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에서 인간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최근 4차 산업혁명 관련한 글이 연일 쏟아져 나온다. 전망과 우려, 희망, 기술소개와 성공비법 등 없는게 없다. 드디어 필립 코틀러께서도 책을 출판하셨고, 이렇게 다들 난리법석을 치고 있는 새로운 흐름에 대한 버즈는 결국 우리 삶이 얼마나 바뀔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로 귀결되고 있다. 변화를 인지하며 변화될까, 아니면 당연하게 스며들어 느끼지도 못하다가 문득 너무 많이 왔구나 하고 깨닫게 될까 잘 모르겠다. 이미 변화하고 있는 세상과 기업들은 원래 당연히 그래야 했던 것처럼 요란하고 날이 갈 수록 기세 좋게 떠들기 때문에, 오히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외친다면 그것이 이상할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가장 인간다운 일 찾기
이 변화는 인공지능과 실질/가상 세계의 통합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축약되는데, 인간이 하는 대다수의 일을 기계가 학습을 통해 다 할 수 있고, 더 효율적으로, 더 싸게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확정된 미래인 것 같다. 그로 인해 인간은 이전의 첫 산업혁명 시절보다 더 가혹하게 자신의 삶에서 내쫓기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면 인간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다음의 송길영부사장은 많은 강의에서 인간은 앞으로 종교에 종사하며 근근히 먹고 살게 될 것이라는 자조같은 힌트를 남겼다. 그 힌트가 제시하는 것은 근근히 먹고 산다는게 아니라 인간은 가장 인간다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은 먹고 살아남아 종족번식을 하는 것으로 완벽히 만족하고 산다. 인간은 종종 가장 원초적인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죽음을 불사하며 추구하는 어떤 것이 있고, 잘 먹고 잘 살며 종족번식까지 할 경우는 더 높은 수준의 욕구들을 충족시키고자 한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 욕구의 바벨탑 상층부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면 결국 의미를 찾는 일로 수렴된다. 자신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자문하고, 존재의 가치를 찾는 일.
Deep Thought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보면 Deep Thought이 750만년간 계산 해 내 놓은 우주와 생명과 모든 것에 대한 궁극의 답이 42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Deep Thought은 자신이 계산해 낸 답이 정확하기는 하지만, 질문자들은 궁극의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모르고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질문을 알아내기 위한 더 강력한 컴퓨터로써 지구를 설계해 주었다. 지구는 살아있는 생물들과 함께 매트릭스 속에서 천만년 동안 답을 찾아가도록 설계되어 있었는데 8백만년째 에러가 발생하고 천만년 5분 전 우주초공간우회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파괴된다. 결국 42 역시 올바른 답은 아니었던 것이 Deep Thought보다 더 나은 컴퓨팅 매트릭스인 지구가 8백만년째 발생한 에러로 인해 뽑아낸 질문에서 나온 오답인데다 지구는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가다보면 궁극의 답과 궁극의 질문과 관련해 엎치락 뒤치락 사건들이 많았음이 밝혀지고, 우주는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대화도 나온다. 이 황당해 보이는 작품에서 내가 읽은 것은 인간은 답이 아니라 질문을 찾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질문을 찾기 위해 인간이 발전시킨 인간만의 산물을 꼽자면 종교, 예술, 철학이라 할 수 있다. 이 세 분야는 인간됨을 결정짓는 대표적 학문이자 인류 문화의 결집체이다. 여태껏 인류가 해 온 일을 딱 두 갈래로 나누면 하나는 물질세계에서의 만족추구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세계에서의 만족추구다. 더 많이, 편하게 갖는것과 더 행복하고 의미있게 사는 것. 물질의 추구는 늘 그랬듯 기술의 변화로 이뤄지고 있고 당면한 세상에서는 기계가 상상 이상으로 빠르고 효율적으로 해낼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정신의 추구에 발을 더 깊이 들여 철학, 예술, 종교와 같은 영역에서 질문을 통해 인간성을 증폭시키고 심화시키는 일을 해야한다.
한편 앞으로 사람들이 하려는 일의 성격이 바뀌면서 직업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한가지 주의할 것은 새로운 일이란 목사나 디자이너, 변호사, 감별사 등과 같이 현재 산업사회에 규정된 직업의 개념에 등가 치환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어떤 직업은 지금 모습 그대로 살아남을 것이고, 어떤 직업은 사라지고, 어떤 경우는 아주 다른 모습이 되기도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이천년 전 그리스 원형극장에서 비극을 연기하던 사람들이 있었고, 오늘날 대학로 소극장에도 뮤지컬을 공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작업환경과 방식은 달라졌지만 직업으로서 수천년을 이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가로등지기란 직업은 전기의 발명 이후 사라졌다. 대신 가로등을 켜도록 시스템을 조작하는 사람은 생겼다. 직업의 명멸은 특히 기술이 관련된 경우, 기술이 무슨 문제를 해결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므로 기술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일이 인간에게 남겨진 영역이다.
