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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 Aug 01. 2023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생전 마지막 산문집

박완서(朴婉緖: 1931.10.20 ~ 2011.01.22) 경기도 개풍군 박적골 출생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다. 나와는 늙은 엄마, 또는 젊은 할머니가 될 법한 나이 차이가 나지만 그의 글을 읽으면서 세대 차이나 꼰대스러움을 느낀 적은 거의 없다. 6.25 전쟁의 경험에 관한 글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나이가 많은 사람인 줄도 몰랐을 정도로, 그의 문체는 젊었고 세상을 보고 읽는 감각도 촌스럽지 않았다.

그의 글은 단숨에, 쉽게 읽힌다. 단문만 있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단어도 많고, 생소한 소재에 대해 쓴 글인데도 왜 이렇게 잘 읽힐까? 아마도 실제 경험한 사건을 묘사하는 생동감과 날카로운 문체에 있는 듯하다. 박완서의 작품들은 이야기의 생동성, 문체의 날렵함, 자연주의적 관찰의 탄탄함으로 이룩한 독자적인 스타일이 어우러져 풍부한 사실적 실감이 넘치는 소설로 잘 빚어진다.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 속내를 후벼 그 안에 숨은 끈질긴 욕망과 위선과 이중성을 파헤치는 그 직정적인 문체는 읽는 이의 가려운 데를 시원하게 긁어준 듯 상쾌함을 넘어서서 통쾌하기까지 하다. 사람의 변덕스러운 욕망과 그것을 넓은 테두리로서 감싸는 시대, 그리고 개개의 욕망과 시대가 만나 빚어내는 풍속에 대한 통찰은 뭉툭한 법이 없다. 퍼렇게 벼린 칼로 정확하게 그 핵심을 파고든다.

                                                                     - 장석주(시인, 문학평론가) <나는 문학이다> 중에서


스스로를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영혼’이라고 표현했다. 작가에게 스무 살은 그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 나이가 아니다. 그가 스무 살이 되던 해는 1950년, 바로 6.25 전쟁이 일어나던 해다. 그해 5월 숙명여중(현재의 숙명여자고등학교)을 졸업하고 6월 20일에 서울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5일 뒤 6.25 전쟁 발발로 학업을 중단한다. 여자가 대학에 가는 것도 매우 희귀하던 시절, 서울대학교에 그것도 당시에는 대학 중에 대학이라 불리던 문리대 국문학과에 합격했으니 얼마나 기쁨이 컸으며 꿈이 높았을까. 달랑 5일 만에 그 꿈이 산산조각이 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을 텐데……


막 대학 문턱에 들어선 초년생에게 대학은 진리와 자유의 공간이었고, 만 권의 책이었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문장이었고, 지적 갈증을 축여줄 명강의(名講義)였고, 사랑과 진리 등 온갖 좋은 것들이었다. 나는 그런 것들로 나만의 아름다운 비단을 짤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막 베틀에 앉아 내가 꿈꾸던 비단은 한 뼘도 짜기 전에 무참히 중턱을 잘리고 말았다. 전쟁은 그렇게 무자비했다. 그래도 나는 살아남았으니까 다른 인생을 직조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당초에 꿈꾸던 비단은 아니었다. 내가 꿈꾸던 비단은 현재 내가 실제로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 본문 25 페이지


끔찍한 전쟁을 겪었지만 다행히도 살아남았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괜찮은 남자와 결혼을 했고, 다섯 아이를 낳아 잘 키우면서 화목한 가정도 꾸렸다. 하지만 본인이 짠 비단이 아니어서일까, 작가는 남부러울 것 없는 결혼생활, 엄마 노릇을 “속에는 누더기를 걸치고 겉만 빌려 입은 비단옷으로 번드르르하게 꾸민 것처럼 자신이 한없이 뻔뻔스럽고 구질구질하게 느껴졌다”라고 묘사했다. 그렇게 “실제적인 가슴의 통증으로 비명을 삼킬 때도 있었고, 어디 남 안 듣는 곳에 가서 실컷 소리 지르고 싶은 충동이 뭉쳐 병이 될 것 같은” 느낌은 주머니 속에서 찌르는 송곳 때문이 아니었을까?


가장 좋아하는 박완서 님 사진


결국 그는 통증과 충동을 참지 못하고 글로 토해내서, 1970년 마흔의 나이에 소설 <나목>을 쓰고 등단했다. 1976년 첫 번째 창작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를 펴냈고 이를 시작으로 장편소설 <휘청거리는 오후>(1977), <창밖은 봄>(1977), 창작집 <배반의 여름>(1978), 장편소설 <목마른 계절>(1978), <도시의 흉년>(1979), <욕망의 응달>(1979), <살아있는 날의 시작>(1980), 창작집 <엄마의 말뚝>(1980), 장편소설 <오만과 몽상>(1982),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3), <서 있는 여자>(1985), 창작집 <꽃을 찾아서>(1986), 장편소설 <미망(未忘)>(1990),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90),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 창작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1998) 등을 쉬지 않고 쏟아냈다.

이런 사람이 어찌 그냥 아내로, 엄마로만 살 수 있었을까. 한 여인으로, 인간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아픔을 겪은 작가에게 삶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겠지만, 그래도 ‘살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꼭 드리고 싶다.


또 책을 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내 자식들과 손자들에게도 뽐내고 싶다. 그 애들도 나를 자랑스러워했으면 참 좋겠다.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自閉)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 주었다.


첫 책을 출간한 지 3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첫 책을 받아 내 손에 들었을 때의 벅찬 기쁨을 잊을 수 없다.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었지만 그저 친구수 200여 명(그나마 백 명 정도는 외국인)의  페이스북에서 소박하게 자랑하고 기쁨을 공유했다.  이 뿌듯함을 다시  자랑할 날이 곧 다시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저자의 나이 즈음에 나도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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