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정체성 그리고 자아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엄마라는 역할에 잠식되어 나도 모르게 나를 지워가며 살아왔다. 그러다 우연히 심리상담이라는 계기를 통해 나의 내면을 들어다 볼 기회를 가졌다. 막연하게 엄마로서 꿋꿋이 사는 것이 미덕이라 여겨온 몇 년의 시간들과 아이만 바라보는 것이 당연해진 일상 속에서 사실은 괜찮지 않았던 나였음을 고백해보려 한다. 이건 느린 아이를 키우는 한 엄마의 이야기지만 일상이라는 이름 아래 나 자신을 잃은 모든 사람에게 건네는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2022년 아이의 자폐 스펙트럼 진단 이후 태연하려 애써봤지만 결국 몸도 마음도 산산조각이 났었다. 그 고통의 시간 속 피눈물을 흘려도 놀라지 않을 만큼 울부짖고 또 울부짖었다. 우울증, 공황장애, 무기력증 등이 숨을 조여왔고 왜 하필 나냐고 아니, 왜 하필 내 새끼냐고 하늘을 원망했다. 하지만 엄마인 내게 흐느껴 우는 시간은 그 무엇도 해결해주지 않는 낭비였을 뿐. 내가 무너지면 내 아이에겐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시퍼렇게 멍든 가슴을 움켜쥐고 눈앞의 아이에게 올인했다. 그렇게 점점 나는 엄마라는 처절하게도 검붉은 색으로 뒤덮여 갔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떠올려 보는 건 금기라 여긴 것이 아니라 아예 아이 말고는 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그렇게도 엄마인 게 어색했던 과거의 내가 무색할 만큼 나는 오로지 엄마로서만 기능을 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 사실이 좋고, 싫고를 떠나서 그건 그저 내가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나의 삶의 방식 그 자체였을 뿐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나의 지독하게도 비관적인 예상과는 달리 스펙트럼 세상 속에 살며 늘 슬프지만은 않았다. 이곳에도 희로애락이 있었고 이곳에서도 사람냄새가 났다. 여러 성장통을 겪으며 발전하다가도 평범한 다른 가정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계속 울고, 웃고 로키엄마로서 아등바등 매일을 살아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아이는 유치원 특수반을 안정적으로 다니는 꽤나 의젓한 6살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유치원을 통해 교육청에서 지원해 주는 무료 부모상담이 있다고 하여 아이의 어려움을 적어내었더니 내가 덜컥 뽑혔다. 제 아무리 정상발달 금쪽이 엄마가 고민을 적어냈대도 날 이기지는 못한 게 웃펐다. 10회기나 무료로 상담지원을 해주어 경쟁률이 꽤나 높았을 텐데 일사천리로 진행이 된 것에 대해 의기양양한 마음과 씁쓸한 마음이 뒤섞였다. 상담일정이 정해지고 어떤 양육 고민부터 나눠볼지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신경다양성에 대해서는 어떤 걸 자세히 얘기해 보면 좋을지도. 그렇게 고대한 상담날이 되었고 육아 전문가가 내 앞에 앉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육아조언을 해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내 얘기를 해보랜다. 신경다양성이란 말 자체도 처음 들어보는 듯하셨고 육아고민을 포함해서 나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그 말에 나는 참 당혹스러웠고 또 묘하게 설레어왔다.
*신경다양성: 인간의 뇌와 인지 방식의 차이를 결함이 아닌 자연스러운 다양성으로 바라보는 관점
그림을 그려 나를 알아보자면서 종이를 꺼내셨는데 ‘아 티비에서 보던 그런 거’ 싶었다. 나는 상담사가 요구하는 그림을 그때그때 그려냈고 결과적으로 나의 현실은 부모님으로 가득하고 나의 정체성은 6살 남자아이 로키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그 와중 다행히 나의 자아만큼은 뿌리가 깊게 내린 건강한 나무로 표현되어 우둑하게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상담사의 지시에 따라 내가 그린 세장의 그림을 빤히 들여다보니 나 자신이 좀 짠했다. 그리 효녀도 아니건만 어떻게 현실을 의미하는 집은 부모님 집으로 그리고 신사임당도 아닌데 그저 사람을 그리랬더니 그린게 아들의 모습이었을까? 그렇게 그림을 그리며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고 나만의 이야기로만 채워진 상담이 이어져갔다. 유치원 및 센터(특수교육 학원)에서 만나는 수많은 아이의 선생님들과 주변 사람들이 나를 칭하는 “로키 어머니”로서 아이에게 온신경을 쓰는 것이 나의 주 업무이기에 상담동안 나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나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마치 잃어버렸던 나를 되찾을 수 있다는 알 수 없는 안도감 마저 들었다.
