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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 Aug 13. 2023

개와 고양이의 시간

나를 홀(울)린 개와 고양이 

  어렸을 때 몇 번인가 강아지를 키웠다. 하지만 모두 끝이 안 좋았다. 쥐를 잡기 위해 놓은 쥐약을 먹고 죽은 개도 있었고, 큰길 가까이에 살았던 탓에 풀어놨다가 차에 치여 죽은 개도 있었다. 요즘처럼 개를 집안에서 키우고, 외출할 때는 반드시 목줄을 착용해서 데리고 다니는 환경이 아니어서 그랬을 테다. 

그냥 사라졌던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런 날이면 꼭 동네 할아버지들이 우리 집에 모여 수육 같이 생긴 고기에 술을 드시며 잔치를 했더랬다. 한참 후에야 할아버지가 개고기를 무척 좋아하셨고, 엄마는 할아버지가 시키시는 대로 개고기 요리를 하는 것이 너무 싫어서 곤혹스러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엄마는 왜 내가 호랑이띠라서 개와는 상극이라 개들이 잘 못살고 죽어 나간다고 하셨던 건지…

마지막으로 개를 키웠던 건 대학생 때 자취를 할 때였다. 친한 선배가 사정이 생겨서 키울 수 없게 되었다며 나에게 키워보라고 떠맡기다시피 주는 바람에 키우기 시작했다. ‘망치’라는 이름을 가진 비글(과 뭔가 다른 종이 믹스된) 종의 작은 강아지였다. 훈련도 잘 되어있고 사람도 잘 따라서 금방 가족 같은 관계가 되었다. 다만 아침에 집에 혼자 두고 학교에 갈 때마다 어찌나 서럽게 울며 매달리던지… 아기를 떼어 놓고 출근하는 워킹맘의 심정을 너무 일찍 체험한 게 흠이었달까? 처음의 걱정과는 달리 취업 준비로 인한 스트레스까지 사라지게 하는 사랑스러운 강아지였다. 비굴해 보일 정도로 넘치는 애교 덕분에 멀쩡한 이름을 놔두고 ‘비굴이’라고 불렀으니 그 사랑스러움이 짐작이 될 것이다. 


이번에는 잘 지내나 했는데 강아지와 나의 악연은 끝난 게 아니었다. 어느 날 밤 집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은 주방에서 가져왔는지 칼로 위협하며 자고 있던 나를 깨웠다. 어둠 속에서도 작은 과도라는 걸 인지했고 크게 다치지는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목에 닿 금속의 차가움은 이성을 얼어붙게 했다. 극도의 공포심을 느끼며 도둑이 시키는 대로 일어서던 중에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완전히 정신을 놓은 건 아닌지, 일어서며 룸메이트의 허벅지를 온 힘을 다해 꼬집었다. 친구는 왜 꼬집냐며 짜증을 내더니 다시 잠에 빠졌다. 도둑은 나의 의도를 눈치채고는 칼을 목에 조금 더 가까이 대며 조용히 하라고 했다. 소리를 냈다가는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본능적으로 이것이 마지막 기회임을 알고 있었다. 입으로는 조용히 하겠다고 가능한 크게 말하면서 이번에는 손톱으로 찍어서 친구의 다리를 꼬집었다. 

“아악 아파!” 소리와 함께 친구도 잠에서 깨어났다. 상황을 깨달은 친구는 누구냐며 도둑에게 소리를 질렀다. 도둑의 칼은 친구에게로 옮겨갔다. 칼에서 자유로워진 내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도둑은 다시 나에게 칼을 댔지만 친구도 가만히 있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도둑은 초범인 듯 우왕좌왕하다가 칼을 버리고 도망갔다. 쫓아나가려는 친구를 말리고 우선 112에 신고를 했다. 우리의 외침을 들었는지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주인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에 경찰이 도착했고 그날의 끔찍한 소동은 그렇게 마무리되는 것 같았다.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뭔가 허전했다. 평소라면 곁에서 같이 자고 있을 망치가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던 건지, 나중에 도둑이 도망갈 때 쫓아갔던 건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주인아주머니는 방에 들어오기 전에 강아지부터 먼저 처리했을 거라고 했다.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망치가 있었더라면 낯선 이의 침입을 알아차림과 동시에 우리의 목소리보다 훨씬 크게 짖었을 거다. 

아침이 되고 친구와 울면서 온 동네를 찾아 헤맸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그저 어딘가에서 새로운 주인에게 비굴하게 애교를 부리며 잘 살고 있기만을 바랐다. 

