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2일 차
숙소 8.0
빨래 3.0
식품 2.5
6시 기상.
시간 되니 다들 알아서 일어나고 알람도 울리고 오스피탈레로들이 굿모닝! 하며 칸칸마다 깨우고 다닌다
세수하고 이 닦고 짐 챙겨 나서니 7시. 비가 내린다.
한 시간쯤 걷다 캐나다 이민 40년이라는(이건 나중에 알았음) 아저씨가 한국인이냐 묻더니 이야기하며 가게 됐다.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쓴 집이라고 사진 찍어달라 하고 내 사진도 한 장 찍어줌
아저씨와 가다가 나만 8:30쯤 커피숍에 들어가 오렌지주스와 커피 한잔 시켜 마시다 미국인 아일린, 이태리 여자(이름을 기억 못 한다.. 영어 발음이 엉망) 하고 합석했다. 마침 순례길 온 주인을 따라다니는 집채만 한 시베리안허스키가 밖에 있다 카페 창으로 얼굴을 디밀어 깜짝 놀라고 카페 안은 온통 웃음바다에 이야기 꽃이 활짝 피었다.
판초를 입고 걸었더니 속옷까지 흠뻑 젖어 덥고 힘들었다. 오후 되니 비 그치고 날씨가 좋아졌다.
수비리에 도착하니 파란 하늘! 오늘은 빨래하는 날! 어제 빨래와 오늘 빨래 모아서 하고 드라이머신에서 말렸다. 입고 왔던 바지가 불과 하루 만에 여유가 생겼다. 밥을 잘 못 먹은 게 큰 것 같다.
두 번째 들른 카페에서도 밀크커피랑 오렌지주스밖에 안 먹었고 갖고 있는 과자, 말린 살구도 손이 안 가서 계속 가지고 다니기만 하고 있다.
오늘은 일본인 순례자 무덤도 하나 봄. 왜 순례자 무덤만 보면 울컥하는지 모르겠다.
네덜란드에서부터 걷고 있는 부부를 두 번째 카페에서 만났는데 4월 27일부터 집에서 출발, 걷기 시작해 벨기에, 프랑스를 거쳐 산티아고를 향해 걷고 있는데 지금까지 전체 여정의 3분의 2가 지났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남편인 앙드레의 초록색 안경테가 매우 예뻤고 와이프인 모니크의 백발이 매우 인상적.
수비리 오는 마지막 코스에서 한국인 두 명을 만났는데 26세 아가씨는 다리를 절뚝이며 네덜란드 남자와 같이 걷고 있었고, 강원도 출신이라는 김미현이라는 또 다른 한국 아가씨와 같이 천천히 걸어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둘이 같이 빨래 돌리자고 해서 돈 모아 건조기에 빨래 말리면서 저녁으로 미현씨가 갖고 있던 닭고기 수프를 끓이고 빵을 사 와서 저녁으로 먹었다. 미현씨를 만난 이 날은 내 인생에 정말 중요한 날이 되었고, 이 때는 그걸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아침에 만났던 캐나다 이민 아저씨가 숙소에 먼저 와 있으며 저녁 먹는 자리에 합석을 하더니 현재 한국은 모든 것이 잘못됐고 박정희 아니었으면 지금도 고속도로 없을 거고 이명박이 하려던 대운하 못한 건 큰 실수이자 실패고 그래서 글러먹었고.. 어쩌고 하는 일장연설을 한다. 아 어머니, 왜 저는 여기서까지 이런 꼰대를 만나야 합니다..
테니스공으로 열심히 마사지 하지만 근육통은 여전. 오른발 볼에 직경 0.8센티 물집이 잡혀 아프다. 왼발 새끼발톱은 빠질락 말락 하고. 물론 아프고.
한 인간의 일생에서 고통의 총량이란 것이 있을까? 고통은 끊임없이 자가 증식하고 고통 인자의 확대만 가능할 뿐 줄어들거나 사라질 순 없는 것 아닐까?
무겁고 힘든 짐 진 자여 내게로 오라-이거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 맞던가? 어제 피레네를 넘어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에 도착한 순간 이 말이 생각났다. 무겁고 힘든 짐을 지고 고통스럽게 피레네를 넘으며 인생은 인내의 연속이 아닌가, 반려자나 가족이란 건 그 고통을 함께 나누고 서로를 밀고 끌어주는 존재가 아닌가, 난 그런 나만의 새로운 가족은 없구나, 부모님이 내가 가진 전부이구나 싶어 슬펐다.
캐나다 아저씨의 말도 안 되는 말이 내 기준엔 그렇지만 그의 입장에선 백 프로 당연한 거. 싫은 말 할 때 아 당신은 그리 생각하는군 이라는 생각과 태도를 보일 수 있었으면 좋을텐데 번번이 되지 않는 일이다. 45년을 살아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인가?
인간은 간사하다. 한밤중 창밖에서 비춰들어오는 가로등 불빛만 없어도 원이 없겠다 싶다가 자세를 바꿔 불빛이 가려지니 또 다른 바람이 생긴다. 이게 결국 가장 원초적인 욕망 또는 결핍이 충족되거나 해소되고 나면 다음 단계의 욕망이 즉시 나타나는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의 실체 아닌가? 그런 점에서 권력자들과 기득권자들은 민중을 가장 원초적 수준의 욕망의 단계마저 만족시킬 수 없도록 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시급하고 절대적 욕구가 해결되고 나면 그다음을 요구하고 그게 반복되면 자신들이 가진 것을 끊임없이 내줘야 하니까. 또한 그들이 가진 것들이 항상 정당한 수단과 방법으로 획득한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기득권의 포기 또는 일정 정도의 나눔을 요구하는 자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생각의 기본적 틀을 이루는 기본 조건인 듯하고
이 여행의 외적 내적 조건에 몸이 익숙해질 때쯤이면 여행이 끝나가겠지? 매일매일 20킬로 이상의 행군, 빨래 그리고 식사, 이른 취침과 여기저기 뒤척이는 소리와 코 고는 소리, 이른 기상, 그리고 그걸 견뎌내는 정신줄. 반복. 가장 단순해지기 위해, 가장 단순한 삶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내가 여기 온 것일까? 오늘 낮에 걸으며 내가 여기 온 진짜 이유를 생각해 보니 답이 "허세"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 여행이 아직 보편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희소성 때문에 내 자만심이 끌린 게 아니었던가? 그리고 지위로서 내 능력을 입증하는 게 불가능해지니 뭔가 다른 걸로 나를 증명하고 보여주고 과시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사람을 만날 때 내놓을 명함이 없는 삶이 처음이고 그게 당황스러운 나머지 다른 것으로라도 나를 어필하고 싶어서? 결국 허세다. 어쩌면 보통 인간은 그 허세 때문에 살아갈 힘을 얻는 거 아닐까? 자신을 무엇으로든 계속 의미가 있음을 강변하고 살아야 하는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