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엔 유난히 비가 많이 왔다
유례없이 긴 장마..
덥고 끈적이고 습한.. 그런 여름이었다...
나는 A사건을 겪은 후 비가 오면 조용히 택시를 타고 퇴근했다
극장남과는 그냥 가끔 연락하고 지내는 그런 사이..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ㅎㅎ
그 후에는 만나지 못했다
내가 너무 바빠서...
그날도 어김없이 비가 왔다. 당연하게 차는 밀리고
택시 미터기는 40퍼센트 할증까지 붙어서 착실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친구들 단톡방에 또 다른 친구 C가 갑자기 단톡방에서 나에게 물었다
<퇴근 잘하고 있어?'>
<응~ 택시 탔지~ 차 많이 밀리네>
위이잉~~~
차는 밀리고 요금은 역대급을 찍고 있다고, 답을 쓰는데 전화가 온다
받아보니 C였다..
"어? 웬일이야?"
"걱정돼서 해봤지, 잘 가고 있는지.. 비 오잖아"
"아~ 고마워 잘 가고 있어.. 기사님이 잘 데려다주시지 ㅎㅎ"
아니 근데, 얘가 갑자기 웬 전화야???
나랑 통화를 마친 C는 득달같이 친구들 단톡방에
<퇴근 잘하고 있다네~ 차 밀린대>
라는 쓸데없는 TMI를 남발했다..
누가 봐도
'나는 얘랑 통화했어'를 알려주는 듯
'이게 뭐람? 내 상태를 왜 얘가 실시간으로 공유해? '
어이없어하고 있는데,
위이이~~~~위이이~~~~ 진동이 또 온다
어머나?! 이번엔 극장남이야..
'얘들 오늘 왜 이래?'
누가 보면 내 오빠들인 줄..
"여보세요? "
"응 나 극장남.. 잘 가는지 궁금해서 해봤어"
"아... 그럼 그럼 잘 가고 있지.. ㅎㅎ......"
.
.
.
.
잠시 침묵...
그 찰나의 2초가 참.. 무겁다..
"......... C가 전화했었나 봐?"
"아.. 어... 응.. 했더라 ㅎㅎ 잘 가고 있냐고, 물어보더라고.. 비가 와서 해봤대"
"............................ 응.. 그랬구나... 우리 시간 나면 놀러 갈까?
"어??? 아. 어.. 좋아 가자~"
"근데 목소리가 기운이 없네...?"
"응.. 힘들어서.. 지쳐..."
"아.. 그렇구나 그럼 끊고 눈 좀 붙이고 가.."
"응 고마워 걱정해 줘서 잘 자~"
별로 의미 없는 그냥 말뿐인 약속들, 대화가 끝나고(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나는 무사히 집에 왔다..
그 뒤부터였다..
매일 퇴근 무렵 극장남에게서 노래 선물이 오기 시작한 것은..
<힘들지? 오늘도 수고했어. 노래 들으면서 가>
라거나,
<오늘은 또 비 온다. 퇴근길이 녹록하지 않겠다>
이런 걱정과 함께 잔잔한 노래들을 매일 보내줬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그때는 나의 업무량이 거의 2배에 육박하던 때라 노래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노래 취향이 안 맞았다.
잔잔한 발라드 곡들이 선물로 오는데, 철저히 극장남의 취향이었다.
반면 나는 우퍼가 찢어지게 울리는 클럽리믹스 같은 노래를 좋아했다..
ㅋ ㅋ ㅋㅋ 나의 심드렁한 표정이 그려졌다면 빙고!
그래서 아마도 ,
"고마워~~ 마음 써줘서 고마워 잘 자~"
의례적인 인사를 했던 것 같다..
이렇게 한 달쯤 됐던가?
그날은 근무시간이 길고 해결할 컴플레인도 많고, 멘탈이 너덜너덜할 만큼 너무 힘들었던 날이었다.
집에 도착해서도,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이 될 정도였다.
정말 몸도 마음도 바닥을 찍었는데,
<오늘 고생 많았지? 노래 한 곡 듣고 자>
라는 다정한 카톡과..
그 노래가 왔다. (지금은 이 노래를 듣지 못한다. 노래와 함께 그 사람이 같이 떠올라서 )
마크툽 - '아직도 빛나는 너에게'
'너에 소중한 사람이 되고 싶어, 희망을 전해 줄 수 있게~'
그 노래를 잠들 때까지 수십 번 들었던 것 같다
들으면서 베개가 흠뻑 젖도록 울었다
그리고 정말 정말 고맙다고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내가 그 사람과 나눈 카톡중 가장 길게.. 그리고
진심을 담아서..
왜 그렇게 눈물이 났던지 모르겠다.
마음속 뭔가가 툭! 하고 터진 것 같았다.
꽁꽁 싸매서 잘 갈무리하고 있던 내 마음이 ,
막아 놓은 둑이 허물어지듯, 그렇게 극장남에게 무너졌다
노래 한곡으로 사람이 이렇게 위로받을 수 있구나...
눈물이 이렇게 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그날 나는 나의 썸을 끝냈다.
'이 남자 내가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