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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탈 Dec 31. 2016

조사결과를 맹신하면 안되는 이유

소비자조사 결과에 대한 오해와 비약은 괴물을 만든다

소비자의 unmet need를 찾기 위해 제품이 사용되는 상황을 관찰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의외의 불편과 불안을 발견하게 되고, 그 점을 해결해 주어 성공하는 브랜드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소비자조사는 세심하게 설계되고, 결과는 금과옥조처럼 여겨진다.  그러다보니 소비자조사의 내용을 너무나 절대적으로 생각해서 토씨 하나까지 다 떠받들고 해석하느라 전전긍긍하고, 심지어는 중요하지 않은 것을 극단적으로 확대해석 해서 큰 실패를 하는 경우도 생긴다.

CJ가 생활화학본부를 가지고 있을 때 출시 된  한 섬유유연제는 지금까지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많은 제품, 브랜드 개발과 마케팅 사례 중 소비자조사 결과 해석의 최악의 오독, 논리 비약 사례이다. 그 결과 개발 단계의 문제는 물론, 출시 직후부터 단종될 때까지 끊임없이 사고와 판매부진에 시달렸다. 근본적으로 제품력 열세와 낮은 가격경쟁력 등,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모든것의 원인은 제품 기획 단계에서 소비자조사 결과를 잘 못 이해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핵심구매이유 KBF(Key Buying Factor)와 포지셔닝

소비자가 거부한 컨셉, 제품 특성, 패키지 등을 고집부려 지키고 그대로 출시할 간 큰 마케터는 거의 없다. 소비자가 더 좋아할 만 한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마케터는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하는데 그 방법 중 하나가 조사(Research)다. 소비자조사는 종류도, 성격도, 방법도 다양해서 무엇을 알고자 하느냐에 따라 선택지가 달라진다. 제품의 인지도나 선호도가 궁금한 경우, 제품력이 경쟁 제품 대비 어떤지 알아봐야 하는 경우, 제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확인해서 불편함을 해소해 주고자 하는 경우 등 각각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데, 만약 신제품을 출시하려고 한다면 광범위하고 다양한 조사들을 기획하고 실행해야 한다. 제품 카테고리에 대한 인지나 사용현황, 새로운 트렌드 확인, 신제품 컨셉 수용도와 가격수용도, 제품력 평가 등등 거쳐야 할 조사가 많아서, 조사하다 지친다는 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브랜드가 속한 제품군의  핵심구매요인, 브랜드별 인지도나 선호도, 가격지도, 새로운 트렌드 등등을 꼼꼼히 그리고 꾸준히 확인하다보면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소비자 행동을 발견하기도 하고, KBF 순위가 바뀌었다던지, 광고로 인해 인식(Perception)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공들여 조사한 결과는 보통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든 조사결과를 백퍼센트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물론 제품력의 경우는 조사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컨셉테스트나 브랜드에 대한 태도, 카테고리 특정한 불만이나 칭찬 같은 모호하거나 의문스러운 이야기가 주관식으로 나오면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마음에 든다고 했지만 점수는 압도적으로 높지는 않고, 불만이 뭐라고 하긴 했는데 그게 밑줄  그어야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고... 조사설계를 완벽하게   놓으면 그런 응답까지도 중요도를 판단할  있겠지만 그건 사실 불가능한 이야기고, 보통은 한계가 있고 그걸 알고 시작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기준이다. 제품이나 카테고리를 판단할 수 있는 잣대, 보통 핵심구매요인(KBF-Key Buying Factor) 이라고 하는 것을 정해 놓는다. KBF 역시 소비자조사를 통해 알아 낸 것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우선순위가 달라지기도 하고, 없던 항목이 추가되거나 사라지기도 한다.


보통 제품편익을 뽑아보면 수십가지가 나오는데 제품이 속한 카테고리의 중요한 가치 축을 세워 사분면에 편익을 배치해 보면 중요도와 해결필요성이 밝혀진다. 편익의 중요도 순위가 몇위인가도 중요하고, unmet need를 채우고자 하는 소비자의 의지의 강도도 중요하므로 둘 다를 만족시키며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 찾는 것은 중요하고, 포지셔닝의 전 단계라 할 수 있 다. 특히 새로 시장에 진입하는 브랜드인 경우, 기존 브랜드에 각을 세워 강점을 가질 수 있는 혜택인가, 해당 시장의 파이를 키워갈 수 있는 강력하고 미발견된 편익은 무엇인가, 아니면  시장점유율을 넓혀 갈 수 있는 확실한 편익은 무엇인지, 어느 편익을 가지고 소비자에게 소통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보통은 KBF의 우선순위대로 제품을 만들고, 대외적으로 소구할 메시지도 그에 의거해 결정한다. 그래서 맵을 그려보면 거의 모든 브랜드들이 비슷한 지점에 와글와글 모여있다. 중요도 높고 영향력도 가장 큰 가치를 구현하는 편익을 갖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엄청난 경쟁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이 단점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KBF이기는 하지만 아무도 강조하지 않던, 다소 순위가 낮은 항목이 소비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면서 카테고리 내에 새로운 포지셔닝을 하기도 한다. 그러려면 새로이 제시하는 것이 소비자들 전반에 얼마나 광범위하게 인지되고 있으며, 드러나지 않은 중요도가 얼마나 되는지, 문제를 해결 할 경우 소비자 행동이나 구매행태에 어떤 변화를 얼마나 일으킬 수 있는지 예측해 본다.

