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 미술 시간이었다. 그날의 주제는 ‘손’이었다. 손을 그려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반 아이들 대부분이 자기 손을 그렸던 것 같다. 개중에는 엄마의 거친 손이나 기도하는 손을 그리는 아이도 있었다. 그림을 다 그린 후 앞에 나와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어떤 손을 그린 건지 발표했다. 다들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눈에 띄는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자신의 그림을 ‘시지프스의 손’이라고 소개했다.
‘시지프스의 손? 그게 뭐지?’ 그날 시지프스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봤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우리 반 학생들이 그랬던 듯, 그 아이가 시지프스를 언급했을 때 교실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지프스(Sisyphus). 시시포스라고도 불리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로 못된 짓을 많이 했다. 특히 제우스를 크게 화나게 했는데 그 죄로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았다. 그런데 산꼭대기에 이르면 바위는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즉 그는 이러한 고역을 영원히 되풀이해야 하는 사람이다.
친구는 바위를 굴리고 있는 시지프스의 “손”을 그렸다고 했다. 굴러 떨어질 걸 알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바위를 꼭대기까지 올리는 시지프스처럼 ‘자신의 꿈을 향해 노력하고 열심히 살겠다’, 뭐 그런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그즈음에 내가 알던 그리스 신화의 신은 기껏해야 제우스나 아테나, 아프로디테 정도였다. 반면에 친구는 나는 처음 들어본 인물에 대해 그렇게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고, 그런 지식을 이용해 손을 그리라는 미술 과제에 활용하다니… 게다가 자신의 생각을 담고, 그 의미도 훌륭해서 동급생이 아니라 마치 철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너무 무식하다는 콤플렉스를 갖게 된 것이. 나도 나름 책도 많이 읽고 상식도 풍부한 똑똑한 학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지식뿐이라는 열등감이 들기 시작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나의 열등감은 더욱 심해졌다. 같은 시험을 보고 합격했던 터라 공부를 잘했다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할 것도 자랑할 것도 아니었다. 수시 전형이니 그런 게 없었을 때니 다들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 잘 봐서 합격했을 거였다. 그런데 동기 중에는 소설 <태백산맥>이나 <토지> 등을 다 읽고 그 안의 시대정신이나 인물 등에 대해 막힘 없이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니힐리즘이니 다다이즘 등 나는 들어본 적도 없는 말에 대해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게다가 선배들은 나보다 고작 1~2년 먼저 대학생이 된 것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찌나 역사나 사회 정의 등에 대해서 아는 것도 많고 자신의 가치관이나 생각을 글로 잘 표현하는지… 내가 너무 못나게 느껴졌다.
그때 학회실에는 다같이 공유하는 일기장 개념의 노트가 있었다. 신문방송학과였던 만큼 사회적 이슈나 뉴스에 대해 기존 언론 매체가 보여주는 대로가 아닌, 본인의 눈을 통해 “비판적으로” 쓰는 글이 많았던 것 같다. 종종 대학생활에서의 소소한 즐거움이나 연애 고민 등 일상적인 글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4년 동안 나의 의견을 담은 글은커녕 일상적 즐거움에 대한 글조차 한 번도 쓰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너무도 부족한 것 같은 나의 생각을 꺼내는 것이 두려웠고,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전공인 신문방송학의 필수 과목 중에는 ‘언론문장연습’이라는 수업이 있었다. 말 그대로 언론을 위한 글, 주로 신문기사나 사설 등을 쓰는 연습을 하는 수업이었다. 신문기사는 작성 원칙과 요령이 있어서 쓰고 싶은 대로 써서는 안 된다. 또한 사설을 쓰려면 화제가 되는 이슈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설득력 있게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을 피력해야 하는데, 나는 기사나 사설 형식의 글 모두 요령과 설득력이 부족한 글을 써서 교수님의 지적을 받고는 했다. 지적을 들은 후에는 자신감이 떨어졌다. 점점 글 쓰기가 싫어졌고, 억지로 쓴 글은 가독성이 떨어지는 못난 글이었다. 그것이 창피해서 또 글이 쓰기 싫어지고…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점점 글쓰기와는 멀어졌고, 대학 졸업 후 나의 유일한 글쓰기는 보고서나 기획서 정도였다.
몇 년 전, 직장을 그만둔 뒤 뭐 해 먹고살아야 할지 고민하며 방황하던 때였다. 우연한 기회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대학 동기 친구들을 만났다. 다소 평범하지 않은 나의 경험과 취미 활동을 아는 친구들은 이에 대한 책을 써보라고 권했다. 글쓰기가 너무도 힘들어서 블로그도 안 했던 터라 책을 쓴다는 건 언감생심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이후 약 반년 동안 1주일에 한 번씩 친구들과 만나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자아를 성찰하고 제2의 인생을 계획하는 작업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글쓰기가 조금씩 편해졌다. 친구들만 읽는다고 생각하니 부담이 적어서였을까? 점점 마음을 담아 쓰게 되었다. 그 즈음이었다. 독자(친구들)로부터 내가 쓰는 글이 생동감 있고 재미있다는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콘텐츠가 있으니 연습을 좀 하면 책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도 들었다. ‘내가? 정말 그럴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있었지만 나는 그동안의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글을 쓸 수 있었다. 다음 해에는 본격적으로 인문학을 공부하고 글을 쓰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 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이 되었다.
그 뒤 1년 동안 1주일에 한 권씩 책을 리뷰하고 칼럼을 썼다. 다행히도 북리뷰를 위한 책들은 모두 재미있었고 칼럼의 아이디어도 매주 마감 전에 마칠 수 있게 떠올랐다. 하지만 글 쓰는 것은 여전히 많이 힘들었다. 책을 읽고 나의 생각을 만들거나 비판적으로 보는 것도 어렵고, 특정 이슈에 대해 나의 의견을 밝히는 글을 쓰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을 때도 있었다. 독자가 친한 친구에서 불특정 다수로 확장되면서 지적 열등감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너의 생각은 유치하고 수준이 낮으니까 드러내지 마’, ‘창피하니까 이렇게 못 쓸 거면 아예 쓰지 마’라고 나를 다그치는 또 다른 나, 내 안의 용이 아직까지 팔팔하게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떠오른 시지프스의 기억을 확인하기 위해 검색을 하다가, 까뮈가 시지프스를 인간승리의 상징으로 해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까뮈는 인간의 삶이 비록 끝없는 좌절의 연속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이상을 향하여 지속적으로 성실하게 노력하는 데서 그 가치와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나에게 글을 쓰는 시간은 그런 시간이다. 시간이 지나도 좋은 글을 쓰지 못해, 글 솜씨가 늘지 않아 좌절의 연속일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과제를 성실하게 할 수밖에 없다. 아니 그런 시간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연구원 과정도 브런치 글쓰기도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글 쓰기 연습이 시지프스의 돌처럼 희망 없는 노동은 아니길 바란다.
이제 겨우 책 한 권을 출간한 초보 작가이다 보니 아직 글쓰기가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여전히 많이 읽고 써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 조만간 나의 손에는 성실한 노력의 결과물이 있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