨는데.. 엄마가 60대만 됐어도 함께 왔을 거 같은데.. 요새 너무 못 걸으시니 이런 모녀 여행은 이제 꿈꿀 수도 없다. 내가 좀 더 일찍 철이 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론세스바예스 공립 알베르게는 시설이 매우 크고 현대적이다. 피레네를 넘어온 거의 모든 순례자가 여기 머무르는 듯. 물론 주위에 작은 호텔 두어 개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 머문다. 난 6시 정도 늦게 도착해서 샤워실 근처 침대를 배정받았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관계로 좀 시끄럽고 번잡스럽지만 그래도 깨끗한 잠자리에 감동. 락커도 있고. 이렇게 깨끗한 숙소는 전체 여정에서 한 손에 꼽을 만큼 드물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7시에 순례자 식사가 시작되어 식당을 갔다.
순례자 메뉴는 수프, 마카로니, 치킨/생선구이, 요구르트로 구성되었는데 물잔도 그릇도 1인당 딱 하나.
대신 메인 요리는 별도로 서빙되어 나온다. 흡사 발우공양 같다..
내일은 수비리 가서 빨래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