제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대신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것을 가지고 소비자의 주의를 끌고 지갑까지 열게 만들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선순위 낮은 항목으로 제품을 특화하자고 결정할 때는 소비자도 경쟁자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중요한 함의를 발견하고, 해당 KBF를 소구할 기술이나 제품력이 확실히 차별화되어서 카테고리를 다시 정의내릴 수 있을 수준이 되어야 한다. 즉, 시장을 재편할 수 있을만큼 확실하고 강력해야 한다. 성공하면 KBF순위가 바뀌고, 시장판도도 바꿀 수 있다.

고전적인 마케팅사례인 오비와 하이트의 물싸움이다. 맥주를 만드는 물이 좋다, 깨끗하다는 것은 맥주 맛이라는 KBF 대비 상대적으로 덜 중요했다. 그러나 맥주맛으로 수십년 승승장구하던 오비가 수질오염을 일으키자 하이트가 맥주의 대부분이 물이라며 깨끗한 물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승부를 걸어 시장을 뒤집었다.

결국 KBF 항목도 바뀔 수 있고, 우선순위도 달라질 수 있다. 단, 소비자가 인정할 만한 근거와 상황 하에서.

 


덜 중요한 KBF, 독특한 포지셔닝

섬유유연제의  KBF 1,2위는 각각 유연효과, 향이다. 제품의 정체성이 빨래를 부드럽게 해 주는 것이니 유연효과가 1위인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향은 빨래의 상태가 이상적인 상태가 되었음을 감각적으로 인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모든 세제류 제품에서 향은 매우 중요해서 KBF TOP 5에 항상 들어가고, 특히 섬유유연제에서 향은 다른 세제류 제품에서보다 훨씬 더 중요한 요소다. 본질적 기능인 유연효과의 후각적 표현이면서, 그 자체로 브랜드에 대한 심상을 풍부하게 하고, receptive하게 만드는 감각적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잘 마른 빨래를 받아드는 장면을 머리 속에서 그려보라고 하면 빨래의 질감은 뻣뻣하지 않으면서 뽀송뽀송하고, 좋은 냄새가 나는 모습을 그린다고 한다.

섬유유연제 시장에서 제일 중요한 두 KBF에서 압도적인 수준을 보이는 1등 브랜드는 피죤. 그때나 지금이나 피죤의 아성은 대단하다. 그러니 어떤 방법으로, 어떤 제품으로 피죤에 대응해야 할지 담당자는 고민이 컸을 것이다.


그래서 개발한 제품 포지셔닝이 '헹굼물이 맑은 깨끗한 섬유유연제'였다.

소비자의 불만 사항 중에 헹굼물이 탁해서 뭔가 찜찜하다는 내용이 계속 탐지되고 있었고, 그것이 피존마저 놓치고 있는 소비자의 강력한 unmet need라 판단한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섬유유연제 내용물은 불투명한 파스텔 색상이다. 그러니 거기다 빨래를 헹구면 당연히 물은 뿌옇다. 그런데 나는 헹굼물이 어떤지 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기본적으로 세탁기 배수관은 세탁실 바닥의 구멍에 맞게 하수구로 바로 연결해 놓기에 볼 기회도 없고 헹굼코스에 세탁기 뚜껑을 열고 물 색을 보는 사람은 없다. 손빨래 해야 하는 옷들에 써보지 않았다면 한번도 헹굼물을 볼 기회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세탁기에 섬유유연제를 넣고 헹굼물이 나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소비자가 얼마나 될까, 손빨래 할 때마다 섬유유연제를 넣는 소비자는? 나처럼 헹굼물이 탁한 것을 인지조차 못했을 가능성도 크고, 설령 불투명한 물이 나와도 섬유유연제가 불투명하니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정 찜찜하면 헹굼탈수를 한번 더 돌려도 되는 일이고. 하지만 어떤 소비자들은 헹굼물이 맑지 않아 찜찜한 기분이 든다고 했고, 지속적으로 그런 소비자들이 조사 대상 속에 포함되어 헹굼물의 불투명함에 대한 불안을 이야기 했다.