그 이후로 나는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았다. 요즘 공원에서 운동할 때 반려견과 함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키우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상처로만 끝났던 강아지와의 인연이 반복될까 봐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반면에 고양이는 키웠던 적도 없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다. 고양이는 개에 비해 까다롭고 키우기가 어렵다는 편견과 부정적인 미신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던 30여 년 전부터 고양이를 좋아했던 친구가 있다. 그때부터 친구는 자신의 사인 옆에 귀여운 고양이 그림을 그렸고 고양이와 관련된 닉네임을 사용했다.

요즘에는 우리나라에도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주변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때 나는 유럽과 미국에서 살면서 한국의 개만큼이나 쉽게 고양이를 접했다. 처음에는 할퀼까 봐 무섭기도 하고 나쁜 인식 때문에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다. 어느 정도 고양이에 익숙해진 후에 친구에게 예쁜 고양이 사진을 찍어 주겠다는 생각으로 친한 척을 하며 다가가곤 했다. 놀랍게도 고양이는 나를 할퀴려고 덤비지 않았다. 심지어 울지도 않았다. 때로 카메라에 포즈를 취하는 것처럼 예쁜 짓도 했다. 

세인트 루시아 섬에서 만난 고양이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뿐 아니라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고양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공격적이지도 않고 사람을 보고 도망가지도 않았다. 특히 터키, 모로코 등 중동지역의 길고양이들이 그랬다. 길거리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것을 금기시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중동 사람들은 길고양이들을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인 것처럼 먹을 것을 나눠줬다. 고양이들도 당연한 듯 받아먹었다. 동네 공원에는 고양이들이 모여 있어, 아예 그들을 위한 놀이터 같았다. 아무도 벤치 위에 앉아있는 고양이를 치우려 하거나 귀찮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양이가 불편하지 않게 슬며시 옆에 앉았다. 고양이도 원래부터 자기들의 자리인 양 피하지 않고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내게는 너무도 어색하고 낯선 풍경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일상인 듯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중동에서는 집고양이뿐만 아니라 길고양이들도 소중하게 가족과 같이 여긴다고 했다. 그들이 믿는 종교인 이슬람교에서 고양이를 신성시하기 때문이란다. 

한 달 정도 터키와 모로코를 여행을 하다 보니 고양이와 인간의 허물없는 어울림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동네 고양이와 밥을 나눠 먹는 사이가 됐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식탁 맞은편에 앉은 고양이에게 음식을 나눠주지 않을 수 없었다. 나 먹을 것도 모자랄 때는 하나를 더 시키기도 했다. 원래부터 식구라도 해도 믿었을 것 같다. “고양이에게 홀린다”는 게 이런 걸까?  


더 이상 신기할 건 없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모로코의 마지막 여행지인 쉐프샤우엔(Chefchaouen)에서였다. 쉐프샤우엔은 모로코 북쪽에 위치한 작은 산동네로 온 동네가 파란색으로 물들어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내가 방문했던 날은 마침 이슬비가 촉촉하게 내리고 있었다. 너무도 가는 비라 우산을 쓰지 않고 맞으면서 돌아다니던 중이었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위를 봐도 아래를 봐도 파란 동네. 비에 젖어 더 운치 있다며 한 곳도 놓치지 않으려고 사진을 찍어 댔다. 온통 파란색에 취해 걷던 중, 비를 맞은 몸이 촉촉해지며 어느 순간 바닷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현기증이 났고 몸이 떠오를 것 같이 휘청이다가 쓰러지려고 했다. 그렇게 주저앉는 순간 눈앞에 고양이가 보였다. 

‘바닷속에 웬 고양이?’
쉐프샤우엔에서 날 지켜봐 주던 고양이

너무도 비현실적인 광경에 주저앉으면서도 셔터를 누르는 걸 잊지 않았다. 잠깐 누워있다 보니 정신이 돌아왔나 보다. 나는 바닷속이 아니라 어느 집 문 앞에 쓰러져있었고, 고양이는 그때까지 내 곁에 있었다.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켜준 고양이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고양이 입장에서는 자기 영역을 침범한 침입자가 갈 때까지 지켜보고 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러면 어떻겠는가. 그동안 고양이들에게 밥을 나눠준 보람이 있었다. 


  개와는 달리 아직은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길고양이 학대니 감소 대책이니 등의 소식을 들을 때면 마법과도 같이 파란 나라의 행복한 고양이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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