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빼고 다 평범해 보여서

친구의 결혼식

by 청크리

친구의 결혼식 당일 난 정말 오랜만에 굽이 있는 구두를 신었다. 평소에는 웬만하면 질끈 묶고 다니는 머리에 열심히 웨이브를 넣고 길게 늘어트렸더니 한껏 꾸민 기분이 들었다. 거울에 비치는 내 등에 늘 메고 다니는 육아용 백팩이 없는 게 어색해서 자꾸 무언가 깜빡 한 기분에 허전했다. 손에 든 핸드백에는 립스틱만 하나 달랑 들어 가벼운 것이 마치 오늘 하루만 특별히 가벼워진 나의 책임감 같았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착한 결혼식장에서 정말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니 아니나 다를까 눈물이 핑 돌았다. 소녀의 얼굴을 한 우리의 모습과 크고 작은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사소한 일에 서운하다가도 금세 까르르 웃던 참 어렸던 우리가 어느새 각자의 가정을 이루었다니.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때로는 지루하기도 했던 학창 시절이 어느새 먼 옛날 얘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오랜 벗들을 보며 내가 처한 상황부터 떠올리고 비교하는 것이 속 좁고 미안하게 느껴졌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아이와 고군분투하는 일상의 치열함을 단정한 하객룩으로 또 오래간만에 입은 치마로 덮고서 마음의 동요가 없는 척 정말 아무렇지 않은 척 앉아 식장을 둘러보았다. 결국 101호나 102호나 여느 집이든 속사정은 비슷하다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면만 쓱 봤을 때 안정적이고 평범해 보이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많이 부러웠다. 별 부담 없이 아이의 손을 잡고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는 것도 모르는 하객들이 아이를 보며 멈칫하거나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고 그저 반달눈을 한 채로 아이와 교감하고 놀아주는 것도. 아직 만 세 살도 채 되지 않아 인형 같은 친구 아이의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다 보니 마음이 시렸다. 아이는 낯선 나를 보며 경계를 하다가도 시간이 지나고 조금 친해졌다고 내 반응을 살피며 살며시 손을 내어주기도 했다. 내가 쳐다보는 걸 함께 쳐다보고 내가 반응하는 일에 함께 반응하는 아이. 예전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이게 바로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이라는 것을. 그리고 다시 한번 몸소 깨달았다. 나는 평범하게 살고 있지 않다는 걸. 아름다운 결혼식장에 와서까지 나는 요즘 나의 단짝친구인 초라함의 손을 잡고 또다시 움츠러들었다. 아무리 평범한 척 애를 써봐도 결국 나는 스펙트럼 행성에 사는 소수민족이라 대다수가 사는 신경정형인 행성에 발을 디딜 때면 매번 이렇게 소리 없이 마음이 무너지는 일을 반복하며 살아가게 되는 걸까. 이제 시기, 질투정도로는 설명이 되지도 않는 내 마음을 어떡하면 좋을까. 평생 내향적인 나는 그저 나만 보고 살아왔기에 다른 사람들과 매일 섞여가며 경주해 본 일이 없어서 이렇게 옆사람과 똑같은 듯 똑같지 않은 자식을 품고 매번 비교 아닌 비교를 하며 살아가는 일이 아직도 참 버겁다.


자꾸 부정적인 생각으로 어두워지는 내 마음과는 달리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활짝 웃는 친구를 보니 지금 내가 사는 매일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나의 결혼식 당일이 떠올랐다. 요즘 나는 분명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자신해 왔는데 눈부신 미래를 꿈꾸며 어디서든 당당하던 예전의 내 모습을 떠올려보니 마치 먼 전생 같이 느껴졌다. 그때의 어리고 밝은 나는 마치 내가 아닌 것같이 느껴져서 알고 보면 지금 나는 철저히 불행한 건가 싶어졌다. 내가 정말 행복한 건지 아닌 건지 판단하는 것조차 자신이 없어 주눅이 든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너무나도 바쁜 일상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던 평범하지 못하다는 슬픔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다시 나의 마음을 흩트려 놓아 꼼짝달싹 할 수가 없어졌다. 아무리 매일 쓸고 닦고 청소를 해도 금방 어수선 해지는 집처럼 내 마음은 또 그렇게 금방 난장판이 된다.


그러다 희한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그저 눈을 뜨기만 한 채로 삶이 흘러가게 두는 것이 아니라 매일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기에 예전과는 달리 옆사람과 비교를 하기도 하고 상대적 박탈감도 느끼는 게 아닐까 싶어졌다.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찌감치 겪어왔을 시기, 질투, 열등감, 초라함 등을 나는 때늦은 사춘기를 겪어내듯 이제야 겪고 있는 거라면? 각자 다른 모습으로 피어나는 인생이 빨리 달리기 대회도 아니건만 과거의 나는 어쩌면 누군가에게 질 자신이 없어서 되려 치열하게 살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키를 낳고 로키의 어려움을 알게 된 후 매일을 죽을 등 말등 살고 있기에 그만큼 더 잘 살고 싶고, 더 빛나고 싶고, 더 행복해지고 싶어진 나인건 분명하다. 그래서 어딜 가서든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고 멋져 보이고 싶은 욕구도 생긴 게 아닐까. 그렇다면 기왕 이렇게 자격지심 가득 한 스펙트럼 엄마가 된 김에 매일 아등바등 살며 감정의 널뛰기 위에서 춤을 추는 것도 재밌을 수 있겠다. 어차피 성격상 대충 사는 것도, 크고 작은 일들을 신경 쓰지 않는 것도 불가한데 매일을 스펙터클 한 경험의 일환으로 생각하면 내 마음이 조금은 더 평온해질 수도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니 아무 일도 하지 않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과거를 이제 그만 미화하고 완전하게 놓아주자고 다짐했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건 삶 속의 평화가 아닌 모든 것의 부재였던 알맹이가 없는 매일이었던 것 같아서.


아무도 모르게 고요하지만 파괴적인 감정의 토네이도가 내 마음속 아늑히 자리 잡은 스펙트럼 마을을 헤집어 놓는 동안 어느새 내 눈앞에는 설렘 가득한 신랑신부가 퇴장을 하고 있었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던 입장때와는 달리 사뭇 가벼운 얼굴로 서있는 둘. 눈부신 조명 아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알록달록한 꽃가루가 날리고 나도 그렇게 내 마음속의 잡음을 다 날려 버리기로 했다. 무거운 내 마음을, 도태 됐다는 내 생각을 다 날려버리고 나도 다시 새 신부 마냥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고 싶어 져서. 립스틱만큼 가벼울 줄 알았던 나의 하루가 오히려 더 무거운 하루가 되어버렸지만 내 새끼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리니 금세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나다. 얼른 다시 머리를 질끈 묶고 편한 운동화를 신고 로키의 손을 잡아야겠다. 더 이상 뒤돌아 보지 않고 올 한 해도 로키와 나는 우리만의 속도로 그저 열심히 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