자폐 스펙트럼을 알게 된 그 순간부터 줄곧 아이와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듯한 두려움을 느껴 온 나. 바로 나 자신을, 로키엄마가 아닌 그 한 사람만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얼떨결에 내 손에 쥐어진 상담이라는 돋보기로 나라는 사람 하나만 세심히 살펴보다 깨달았다. 나는 진심으로 괜찮아서 사력을 다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나도 사실은 누군가에게 간절히 기대고 싶지만 습관처럼 주변부터 보살피고 있다는 것을. 나는 오늘 하루를 그저 간신히 버티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정상발달 아이의 엄마였다면, 아니 아예 결혼도 하지 않았다면, 안정적인 직장에 다녔다면 난 버틸 필요 없이 그저 행복했을까? 애초에 출발선에서부터 발달지연의 길이 어려울걸 알았으면서도 여전히 나는 남들과 계속 비교하며 세상 모든 게 불공정한 것만 같다. 다른 아이들처럼 로키가 나를 귀찮게 하지 않고 자꾸 혼자 놀려고 할 때마다 되려 내가 아이를 귀찮게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소리치고 싶을 때도 있다. 괜찮은 척을 해봐도 여전히 이 구불굴불한 길 어딘가에 혹시 우리만을 위한 지름길 이정표가 있을까 싶고 이제 코 앞으로 다가온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초조해한다. 어찌어찌 바쁜 일상으로 나를 속여가며 씩씩한 엄마로 사는 것은 익숙해졌을지 몰라도 그저 나로서는 삶이 조금만 삐걱거려도 무섭다. 한치도 알 수 없는 삶의 초행길 앞에서 나는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기만을 바란다고 입버릇처럼 거짓말을 한다. 사실은 오히려 좀 더 편하게 가고 싶으면서. 뱅글뱅글 돌기도 하고 혼자 깔깔 웃기도 하는 우리 아이임에도, 이 아이의 어려움을 가득 껴안은 채로도 여전히 나는 더 안락하고 더 쉽게 살고 싶다.
천진난만하게 웃는 로키를 키우다 보면 길가의 핀 들꽃 하나하나 마저 아름다워 이 세상 모든 것이 감동으로 밀려올 때가 있다. 그럴 땐 만물이 영롱해 찬란한 의미로 가득했다가 반대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발달 따라잡기에 지칠 때면 세상 모든 색이 바래 의미를 잃는다. 그렇게 나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이 밀물과 썰물 같은 간극 위에서 외줄 타기를 하며 산다. 이 괴리감 때문에 공허해져 잠을 청하지 못해 뒤척일 때도 있을 만큼 말이다. 하지만 이내 쌔근거리며 자는 아이의 달콤한 숨소리에 언제 그랬냐는 듯 참 헤프게도 마음이 채워지고 나도 눈을 꼭 감아 본다. 내일부터는 이 외줄 타기가 좀 쉬워질지도, 달라질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아무도 알아줄 리 없는 내 마음을 내가 재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특별한 아이를 키우는 나만 이렇게 유달리 여러 감정소모에 휘말리며 힘든 거라 은연중 생각해 왔는데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아침이 밝아 내가 알람소리에 눈을 뜨고 한기가 도는 거실로 나와 하루를 시작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등원길에 나서듯 또 우리 남편이 정신없이 신발을 구겨 신고 출근을 하듯 우리는 매일 깊은 고찰은 하며 살지는 못할지 언정 아주 간절하고도 치열한 매일을 살아내고 있으니까. 같은 세상, 같은 시간 속 우리는 얼마나 다 다르고 또 닮은 얼굴로 눈물을 꾹 참으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그러니 엄마가 아닌 나의 이야기를 해보라던 상담가의 그 말을 당신도 한 번쯤은 떠올렸으면 싶다. 아빠가 아닌 나의 이야기, 딸이 아닌 나의 이야기, 그저 나의 이야기를.
나는 엄마로서 끝없는 돌봄을 내어줘야 하는 존재이지만 상담을 통해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 또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은 이기심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생존 기술 그 이상이라는 것을. 내가 나에게 맛있는 걸 사주고, 멋진 풍경을 보여주고 출근길에 잠시라도 신나는 음악을 들려주는 그런 일 모두. 그리고 현재 내게 엄마라는 타이틀이 가장 중요하지만 아이를 위한 헌신과 나를 잃지 않는 일은 양자택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로키를 통해 무지갯빛 스펙트럼 세상에 발을 디딘 이후로 줄곧 울타리 같은 존재로만 살았지만 앞으로는 한 사람으로서 우뚝 서보고 싶다. 그러니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이를 악 물고 버티는 삶이 아닌 하나의 꽃을 피우는 삶을 살아보자고 말하고 싶다. 더 이상 헐떡거리며 생존에만 급급한 엄마로 살 수만은 없어서 그저 살아내기만 하던 내 마음에 조금씩 귀 기울여 주고 있다.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내가 나를 잃지 않도록 다시 내가 나로 서서히 물들어 갈 수 있도록 오늘 하루 힘들었다고,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고 어렵사리 입을 떼 본다.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매일은 벅차고 아름다운 의미로 가득 차 있다가도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초라한 모습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서 또 계속 살아볼 만한 게 아닐까. 어쩌면 오늘 하루 당신과 나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한채 똑같은 마음으로 웃고 울고 견뎠을지도 모른다는 그 희한한 전우애를 기억해 주길 바란다. 당신의 일과와는 너무 다른 나의 하루겠지만 어쩌면 내일도 우리는 아주 다른 얼굴로 아주 같은 하루를 보낼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