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삼십 대에 죽는 건 이제 드문 일이지만, 죽음 그 자체는 드문 일이 아니다. "폐암에 대한 중요한 사실은 그게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거야. 그냥 충분히 비극적이고,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지. 독자들은 잠깐 내 입장이 되어보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야. ‘그런 처지가 되면 이런 기분이구나……
조만간 나도 저런 입장이 되겠지.’ 내 목표는 바로 그 정도라고 생각해. 죽음을 선정적으로 그리려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을 때 인생을 즐기라고 훈계하려는 것도 아니야. 그저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고 싶을 뿐이지.” 물론 폴은 그저 죽음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죽음을 용감하게 헤쳐 나갔다.
<숨결이 바람될 때(When Breath Becomes Air)>는 폐암으로 죽어가던 한 의사의 삶의 마지막 순간의 기록이다. 작가 폴 칼라니티(1977.04.01 ~ 2015.03.09)는 미국, 뉴욕 출생의 잘 나가던 의사였다. 신경외과 의사이자 작가였던 그는 37세에 폐암으로 사망했다.
젊은 나이로 죽은 사람의 얘기를 듣는 건, 그 사람이 나와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마음이 안 좋다. 더구나 그가 노력의 결실을 눈앞에 두고 죽었고, 어린아이까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남일이 아닌 듯 마음이 아프다.
폴 칼라니티가 그런 사람이다.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공부했고,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문학과 철학, 삶과 죽음의 의미에 깊은 관심을 보이던 그는 문학에서 죽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죽음을 경험할 수 있는 의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는다. 이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과학과 의학의 역사 및 철학 과정을 이수하고, 예일 의과 대학원에 진학해 의사의 길을 걸었다. 스탠퍼드 대학 병원으로 돌아와 신경외과 레지던트 과정을 하며, 포스트 닥터를 하던 중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미국 신경외과 학회에서 수여하는 최우수 연구상을 수상했다.
최고의 의사로 꼽히며 여러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받는 등, 이제 막 그간의 노력의 과실을 즐기려고 할 때 폐암 선고를 받았다. 서른여섯 살의 젊은 의사가 하루아침에 자신의 죽음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나라면 어땠을까?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신을 원망하며 하루하루를 분노로 보내다 눈도 못 감고 죽지나 않았을까?
폐암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지만, 나는 몇 년 전에 폐렴에 걸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아픈 며칠을 보낸 적이 있다. 몸을 가눌 수도 없을 정도로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 열이 너무 높아 그냥 감기는 아닐 것 같다며 독감 검사를 했다. 하지만 독감이 아니라고 일반 감기약을 처방받았다. 약을 먹어도 낫지 않으면 다시 오라는 말과 함께… 다음날, 근육통이 훨씬 심해지고 열도 더 올라서 다시 병원에 갔다. 한 번 더 독감 검사를 했지만, 여전히 독감 바이러스는 검출되지 않았다. 의사는 이렇게 열이 높은 건 다른 문제가 있어서라며 이런저런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X-ray를 찍고, 피를 뽑고, 소변 검사를 했다. X-ray의 결과가 먼저 나왔다. 의사는 사진을 보며 폐에 이상이 있다고 했다. 폐렴, 폐결핵 아니면 폐암일 수 있다고 했다. X-ray만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고 다른 검사를 더 해봐야 한다고 했다. 일단은 폐렴이라고 생각하고 처방을 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자고 했다.
암일 수도 있다는 말을 마치 감기의 한 종류라도 되는 양 쉽게 말했다.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서였을까.
결과를 기다리는 하루 동안 나는 별 동요 없이 일상을 보냈다. 아니 약에 취해 다음날 병원에 갈 때까지 잠만 잤다.
다행히 폐렴이었다. 폐결핵, 폐암이 아니었기에 다행이라 여겼지만 폐렴의 고통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나는 사십여 년을 살며 가장 건강한 시기를 보내던 중이었다. 봄과 가을에는 한 달에 대여섯 번 정도는 전국 각지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서 10km를 완주했었다. 대부분 한 시간 내에 들어왔고 5km 부문에서는 연령 상관없이 입상해서 상품 받는 재미도 쏠쏠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걷기도 싫어해서 그냥 지각을 하고 말았을 정도로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터라 나의 변화된 모습이 기특했더랬다.
그 해에 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참여하며 일과 연구원 활동을 병행하느라 힘이 부쳤지만 건강한 몸을 믿으며 무리하게 일했다. 바로 일주일 전 연구원으로서 마지막 수업을 잘 마무리하고 싶어서 이틀 밤을 거의 새우며 무리를 했었다. 별 이상이 없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도 며칠을 또 무리를 했다. 2~30대에도 못하던 이틀 밤샘 작업을 하고도 잘 견디는 나의 체력에 감탄했다. 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과제를 해서 연구비 보증금을 모두 돌려받을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칭찬했는데…… 1주일 만에 쓰러지고 말았다. 입이 방정이다.
폴 칼라니티는 폐암 투병을 하던 중에도 레지던트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아이를 갖는 등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다. 오히려 의사이자 이제 환자의 입장에서 죽음에 대한 독특한 철학을 보이며 ‘시간은 얼마나 남았는가(How Long Have I Got Left?)’, ‘떠나기 전에(Before I Go)’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뉴욕 타임스>와 <스탠퍼드 메디슨>에 기고하는 등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그리고 2015년 3월 9일 아내 루시와 딸 케이디 등 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몸과 마음이 모두 약해져 있을 때 읽어서 그런지, 읽는 내내 작가에게 감정이입이 되어서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나다가 결국 머리까지 아파져서 읽기가 힘들었다. 지나치게 감상적이 되어서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많을 거다. 하지만 한 권쯤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읽어도 괜찮지 않겠는가.
그림 출처: https://www.medicinspires.com/when-breath-becomes-air-book-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