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2막이 시작된 날

당신들이 가족이라고?-1

by 윤별

가족.

혈연.. 핏줄..



외가, 친가 내 부모의 형제들..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다 모이면 정말 정신이 쏙 빠질 정도다..

항상 다정했던 사람들. 공부 잘하고 하지 말란 것은 단 한 번도 안 하는 모범생 중에 상 모범생인 나를 친딸처럼 아껴주었던 내 아버지, 엄마의 형제들이었다.

'우리 조카 아무개는 이번에도 반장이랜다!!'


내 역할은 항상 그 조카 아무개였다.

공부 잘하는 언니, 혹은 누나..

'언니 방학 숙제 어떻게 했는지 좀 얻어다가 참고해라'

'언니 무슨 문제집 풀었는지 물어봐라..'

'누나 이 문제 어떻게 풀었어?'


내 부모 자랑을 넘어 항상 그들의 자랑거리였다.



어이없게도 나는,

남편을 잃고 나서 그들을 모두 차단했다.


옆집 할머니, 옆집 아줌마.. 아니 건너 건너 먼 이웃.. 정도로만 생각하려고...


내 부모, 내 자식, 내 형제를 빼고는 남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알고 싶지 않았고, 상상도 해본 적 없었다.

그 날것의 얼굴들을..



보통, 젊은 여자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혼자되면

남들은 위로를 한다. 특히 사별은..

돌아서면 잊을지언정

그래도 앞에선 진심으로 위로한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그런 것이 없는 사람을 겪기 전까지는 나는 정말 몰랐다.

피붙이들도 그런 얼굴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아귀가 있다면 이런 얼굴일까?



상을 치르고, 49제도 마치고..

나는 슬프건 말건 시간은 정말 잘도 흘러갔다.


'거꾸로 매달아도 시간은 간다,

눈물은 떨어져도 밥숟갈은 위로 올라간다'

겪어보니 맞는 말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나처럼 어린애가 있는 엄마는

슬퍼도 아이들과 살아야 하니 먹고, 자고 ,, 살아낸다.



꾸역꾸역 버티던 어느 날

퇴근해 들어오니 엄마가 분기탱천해 있다..


영문을 모르는 내게, 분이 안 풀린 엄마는 할 말을 쏟아붓는다.

마치 랩처럼...

" 못된 년! 천하에 못된 년 같으니라고!! 지 자식이 이런 일을 당했어도,

그따위로 주둥이를 놀릴 거야??"


"엄마, 무슨 일이야...

나 오늘 힘들었어.. 몸이 가라앉을 것 같아.. 욕 그만하셔.. 왜 이래.."


간신히 진정시키고 들어보니,

이 사태의 주범은 내 큰엄마였다

안부 전화인 척 연락을 해서는



'그 장사를 여자몸으로 어떻게 하겠어? 동서~ 우리한테 넘겨. 우리가 할게. '


맞다.. 남편이 자리를 탄탄히 잡아놓은 덕에 장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고,

남들 일 년 연봉을 일주일이면 벌어들이고 있었다..



이걸 알고 있던 그 큰엄마라는 여자는, 고모의 큰 아들을 꼬드겨서

'내가 돈을 댈 테니 네가 노동을 해라'..


정도의 합의를 자기들끼리 봤었나 보다..



머리가 맑아졌다.

나는 기댈 피붙이가 없구나..

그 호들갑과 다정했던 얼굴들.. 다 거짓이었다.



"욕도 아까운 것들"


"엄마, 욕 그만하셔.. 입 더러워져. 하지 말어. 남편 죽고 축 처져 있을 줄 알았는데, 돈 잘 벌고 잘 산다니까 배알이 꼴려서 그러는 거야. 나중에 지 사위 죽으면 엄마도 똑같이 전화나 해줘. 지금 엄마한테 이렇게 한 거 죄는 다 죄대로 가. 속상해하지 마셔 엄마.. 저것들 벌 받을 거야. "



어이없는 , 상상도 못 한 상황에 맞닥뜨리니

분노보다 되려 더 차분해졌다.


사람이라면,, 나를 조카라고, 동생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런 말을 뱉을게 아니라 생각조차도 해서는 안된다.

나는... 남편 49제가 지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어린것이 둘이나 있는 새파랗게 젊디 젊은것이었다.

살아갈 날이 창창하다 못해 막막한...

큰엄마야 남이라지만 고모는, 그 아들은 조금이라도 피가 섞였지 않나..



엄마를 다독이고,

나는 그 자리에 선채로 그것들 연락처를 차단했다.



너희들도 겪어봐라. 생때같은 아들이, 남편이, 아비가 하루아침에 죽어서 없어지는 그 처참함을..

그리고 그 순간에 깨달아라.

지금 내 소원이 그날 이루어진 것임을..

나는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었다.




내 남편이 어떻게 일궈낸 가게인데,

목숨을 놓고도 두고 간 자식과 마누라 걱정에 발이 안 떨어져,

귀신이 돼서도 생면부지 남을 괴롭혀가며 지키게 했는데.

이걸 어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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