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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 Dec 18. 2023

꿈꾸던 삶을 산다는 건…

살아있길 잘했다고 느낄 때

꿈에는 현실이 없다. 꿈을 꿀 때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꿔야 한다.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 그것이 꿈꾸는 자의 특권이다. 그래서 꿈은 우리가 계획한 것 중에서 가장 대담한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인류의 진보를 만들어낸 것은 바로 그 대담한 꿈을 꾼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 <구본형의 필살기> 중에서


살다 보면 계획하지 않았던 일을 하며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면에 꿈을 꾸고 계획한 대로 이루며 살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건 계획하지 않았던, 사실 생각지도 못했던 뜻밖의 일입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절필 선언을 했고 그 후 30년 간은 글쓰기와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 강의는 또 어떻고요. 직장에 다닐 때 사내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20명 정도의 동료들 앞에서 20회의 강의를 해야 했지요. 약 15분가량의 짧은 강의였습니다. 첫 번째 강의는 어떻게 마쳤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 어찌나 떨었던지 쓰러지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였습니다. 그런 저를 맨 앞에서 불쌍한 듯 쳐다보는 동료의 눈빛만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회를 거듭하며 점차 나아지긴 했지만, 강의는 저와는 전혀 맞지 않는 일이란 것만 확인했을 뿐이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몇 년 전 30년 만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저는 이런 장면을 꿈꿨습니다. 


이제 10분 뒤면 사인회랑 엄마의 레시피로 요리 시연을 해야 하는데 엄마는 아직도 화장실에서 나오실 줄을 모른다. 아무리 예쁘다고, 괜찮다고 해도 오랜만에 미용실에서 한 메이컵과 헤어가 어색하신가 보다. 알로하는 1년 전 바로 이 자리에서 저자 사인회 시작 1분 전까지 손에서 거울을 놓지 못하고 화장을 고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1년 전에 친구 연이랑 조카 서연이와 함께 북유럽을 여행한 후 출판한 그림 여행 책이 대박이 났을 때도 여기에서 사인회를 했었다. 그들은 처음 계획한 지 꼭 10년 만에 북유럽을 갔다 왔다. 그동안에 북유럽은 많이 변했지만 다행히도 그들이 꼭 가보고 싶었던 핀란드의 무민 월드나 산타 마을은 아직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산타 마을에서는 산타님이 한국 어린이에게 편지 쓰는 것과 선물 포장을 도왔으니 그녀의 버킷 리스트 하나가 더 클리어되었다. 
처음부터 책을 쓸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여행 중 쓴 일기와 연이랑 서연이가 그린 그림을 본 숙이가 “어머 이건 꼭 출판해야 돼” 라며 그들을 부추겼다. “이런 걸 누가 돈 주고 사?”라며 손을 내저었지만, 20년째 출판계에서 일하는 숙이의 촉은 정확했다. 출간하자마자 ‘어른을 위한 동화책’, ‘이모와 조카가 함께 읽는 책’, ‘2020년에 출간된 가장 아름다운 책’ 등으로 불리며 비소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었다. 1년이 지난 아직도 여행 서적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는 걸 보면 그때 숙이의 말 듣기를 참 잘했다. 
알로하가 생각에 잠겨 있는데 드디어 엄마가 화장실에서 나오시고 사인회가 시작되었다. 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엄마는 사인을 받기 위해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시고도 전혀 떨지 않으시고, 여유 있게 사인을 해 주시고 이따가 요리 시연회도 꼭 오라고 하신다. 1년 전에 손을 덜덜 떨며 사인을 해 주던 그녀랑 비교하면 엄마는 타고난 스타 기질이 있으신가 보다.


