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겉도는 것 같아서

엄마도 친구 사귀기 힘들어

by 청크리

로키는 작년부터 유치원 특수반을 다니고 있다. 캐나다에서 자라 외국물 좀 먹었다고 애써 쿨한 척 해도 편견 가득한 엄마인 나는 특수반이라는 주홍글씨 앞에 머뭇거리며 여러 걱정을 해왔지만 그 모든 고민이 무색할 만큼 아이는 무탈히 잘 적응해 주었다. 특수반의 개별화교육과 담임 선생님의 세심한 지도 덕에 아이가 한 음절 말 하던 것이 두음절이 되기도 하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행동인 포인팅도 열심히 하는 로키가 되었다. 전에 비해 다른 아이들과 더 어울리고 싶어 하고 요리수업에서는 햄버거를 만들어 오기도 하고 그리 안 하던 인사를 할 때도 있을 만큼 꿈쩍 않던 아이의 사회성도 조금씩 좋아져 왔다.


아이가 일반 어린이집을 다닐 때는 때때로 표정이 밝지 않아 마음이 안 좋을 때도 있었는데 다른걸 다 제쳐두고 이곳에서는 일단 로키의 표정이 밝아졌다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통합반에서(소수 특수반이 아닌 일반반) 지낼 때에 보조 선생님이 때때로 붙으셔서 아이가 여러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도와주시니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로키가 행여라도 덩그러니 방치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내게는 큰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마치 허허벌판 외국땅에서 말도 안 통하는 채로 손짓발짓을 해대며 헤매다 “알 유 코리안?!”이라고 외치며 한국사람을 마주친 듯이 로키 곁의 알록달록한 특수반 친구들이 그리고 그 엄마들이 너무나 반가웠다. 아이들의 각기 다른 모습과 특색을 보며 정상, 비정상으로 나누기도 뭐 하고 이젠 그런 구분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어쨌든 정상발달 아이를 키우면서는 알 수 없는 이 스펙트럼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반이라고 생각하니 등원길이 무지갯빛으로 빛나며 설레기도 하더라. 나도, 남편도 맨 처음 특수반에 지원할 당시에만 잠시 마음이 무거웠을 뿐 로키가 즐겁게 원에 다니는 모습에 오히려 ”이렇게 좋은 거였으면 진작 올걸”이라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지만 이 알록달록한 스펙트럼 세상 속 우리와 아주 비슷한 결을 가진, 또 흡사한 색을 띠는 친구와 그 친구의 엄마를 만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라는 것을 차차 알게 되었다.


2022년도에 아이가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고 내가 약 2년여의 시간 동안 시련의 홍수 속에 빠져 허우적댔듯 어떤 엄마는 아직 그 캄캄한 터널 속에 있는 듯했고 과거에 내가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에 아이의 수업을 계속 늘리고 잠시라도 아이가 혼자 노는 것조차 무서워한 것처럼 여전히 사교육에 올인하는 엄마도 있었다. 치열하고 처절한 스펙트럼 초보시절을 지나 꽤나 안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세 식구이기에 나는 막연하게 이쯤 되면 다들 비슷비슷한 생각과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 줄 알았다. 이제 우리 가족은 단 한순간이라도 숨을 고르려 멈춘다면 완주하지 못할 것만 같았던 자칭 자폐 스펙트럼 타파 경주를 이탈한 채 천천히 걷기도 하고 가만히 멈추어 서서 주황빛 노을도 바라보는 게 당연해졌기에 다들 어느 정도는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내심 착각해 온 모양이다. 하지만 이내 인정해야 했다. 아이들의 모습이 스펙트럼처럼 다양하듯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풀어내는 부모의 형태 또한 다양하며 끝끝내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부푼 기대와는 달리 특수반 안에서조차 우리와 아주 똑같은 사람은 없다는 걸 알게 된 것이 처음에는 좀 씁쓸하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아이의 사회성과 여러 어려움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로키는 둘째치고 나 역시 결이 맞는 친구를 사귀기가 쉽지 않아 이곳에서조차 때론 겉돌기도 하니까.


