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유리천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리스탈 Nov 11. 2016

1월17일

첫직장 입사일

나는 CJ 공채 1기다.

지금도 대기업 취직은 너무 힘들지만, 22년 전 지방국립대 인문계열 여자가 대기업에 공채로 취직을 한다는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 동기, 선후배 남자들은 모두 대기업이나 은행, 공사 등에 취업한데 반해, 여자 동기나 선배언니들은 공무원이 되거나, 스튜어디스 시험을 치거나, 중소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993년 가을, 삼성그룹에서 독립한 제일제당이-CJ로 이름을 바꾸기 한 참 전이니- 첫 공채 공고를 냈는데 모집 인원에 여직원 30명이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할당 인원이 있었다. 요새는 어떤 채용공고에서든 남녀 인원을 할당하거나 성별을 제한하면 문제가 되지만, 그때는 여직원을 할당을 하더라도 뽑는다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다. 더구나 총 130명 모집에 여자가 30명이라니, 채용시장의 폭탄 같은 공고를 보고 학교가 술렁였다.

제일제당이라면 서면의 설탕공장과 다시다로만 알고 있던 회사였는데, 단번에 여권신장에 기여하는 깨인 기업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나는 당시 언론사 공부를 하는 중이었는데 머리 식히러 도서관 휴게실에 비치된 열개 남짓 신문철을 뒤적거리다 그 공고를 보았다. 어차피 시험 과목도 영어와 상식으로 동일하길래 언론사 시험 연습삼아 한번 볼까, 그러다 합격하면 그것도 나쁘지 않지 하는 생각에 지원서를 냈다.

시험장은 부산의 모 대학교였는데, 그 학교 내 건물을 여러군데 썼다. 시험장이 전국에 몇 군데 있었으니 경쟁율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어와 상식을 봤고, 시험 보고 나온 느낌이 홀가분했다. 잘 봤다 못봤다도 아닌 홀가분하다는게 딱 맞는 느낌,  햇살 좋은 가을이었다. 


몇 주 지나 합격자 발표를 보니 내 번호가 있었는데,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 보고 나오는 느낌이 만점인거 같았으니, 어쩌면 한두개 틀리지 않았을까 싶다. 초겨울에 서울에 면접을 보러 갔다. 몇배수를 뽑았는지 엄청나게 많은 인원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들 똑똑해 보였지만, 뭐 설마 내가 떨어지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5명 정도의 지원자가 들어가 3~4명의 면접관을 보는 다대다 면접이었고, 여러가지 질문이 있었는데, 지금도 기억 나는 질문이 딱 하나 있다. 과정이 중요하냐, 결과가 중요하냐.

다들 자기 생각들을 말했고 나는 결과쪽을 선택했다. 아무리 과정이 좋다한들, 기업에서 결과를 내지 못하면 과정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좋은 과정은 좋은 결과를 만든다는게 내 의견이었다. 좀 공격적으로 말했던 것 같기도 한데, 면접관들 표정은 포커페이스라서 알 수 없었다.


최종합격자 발표날이 왔고, 당연히-그때 내 생각으로는-내 이름이 있었다. 면접에서 잘 대답을 한 건가? 생각을 했고, 어쩌면 시험성적이 너무 좋아서 못 떨어뜨렸나? 이런 망상도 했다. 어쨌든 합격했고 입사통지서가 왔는데 1월 17일 새벽 7시, 시청앞 삼성생명 건물 지하 강당으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1월 17일. 그날이 내 사회생활의 첫 발을 디딘 날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