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헤매는 것 같아서

개별화회의보다 더 중요한 먹고사는 일

by 청크리

새 집으로 이사를 온 지도 어느새 일주일이 훌쩍 넘었다. 큰 짐을 웬만큼 정리하고 나니 내 컨디션은 비실거리는 아이 같아졌지만 집안 곳곳이 앞다투어 엄마인 나의 손길을 기다린다. 쉴 틈 없이 어설프게 정돈된 살림 속에서 마치 펜션에 놀러 온 손님 마냥 그때그때 메뉴에 맞는 그릇, 냄비를 찾아대고 동선이 꼬이며 어설프게 밥을 해 먹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정신없이 새집에 적응하는 사이 어김없이 정해진 유치원 특수반의 1학기 개별화회의(IEP) 날이 찾아왔다. 작년에는 모든 것이 처음이라 꽤나 긴장했었지만 올해는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있고 담임 선생님도 그대로 셔서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다만 새로운 통합반(일반반) 선생님과는 처음으로 아이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는 점에 기대가 되면서도 살짝 긴장이 되었다.

*개별화회의(Individualized Education Program): 장애나 발달 특성이 있는 아동을 위해 맞춤형 교육 목표와 지원 방법을 함께 계획하는 회의


춘삼월은 누구에게나 설렘과 긴장감이 공존하는 시기일 것이다. 물론 나에게 새 학기란 여전히 캐나다 기준의 새 학기인 쌀쌀한 9월이 먼저 떠오르고는 하지만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지금은 꽃이 필랑말랑한 일교차가 큰 이 계절이 더 또렷한 시작처럼 느껴진다. 이사를 하며 어수선한데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새로운 한 발자국을 뗀 로키는 감사하게도 작년과 같은 특수반의 환경 속 같은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7세 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가까운 거리지만 이사라는 큰일을 치르고 나니 원에서만큼은 환경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리고 개별화 회의에서 들은 로키의 모습은 기대 이상으로 밝았다. 새로운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 소울푸드인 김자반을 찾다가도 콩나물이나 참나물 반찬을 먹기도 하고 새로운 음식을 시도해도 예전처럼 구역질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반적인 감각적 예민함은 줄고 몰래 코를 파다가도 선생님의 안된다는 단호한 표정을 살피는 등의 귀여운 눈치가 늘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반응 없던 아이와 고군분투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이만큼 성장한 모습이 참 기특했다. 통합반 자유놀이 시간에는 음식모형을 만지작 거리거나 자동차 줄 세우기를 하는 등 여전히 혼자 노는 편이지만 다른 친구들이 노는걸 유심히 관찰하기도 하고 때로는 옆 친구의 장난감을 슬쩍 가져와 보기도 한다고 했다. 원래 같으면 그저 혼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로키의 행동에 담긴 ‘나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얼마나 유의미한 것인지 우리는 안다. 물론 여전히 가장 큰 과제는 언어다. “빌려줘”, “같이 놀아도 돼?”라는 말 한마디가 어려워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래서 집에서도 ‘내 것’과 ‘네 것’을 더 자주 이야기해 주기로 했고 적어도 또래와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친구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이음절 말하기에 더더욱 매진하기로 했다. 그렇게 선생님들과 속 터놓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조언을 받기도 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지던 와중에 나는 용기를 내어 가장 두려운 주제를 꺼냈다. 먼 일 같았지만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온 로키의 초등학교 이야기 말이다. 한 치 앞의 일조차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지금으로부터의 1년은 유독 불확실하게 느껴지는 요즘. 내년에 로키가 어떤 친구를 만나게 될지, 어떤 선생님을 만날지, 어떤 환경에 놓이게 될지는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현재로서는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에 진학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아예 처음부터 특수학교에 가는 것이 로키에게 더 편안한 선택지가 될 수도 있기에 나는 아직까지도 완전히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드디어 한결 가벼운 차림으로 활보할 수 있는 봄이 되어 세상은 묵은 때를 벗겨낸 듯 가벼운데 나는 여전히 겹겹이 쌓인 눈밭에 파묻혀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여전히 일상 속 이런 상대적 박탈감을 자주 느껴대지만 올해는 더더욱 우리 가족에게 중요한 해이기에 영양가 없는 감정낭비를 줄이기로 한다. 로키의 초등학교 입학을 준비해야 하고 동시에 부모인 우리의 삶도 단단하게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남편대로 열심히 직장생활 중이지만 치솟는 물가 앞에 가계가 녹록지 않고 나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꿈꾸지만 오프라인 영어 수업을 간간이 하는 수준에 머물러있다. 그래서 더더욱 본격적으로 아이가 원에 가있는 동안의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온라인 일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영어와 한국어라는 내가 가진 이 2중 언어라는 유일한 자산을 믿어보기로 했다. 매일 재택근무 이력서를 다듬고, 지원을 하고, 각종 시험을 보고, 메일함을 새로고침 하며 기다리는 프리랜서의 일상을 반복한다. 노력만큼의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는 시간 일지 몰라도 나는 멈출 수 없다.


황금 같은 주말이 되면 우리 세 식구는 훌쩍 나들이를 떠나는데 아직은 애기 티가 나는 두 손으로 엄마아빠의 손을 하나씩 꼭 잡고 좌우 번갈아 눈을 맞추며 환하게 웃는 아이를 보면 바닥났던 전투력도, 뭐든 도전할 의지도 다시금 호랑이 기운처럼 솟아난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며 문득 깨닫는다. 어쩌면 우리 로키도 매일 이런 마음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낯설고 어려운 세상 속에서, 말 한마디 꺼내기 어려운 순간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고 있다는 걸. 그래서 나는 그런 로키가 우러러보며 마음껏 쉴 수 있는 안락한 품이 되어 주고 싶다. 그렇기에 나는 그저 따뜻한 엄마에 그칠 수가 없다. 양육이라는 것이 원래 한두 푼 드는 일이 아니라지만 여러 수업을 듣고 여러 경험이 필요한 우리 로키를 위해서 내게 탄탄한 경제력은 필수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두 주먹을 불끈 쥐다가도 현실 속에서 느끼는 막막함 때문에 절로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이럴 때 예전 같으면 우울한 회로에 빠져 허우적 대고 금방 ‘우리 아이가 정상발달이었다면 좀 쉬웠을 텐데' 란 생각에 나약 해졌겠지만 이제는 다르다. 팍팍한 현실 속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 비단 우리 집뿐일까 라는 생각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리고 흔들리는 삶 속에서 자식을 바라보며 다시금 힘을 얻는 부모 또한 절대 우리뿐만이 아닐 테니까.


로키 또한 매일매일 치열한 도전의 삶을 살고 있는 중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이상 나는 더더욱 안주할 수 없다. 아등바등거려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 날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멈추지 않으려 한다. 아이도, 부모인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서툰 언어와 또 서툰 방식으로 계속해서 세상에 부딪혀 본다. 어쩌면 잘 살아간다는 건 완벽해지는 일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세상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어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때로 풀이 죽는대도 이렇게 내가 글을 쓰며 당신에게 말을 걸어보듯이 말이다. 우리는 오늘도 각자 다른 얼굴로, 다른 모양으로 하지만 비슷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든 먹고살려고, 한번 사는 인생 좀 잘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우리 모두의 눈물겨운 하루하루를 나는 오늘도 온 마음 다해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