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예쁜 사진
나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워낙 기록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아이가 생긴 후엔 마치 최애 아이돌 덕질을 하듯 아이의 모든 순간을 기록하며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수많은 아이의 사진들 중 어떤 사진을 골라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해아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할 정도였으니까. 아이의 활짝 웃는 모습, 윙크하는 모습, 기지개 켜는 모습,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 등 하나하나가 어찌 이리 색다르게 예쁜지 고슴도치 엄마는 매 순간 기쁨에 겨웠다.
2022년, 우리 아이가 자폐 스펙트럼 선상에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 나는 좌절감에 사진 찍기를 그만두었을까? 아니, 멍하니 있던 것도 잠시 나는 암흑 같은 터널 속에서도 찰나의 행복을 담으려 노력해 왔다. 아이가 뱅글뱅글 돌 때도, 이유 없이 박수를 치고 손을 털 때도 나는 사진 찍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이해가 되지 않는 상동행동도, 그만했으면 하는 이상한 표정도 여전히 내 눈엔 예쁘고 귀여웠다. 다만 이제 나는 대외적으로는 아이가 정말 예뻐 보이는, 그래 솔직히 까놓고 말해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진만을 공개할 뿐이다. 아이가 정상적으로 잘 나온 찰나의 순간을 음미하며 평범한 육아가 주는 행복을 한입 맛보는 것이 너무 위선적인 것 같은 guilty pleasure를 느껴가면서 말이다.
*guilty pleasure: 좀 찔리지만 몰래 즐기는 좋아하는 것.
사진의 진실성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퓰리쳐상에 내가 찍은 우리 로키의 사진을 낸다면 단번에 이건 다 거짓이라며 빠꾸를 먹으려나. 전후상황 다 자르고 사진만 딱 보면 로키는 날 향해 환하게 웃고 태권도 발차기를 따라 하고 신나게 바이킹을 타기도 하고 낙엽이 가득 뒤덮인 산을 오르는 씩씩하고 밝은 어린이다. 우리의 속사정을 모르는 채 단면적인 사진만을 보면 마냥 귀여운 7세 아이만이 보일 것이다. 삐용삐용 거리며 “스펙트럼이 감지되었습니다”라고 사이렌이 울리기라도 하듯이 아이가 적나라하게 눈 흘기는 사진을, 자동차 장난감을 계속해서 일렬로 세워놓는 사진을, 손을 베베 꼬는 사진을 나는 세상으로부터 꼭꼭 숨겨두기 때문에.
*퓰리처상: 공익성과 진실성을 바탕으로 한 최고의 언론, 문학 작품에 수여되는 미국의 권위 있는 상.
예전에는 너무 잘 나왔다며 나의 핸드폰 사진첩 속에 하트를 눌러놓은 로키의 사진들 중 스펙트럼 사이렌이 울리는 사진을 이제야 발견할 때도 있다. 나와 함께 있음에도 혼자 벽을 보고 앉아 웃고 있거나 차가운 숟가락을 눈에 비비며 감각추구를 하고 내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갖가지 돌을 모아놓는 사진까지. 그때는 그냥 애기니까 그럴 수 있지, 애기니까 엉뚱하기도 하지 하며 조금 의아해도 기쁘게 바라봤던 모습이 이제는 행여 누가 보기라도 할까 봐 화들짝 놀라며 등 뒤로 숨기는 자신 없는 성적표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신경다양성을 지지한다면서, 응원한다면서 다양성을 포용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서 나는 오늘도 누군가 우리 아이의 사진을 보고 스펙트럼을 감지할까 봐 나도 몰래 노심초사한다. 계속해서 우리 아이가 세상 기준에 맞게 정상적으로 예뻐 보였으면 하는 언행불일치의 삶을 산다.
헌데 완전범죄를 꿈꾸며 땅 속 깊이 파묻어 나만 알고 있는 이 못난 마음이 오늘따라 기어코 지상까지 기어올라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외면하고 외면해 봐도 결국 내가 너무 가식적인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리고야 만다. 평범하다는 기준에 부합하는 아이의 사진이 즐비한 내 프로필 사진이 갑자기 다 싫어져서 지우고 싶다가도 환히 웃는 아이의 행복한 순간순간을 모두 다 부정하는 것 같아 머뭇거리게 된다. 정말 별것도 아닌 사진 몇 장에, 큰 의미도 없는 프로필 사진에 나는 눈물이 왈칵 날듯 서글퍼진다. 대체 나는 어떤 알맹이를 품은 채 살아가는 건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 유독 생각이 끊이질 않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우리 세 식구가 가식적으로라도 예뻐 보였으면 하는 내 바람이 참 가소롭다. 참 애처롭다.
그러다 며칠 전 눈보라 속에서 아이와 뛰어놀다 깨달았다. 살을 에는 추위에도 나는 그리 추운 지도 잘 모르겠다는 걸. 원래부터 수족냉증을 달고 살고 유독 추위를 타는데도 두 손이 빨개질 정도로 꽁꽁 얼고 찬바람이 얼굴을 할퀴어 대도 나는 그다지 춥지 않았다. 드디어 내 마음속의 온도와 바깥의 온도가 정확히 일치하는 것 같아서 되려 칼바람이 부는 한겨울의 날씨가 시원하고 편안했다. 시리고 시린 나의 마음이 눈보라 속에서는 그저 진실되기만 해서, 예쁜 모습을 고르고 고를 필요가 없어서. 그래서 앞으로는 내가 너무 위선적인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할 때면 나를 미워할게 아니라 이 추위에 그저 나를 맡겨보자고 생각했다. 그 어떤 시선을 신경 쓸 겨를도 없게 하는 날것의 추위가 내게 가혹할지 오히려 더 시원할지는 부딪혀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으니까. 때마침 고맙게도 누구나 다 찬바람에 자연스레 움츠러들고 찡그리기도 하는 겨울이라 산뜻한 척 애쓸 필요가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니 이 겨울 동안만이라도 추우면 추운 대로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충분히 나를 움츠러들게 두자. 우리 모두 각자의 언행불일치를 스스로 좀 눈감아 주며 한숨 고르다 보면 어느새 우리의 몸과 마음도 자연의 섭리처럼 자연스레 녹아 봄을 맞이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 겨울만큼은 예뻐 보이려 애쓰는 나를 그대로 두기로 했다. 온 세상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듯이 푸른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 되면 그때는 우리의 모습이 꾸며내지 않은 그대로 예뻤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평안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