캐나다에서 자라면서도 그랬다. 같은 한국사람이어도 나는 1.5세 이민자, 어떤 친구는 일명 ’ 바나나‘라고 불리는 한국말을 아예 못 하는 백인과 다름없는 이민 2세, 또 다른 친구는 몇 년 정도 캐나다에 영어를 배우러 온 유학생인 식이였다. 이렇게 비슷한 얼굴을 한 사람들을 한정적인 장소에 욱여넣는대도 각기 다른 우리는 어쩌면 죽을 때까지도 같은 마음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특수반이라고 해서 모두 다 같은 마음, 같은 처지일 수는 없는 것이 당연했다. 다만 그동안 내가 꽤나 이 스펙트럼 홀로 여행이 외로웠는지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며 단순히 같은 스펙트럼 가족을 만났다는 반가운 마음에 물개박수를 치고 발을 굴러댔던 것이다. 낯선 외국에서 친숙한 한국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현지 음식보다 이고 지고 온 컵라면의 맛을 예찬한다고 해서 다 결이 같은 건 아닌데 내게는 같은 스펙트럼이라는 동질감이 참 비대하게도 작용해 왔다. 지난 시간 동안 여기저기 오가며 눈에 들어오는 참 자연스럽고 평범하게 모여 있는 아이들과 그 엄마들을 동경하며 나도 한 번쯤은 어딘가에 찐하게 속하고 싶었나 보다. 한마을에서 한마음으로 의기투합해 아이를 키우는 마치 신화 같은 그 따뜻한 온정을 단 한 번이라도 뜨겁게 느껴보고 싶었다.


지금껏 우리는 일반 어린이집에서만 겉도는 줄 알았는데, 그저 태권도장에서만 겉도는 줄 알았는데 우리는 사실 앞으로 어디를 가도 조금은 어색하고 조금은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나는 에너지도 낮은 편이고 심심풀이 땅콩으로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거나 누군가를 자주 만나는 걸 즐겨하지도 않으면서 찐한 소속감은 느끼고 싶다는 게 웃기기도 하다. 솔직히 말해 그 누구와도 엮이지 않은 채 겉도는 아웃사이더로 남는 게 오히려 더 편하다면 편한 나니까. 그러니 다른 가족과 아주 친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면 내 성격에 되려 무리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특수반에 첫발을 내딛고 천진난만하게 동고동락할 짝꿍을 찾던 나를 현실이란 벽이 무심한 듯 시크하게 멈춰 세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나는 특정한 무리에 끼면 자연스럽고 평범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너그럽고 이해심 넘치는 스펙트럼 공동체란 사실 평범한 것이 아닌 나의 간절한 희망사항에 가까우니 말이다. 현실 속에서는 이 세상 단 하나의 고유한 색을 지닌 로키를 키우며 때로는 어색하고 때로는 겉도는 것이 오히려 지독하게 평범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평범한 것은 무엇인지, 소속감이란 무엇인지 아이를 키우며 내가 정의해 둔 많은 것의 의미가 바뀌고 있다. 이제 7세가 된 아이를 키우며 무탈한 하루 뒤에 얼마나 크고 작은 노고가 있는지 알게 되었듯 군중 속 외로움조차 우리 삶의 지극히 평범한 일부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 나의 육아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 누구든 매일 수많은 사람을 접함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같은 마음일 수 없고 속내를 다 드러낼 수도 없기에 조금씩은 겉도는 게 오히려 당연한 게 아닐까. 각자도생의 삶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영원히 이심전심일 수가 없다. 서로 겉돌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연히라도 우리의 삶에 스며들어오는 이가 있다면 소중하고 또 소중한 친구라고 부르고 싶다. 상대가 스펙트럼이든 아니든 이제껏 나도 로키도 발산하지 못한 채로 품고 있기만 했던 찐한 사랑과 우정을 기꺼이 나누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