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가 벌써 코앞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의 계약이 끝나는 바람에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지만 어쨌든 우리 세 식구는 건너편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너무 분주하다는 핑계를 대며 금요일마다 연재를 해놓기로 하고는 이제야 이렇게 주뼛대며 글을 써본다. 이 집이 딱 1년만 더 연장이 된다면 로키가 집 앞 유치원을 졸업할 때까지 쭉 살 수 있어 편했겠지만 나가라 하니 아쉬워도 별도리가 있나.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됐다면 내 편리대로만 됐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그렇다면 나를 다듬고 다듬는 일도, 이런 글을 다듬고 다듬을 리도 없겠지.
아이를 등원시키고 나면 늘 매일의 청소와 정리를 하는 것이 나의 루틴이지만 그건 청결을 겨우 유지하는 제자리걸음의 언저리였다면 이사를 앞두고는 대대적으로 두 팔을 걷어붙였다. 손에 면장갑을 척척 끼고 본격적으로 베란다를 치우고 여기저기 잔짐 정리도 해냈다. 그렇게 치우고 또 비우며 집안을 찬찬히 둘러보니 곳곳에 우리의 눈물자국과 웃음소리가 마구 뒤섞여 있었다. 산세가 한눈에 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어 단번에 계약했던 이곳의 거실을 문득 내다보니 저 멀리 넓은 공터에 짓고 있던 아파트가 어느새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아있었고 미련 없이 마른 나뭇잎을 떨구던 나무들은 조금씩 봉오리를 피우려 파랗게 꿈틀대는 듯했다.
마치 고민하던 여행지의 비행표를 마침내 질러버린 듯이 미련 많던 이 집을 뒤로 한채 이삿날을 정하고 나니 D-day 가 어찌 이리 성큼성큼 다가오는지 시간이 원래도 지금과 같은 속도로 흘렀었나 싶다. 이제는 정말로 이 집과의 작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전 집에서는 로키가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고 내가 무너졌던 기억의 파편이 가장 두드러졌다면 이번 집은 우리 세 식구가 아무리 흔들려도 결국엔 회복했던 기억이 우세하게 떠오르는 것이 감사하다. 일반 어린이집에서 퇴소 권유를 받고 유치원 특수반을 알아보며 힘들었던 마음이 무색하게도 지금의 특수반을 마음 편히 다니며 행복하고 감사했던 날들이 눈앞에 스친다. 남들에겐 지극히 평범한 유치원에서 보내준 사진 속 예전과 달리 다른 아이들 틈에 섞여 웃고 있는 로키의 모습에 날아갈 듯 기뻤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 무수히 많던 기쁜 일, 안도했던 일을 참 쉬이 가려버리는 그늘진 나의 마음이 다시금 무거운 먹구름을 잔뜩 몰고 온다. 줄지어 몰려오는 먹구름 대신 언제쯤 완전하게 맑은 푸르고 쨍한 날씨가 우리 세 식구에게 찾아와 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한 폭의 그림 같은 날씨가 정말 있을까. 그런 낙원 같은 날씨를 만끽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정말 있기는 하는 걸까.
새집으로 가면 더 좋은 일이 많이 생기면 좋겠다. 하지만 아직도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정확히 알 수 없고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떠올리면 금방 머리가 지끈거려 온다. 유치원까지는 아이들 사이에서 발달상의 문제가 눈에 띄어왔다면 초등학교에서부턴 소외감의 문제가 커지며 내 마음이 한층 더 아파질 것 같다는 슬픈 예측을 해볼 뿐이다. 유창하게 대화하며 자연스레 섞여 노는 아이들 사이에서 외딴섬이 된 것만 같은 그 기분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 캐나다 이민 1.5세인 나는 영어를 못해 눈치코치로 적응했었던 그 기억을 가지고 조금이나마 로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이민자로 자란 것이,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느냐 고군분투하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하며 아웃사이더로서의 고민을 했던 것이 엄마가 되어 이렇게 쓸모가 있을 줄이야.
네모의 꿈이란 노래처럼 틀에 박힌 채 정형화되어 있는 것들이 즐비한 이 세상에서는 여전히 조금만 달라도 튀고 손가락질받기 십상이기에 나는 무지갯빛 로키를 툭하면 염려하고 걱정한다. 하지만 별난 모양의 우리 로키와 또 독특한 우리 부부는 이번 이사를 기회로 한번 더 세상의 잣대 그리고 비교하는 마음과 이별하려 한다. 이사준비를 하며 더 이상 손이 가지 않는 옷가지를 정리하고 필요 없는 물건들을 처분하며 더더욱 심플하게 살고 싶단 생각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더더욱 나의 걱정거리를 가지치기하고 쓸모없는 부정적인 생각도 과감히 쓰레기통으로 직행시키려 한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옷 욕심이 많아 자주 쇼핑을 하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저 스티브 잡스처럼 매일 똑같은 옷을 입는 미니멀리스트로 살고 싶어 졌으니까. 계속해서 세간 살림을 줄이고 줄여 간소한 인생을 살다 가볍게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이 생각은 어쩌면 로키와 일평생 어느 정도는 무거운 마음으로 살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에서 오는 가벼움에 대한 갈망이자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스펙트럼 초보 시절때와 달리 더 이상 삶의 예측불가함이 우리 세 식구만의 시련이라 단정 짓지 않는다. 수시로 일기예보를 체크해대도 얄궂게 내리는 소나기 한 번에 어깨가 흠뻑 젖고는 하는 게 우리 모두의 인생일 테니까. 또 비바람이 불다가도 맑게 개는 날씨 하나에 모든 게 다 잘될 것 같다는 허무맹랑한 마음이 들기도 하니까. 청천벽력으로 쓰나미 경보가 울려대도 엄마인 나는 어떻게든 우리 로키를 업고 달리겠지만 부디 새로운 곳에서는 크나큰 폭풍이 없기를, 간간히 비바람정도만이 불기를 바라본다. 코앞으로 이사를 가는 것뿐인데 문득문득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걸 보니 로키의 학교생활을 위해 한국에서의 모든 걸 뒤로하고 정말로 다시 캐나다로 돌아간다면 내 마음이 내 머리보다 꽤나 아플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선 나는 알 수 없는 막막한 미래를 조금은 내려놓고 매일을 그저 고단하리만큼 열심히 살 수밖에 없다.
아이의 한 음절이 두음절이 되기도 하고 여러 단어들을 이어보려 하는 언어적 성장기가 주됬던 정든 이곳. 엘리베이터를 타면 이 집의 층이 당연히 우리 집이라 생각해 그 숫자를 정확히 기억하고 누르게 된 이곳. 아이가 몇 달 사이 A, B형 독감에 연달아 걸려 긴 시간 원에도 못 가고 나와 한참을 뒹굴며 오히려 함박웃음을 짓던 이곳. 산세가 보여주는 사계절의 아름다움과 쓸쓸함을 모두 알게 해 준 추억이 담긴 이곳. 씨끄러운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들어오던 우리의 피난처 같던 곳. 정든 우리 집 안녕. 그동안 무거운 우리의 마음을 품어주느냐 고생했어, 고마웠어. 새로운 가족과는 부디 한결 더 가볍기를. 그리고 우리 모두의 새 출발이 부디 찬란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