회의할 수록 강건한 철학
인간다움을 증폭시키는 일이란 무엇일까? 위에서 말했듯이 인간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회의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질문과 회의, 사유의 서클을 완벽하게 구성하고 있는 학문은 철학이다. 질문을 추구하는 행위는 완벽히 사념적이고 완벽히 개별적이라 사람마다 다르고 한 사람의 행위에서도 시시각각 변할 수 있다. 질문이 무엇이냐에 따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의가 각자 다르고, 같은 사람이라 할 지라도 상황에 따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질문이 얼마나 의미있는지, 올바른지 -올바르다는 것에 대한 가치평가는 많은 경우 상당히 주관적이고 새로운 사유의 주제가 된다 - 에 따라 찾아낼 수 있는 답의 방향성, 퀄리티가 다르고, 그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삶의 코스가 달라진다. 그리고 답이라 생각한 것의 유효성이 끝나면 회의가 오고 다시 질문을 구한다. 아무리 20세기 후반 이후 철학의 위기라 해도 철학은 여전히 강건하게 인간의 발밑을 바치고 있다. 역사적으로 특히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삶의 양상변화로 초래된 가치관의 문제에 대해 철학은 늘 먼저 질문을 해왔다. 더 큰 변화와 더 큰 편리함이 있었던 시기일 수록 더 많은 질문이 있었고, 지금 맞이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시기가 일으키고 있는 변화는 전대미문이다.
인간이 철학을 통해 해야할 일은 닥쳐올 변화에 대한 화두를 찾고 논의하는 것이 아닐까. 기술은 자체가 도덕도 비도덕도 없고 자비도 관용도 없다. 기술을 가진 인간이 비인간적으로 기술을 악용하지 않게 해 온 철학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는 시기다.
최근 관련 전문가들은 AI의 가능성은 무한하고 불확실성의 내재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로봇의 진화가 데이터 처리의 정합이 아니라 인간과 같은 불완전성으로 발전하는 지적생명체에 이르는 날이 온다면 블레이드러너의 휴머노이드처럼 자신이 로봇인줄도 모르는 로봇이 존재할 수도 있을것 같긴 하다. 스스로 사유하여 존재를 탐색하는 힘을 가진 로봇을 만드는 것이 인류에게 무슨 유익함이 있을까? 생각마저 로봇에 대신하게 하는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면 인간이 매트릭스의 에너지 생산 포자로 전락하는 것은 한 순간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상상력이 클 수록 상상이 현실화되는 속도도 빨라지므로 안심하기는 어렵기는 하다..)
예술과 사유의 영역으로
단순반복적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런 것을 더 잘 하는 소위 육체파인 사람들에게 철학을 떠먹여 줄 수는 없다. 자동차 엔진소리의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완벽한 튜닝을 해 내는 엔지니어들은 밥숟가락도 놓고, 재취업도 못하는건가? 그렇지 않다. 여기서 예술의 영역이 빛을 발한다.
바야흐로 크라프트맨십Craftmanship이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시기다. 쉽게 말하면, 수작업자동차 장인이 되는 것이다. 모든 엔지니어가 수작업자동차 예술가가 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많은 수의 사람들은 수작업자동차의 예술성에 대한 비평가가 될 것이고, 소비자가 될 것이며,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여전히 취미로 엔진을 뜯어보게 될 것이다.
모든 기술은 충분히 보편화 되면 예술이 된다. 그림이 그랬고, 사진 기술이 그랬으며, 요리가 그러하다. 기계로 찍어 낸 동전도 기계의 오류로 인한 찌그러짐 때문에 수집품이 되듯, 인간만이 만드는 완벽하지 못한 완벽성에 가치를 쳐 줄 수 있게 된다.
변화를 주도할 공적 엑셀러레이터
다른 문제는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이다.
그쪽 소식에 눈과 귀를 열어 보고 있노라면 지금껏 느꼈던 사회변화의 속도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빨라지고 가속도도 붙고 있는데,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당장 발등에 불 떨어지기 전까지는 무슨 변화?? 일 뿐인것 같은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물론 나 역시 준비하고 있지 않아서 더 답답한 상황이다.
사실 기업은 지금까지 그랬듯 항상 변화에 준비하며 산업의 구조와 본질을 바꿔가지만 그 내용을 종업원들에게 명확히 알려주는 경우는 없다. 고용의 불안이 가져올 제품,서비스 퀄리티 저하나 기업평가에 대한 부정적 우려 등 손익계산으로 절대 내부의 사람들이 변화할 기회나 시간,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렇게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일자리란 그 일자리로 소비를 하던 소비자의 증발이다. 돈이 돌아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 경우 당장은 누군가의 호주머니에 돈이 더 들어가기는 하겠지만, 소비자의 씨를 말려버리는 쪽으로 갈 것 같은 낌새다. 앞으로 더 많이, 오래 가질 수 있는 파이를 스스로 줄여가는 바보의 선택을 범국가적으로 하게 될 것 가능성이 높다.
변화의 속도를 늦추기는 어렵다. 늦춘다는 것은 기업에게는 경쟁에서 탈락하고, 사라지는 것이므로 절대 선택하지 않을 독배다. 그래서 국가가 나서서 기업이 종업원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지 않도록 할 방법을 찾게 하고, 경제와 산업구조, 그를 위한 교육의 판을 새로 짜야 하며, 세계 경제에서 밀려나지 않고 이용되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안전할 것 같은가? 로봇 인사팀장은 기업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조용히 부패하고 무능해지는 관료조직에 더 필요한 것이 개인의 감정에 의한 평가나 부패의 염려가 없는 로봇인사팀장이다. 손 놓고 있으면 대규모 공무원 해고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있는가? 큰 정부가 필요하다고 해서 구성원이나 역할수행자가 모두 사람일거라 확신한다면 큰 판단착오다. 로보캅은 이미 몇십년 전에 나온 영화가 아닌가?
4차 산업혁명일지, 3차 산업혁명의 업그레이드일지 무어라 정의가 되던 상관없이 공적 엑셀러레이터 역할을 해야한다.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