제주대학교에서 진행한 저자 사인회


지난 가을 제주대학교에서 강연을 마친 뒤 참가자를 대상으로 저자 사인회를 했습니다. 소소한 디테일은 조금 다르지만 처음 글을 쓰며 그렸던 모습을 5년 만에 드디어 이뤘습니다. ^^



꿈도 꾸지 않았던 또 하나의 일, 강의를 시작하게 되면서도 한 장면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글쓰기를 시작할 때 스승님으로 여겼던 구본형 선생님은 저서에서 지방 강연을 하는 즐거움을 말씀하신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부인과 함께 지방을 강연하며 여행을 겸하는 일은 너무도 행복해 보였습니다. 일과 삶이 완벽하게 조화된 모습이었지요. 강의를 직업으로 삼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지만 꽤나 부러웠나 봅니다. 언젠가 저도 해보고 싶은 일로 제 뇌리에 깊게 새겨졌던 것 같습니다.

몇 년 후에 실제로 강의를 하게 되면서 저도 다양한 지방을 여행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평소에도 좋아해서 자주 갔던 전주에 강의 때문에 가게 되었을 때는 어찌나 기뻤던지요. 당일로 갔다 와도 되는 거리를 굳이 하룻밤을 자고 오는 여행으로 만들었습니다.

이후에도 경주, 광주, 여수 등에서 강의 여행을 즐겼습니다. 하나씩 여행지가 늘면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겼습니다. 바로 제주도입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일 년에 두 번 정도는 갔었는데, 그 이후는 잘 못 가고 있었습니다. 그냥 놀러 가도 되지만, 꼭 강의 여행을 가고 싶었습니다. 급기야 올봄에는 제주도에 있는 모든 도서관에 프로필과 강의계획서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연락이 왔을까요? 

아니요. 아쉽게도 단 한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올해도 틀렸구나…라고 실망하고 있을 때 뜻밖의 곳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주대학교 중앙도서관인데요.”

뒷말은 뭐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니 사실은 듣지도 못했습니다. 너무 기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쳤기 때문입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전화기 너머 목소리에 집중했습니다. 지난해에 조선대학교에서 진행했던 『독서 미식(美識) 회』의 성공사례를 듣고 제주대학교에서도 해보고 싶다는 강의 요청이었습니다. 그것도 제주도가 가장 예쁠 10월에 말이지요. 게다가 저자 사인회까지 하고 싶다고 하니 이보다 더 기쁠 수가 있을까요? 담당자의 마음이 바뀌기라도 할까 봐 얼른 강의계획서를 보냈습니다. 


강의 준비 & 강이 장면 


그로부터 두 달 뒤, 저는 가을의 제주도에서 꿈꾸던 강연 여행과 저자 사인회 두 가지를 모두 한 번에 이뤘습니다. ^^ 나이를 먹어갈수록 꿈이라는 단어가 어색해지기 마련입니다. 꿈은 어린이, 크게 생각해도 젊은이들이나 꾸는 게 아니었나요? 그런데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꿈을 꿀 수 있고,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합니다. 위에 인용한 저자 사인회 꿈에 관한 글을 쓸 때는 친구들과 함께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생각해도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꿈을 꿨던 이유는 구본형 선생님 때문입니다. 


꿈을 꿀 때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꿔야 한다.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 그것이 꿈꾸는 자의 특권이다. 그래서 꿈은 우리가 계획한 것 중에서 가장 대담한 것이다. 인류의 진보를 만들어낸 것은 바로 그 대담한 꿈을 꾼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선생님의 말씀이 맞았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여기며 웃어넘겼지만, 제 맘대로 꿈을 그렸습니다. 그랬더니 꿈을 실현하기 위한 삶을 살게 되고 마침내 꿈꾸던 장면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인류의 진보까지는 아니지만 제 삶의 진보 정도는 만든 것 같습니다. ^^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하며 사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습니다. 미래는 예측불허라 우리의 삶이 의미를 갖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꿈을 꾸고 그 꿈을 살아가는 삶은 훨씬 더 큰 재미가 있습니다. 못 믿겠다고요? 둘 다 경험한 사람의 말이니까 믿어도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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