 

그런데 이 단계에서 그 불안함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인지되고 있으며, 중요도가 얼마나 되느냐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해야 했다. 나 자신이 소비자였기에 많이 생각해 봤지만 불투명한 헹굼물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유연제 자체가 불투명한데 당연한거 아닌가? 설령 섬유유연제가 맑다고 해서 뭐가 더 좋은가?라고 할 때,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는 미세성분이 섬유에 남지 않는다는 시각적 표현이다! 라고 한다면, 어차피 피부에 자극을 줄 성분이라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분자단위일텐데 헹굼물로 자극성분이 빠졌는지 어떻게 알며, 자극성분이 빠진다는 증거라면 차라리 뿌연 헹굼물이 더 신뢰가 가는거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어차피 유연제는 옷감을 부드럽게 해 주고 좋은 향기를 주는 게 전부인 액체인데 싸기는 해도 너무 많은 양을 콸콸 부어서 막 쓰고, 용량도 커서 사서 들고 오기도 무거운 불편함이 더 컸다.  

그러나 마케터는 차별화 포인트로 써 먹을 수 있지 않을거라는 확신을 했을 것이다. 탁한 헹굼물은 어쩌면 세제찌꺼기나 기타 잔여물로 인한 것일 수도 있고, 빨래가 제대로 안 된 것이라는 의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며, 만약 세제 찌꺼기나 오염이 남아있다면 그로 인해 피부자극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빨래의 마지막 헹굼물은 맑아야 정상 아닌가, 그러니 맑은 섬유유연제로 소비자의 불안을 해소해 주자, 특히 맑은 헹굼물은 빨래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는 증거고, 옷감이 깨끗해지면 피부자극이 없으니 피부보호가 되는 셈! Voila!



컨셉을 뒷받침 하는 제품력 ; 기본

여기까지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포지셔닝은 강했다. 독특했고. 컨셉이 단단한 것은 큰 장점이다. 그런데 모든 컨셉의 차별화는 제품력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불행히도 이 제품은 섬유유연제 특성상 맑을 수 없는 제형을 물처럼 맑게 만드느라 두번째로 중요한 KBF인 향이 현저하게 약해지는 단점을 안게 됐다. 몇차례 향 강화 처방으로 바꾸고 리뉴얼을 했지만 결코 경쟁제품을 따라갈 수 없었고, 몇년간 고전을 면치 못하다 단종되었다.



소비자는 별 생각없이 말하기도 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헹굼물에 대한 불안을 해결하는 포지셔닝이 답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던 이유를 모르겠다. 옆에서 보고 들었음에도 나 자신은 단 한번도 설득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하지만 마케터가 자신의 신념을 제품에 투영하기 시작하면 그 무슨 공격을 어떻게 받아도 절대로 설복되지 않는다. 조사자료를 곡해해 가면서까지 컨셉을 두둔한다. 중요도에 대한 오판과 논리의 비약이 자신의 눈에는 절대 보이지 않는다.


조사를 하면 소비자는 무슨 말이든 해 준다. 이것 저것 물어보고, 생각나는대로 다 말해 달라고 하는 질문 문구가 무슨 말이라도 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의견을 표현하는데 서투르거나, 생각이나 기억이 잘 안나는 조사대상자를 배려한 질문이지만, 그런 질문을 받으면 뭐라도 생각해 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중요한 이야기들은 다 했고, 더 할 이야기도 없는 것 같은데 또 얘기해 달라고 하는 상황이면 더 부담이 커진다. 잠깐 스쳐갔을 뿐인 생각이나 느낌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말해 주게 되는 것 같다. 나 자신도 피조사자가 되어 무엇이든 얘기해 달라는 얘기를 들으면 정말 뭐라도 얘기해 줘야 하는데 싶어 열심히 온갖 것을 다 생각해 말해 준다.

마케터는 그리고 리서처는 소비자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쓸 것과 버릴 것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 경쟁력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옥석을 가려낼 줄 알아야 하고, 아무리 좋은 포인트를 집어 내더라도 제품화 할 수 없거나, 품질이 열등한 제품밖에 만들 수 없다면 해결될 때까지 섣불리 시도해서 리소스만 낭비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면 안된다. 실패 역시 큰 자산이지만, 회사는 그만큼 돈과 시간, 시장경쟁력을 잃는다. 그 판단을 할 줄 알아야 열심히 하는 수준에서 잘 하게 되고, 좋은 마케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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