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시작하지 않으면 내일은 없다
“오늘 시작하지 않은 것은 결코 내일 마무리할 수 없다.”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독일의 천재 작가 괴테의 명언이다. 그를 영국의 셰익스피어에 견주는 독일의 대문호로만 알고 있었는데, 사실 그는 문학뿐 아니라 과학, 철학, 연극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한 때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을 지냈을 정도로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요즘 그의 대표작 <파우스트>를 읽고 있다. <파우스트>는 잘 알려져 있듯이 구상부터 출간까지 60년 가까이 걸렸다. 괴테가 82세에 사망했으니 인생의 3/4을 파우스트 박사와 함께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괴테가 이 기간 동안 <파우스트>의 집필에만 매달렸던 건 아니다. 3년간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기행문을 썼고, <빌헬름 마이스터>(1785), <헤르만과 도로테아>(1797) 등 작품을 저술했고, 과학과 철학을 연구하고, 공직에서 일하기도 했으며 프랑스와의 전쟁에 참전하는가 하면 십여 명의 여인들과 결혼 또는 연애를 하느라 바쁜 날들을 보냈다. 그러고 보면 <파우스트>가 시작부터 완성까지 60년이나 걸린 것이 이해가 된다.
<파우스트>를 읽고 괴테를 연구하면서 나도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이런 글은 나도 쓰겠다’ 종류의 충동은 절대 아니다. <파우스트>는 희곡 형식인 데다 운문이라 빨리 읽을 수는 있지만 읽다 보면 지금 내가 뭘 읽고 있는 건지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쉽지 않은 글이다. 또한 그리스 신화와 성경에서 인물과 상황을 많이 차용했기 때문에 신화와 성서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으면 (주석과 해설을 참고한다 해도) 몇 번을 읽어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책이다.
내가 영감을 받은 부분은 괴테가 이 작품을 포기하지 않고 죽기 직전까지 집필해 결국 완성을 했다는 “집념”과 “시간의 힘”에 있다. <파우스트>에 대해 평론가들은 흔히 1부와 2부가 다른 작품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매우 다르다.
1부는 비트만(G.R. Widmann), 피처(N. Pfitzer), ‘기독교적으로 말하는 자’, 크리스토퍼 말로(Christopher Marlowe) 등이 독일 전설 속의 인물인 파우스트를 주인공으로 쓴 소설과 줄거리 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들 소설에서 파우스트가 점성술사이자 마법사였고, 메피스토에게 영혼을 팔아 “지옥에 떨어져 마땅한” 사람이었다면 괴테가 쓴 파우스트는 ‘세계에 대한 인식을 통해 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학자였다. 여기에 시간과 공간 등 현실적인 장애를 제거해 주는 마법사로 메피스토펠레스가 등장하여 이야기에 개입하며, 남녀의 사랑을 통한 쾌락과 죄, 처벌이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즉 1부의 내용은 평이하고 재미있으며 통속적이다.
이에 비해 2부에는 처음부터 그리스 신화의 각종 인물들이 등장해서 읽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현실 정치와 전쟁의 문제, 인조인간 “호문클루스”의 창조를 통한 자연과 신에 대한 도전, 헬레나와의 신화적 사랑 등 신화뿐 아니라 현실의 문제 인식과 자아의 한계 극복을 위한 노력, 에로스적 사랑과 희생적 사랑 등이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게르만 신비주의를 넘나드는 배경 안에서 펼쳐진다. 20~30대의 괴테였다면 아무리 그가 천재적 작가였다 하더라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젊었을 때 독서, 여행 등으로 충분한 간접 경험을 하고 나이가 들면서 한 나라의 재상, 전쟁 참여, 다양한 연령 대의 여인과의 사랑 등을 통해 삶을 직접 경험한 후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다. 그가 평생을 이 작품에 매달렸으며 삶의 모든 단계로부터 그 열정과 지혜와 비밀을 그 속에 충분히 불어넣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마법은 스스로를 믿는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어떤 일도 일어나게 할 수 있다.
“명언 제조기” 괴테의 또 다른 명언이다. 아무리 괴테의 명언일지라도 ‘어떤 일도 일어나게 할 수 있다’는 솔직히 100%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법이 시작되는 부분은 동의한다. ’스스로를 믿는 것’. 다수의 마법과 같은 일들이 “스스로를 믿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00세 시대라고 하는 요즘, 이제 나에게도 50년이 넘는 시간이 남아있다. 지금부터 그동안의 직, 간접적으로 경험한 삶을 바탕으로 구상을 시작하고 앞으로 경험하게 될 삶과 지혜를 더한다면 <파우스트> 반의 반 정도의 작품을 쓰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다만 괴테가 말했듯이 오늘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내일, 아니 50년 후에 마무리할 것이 있다.
죽는 날까지 열정적 삶을 살고, 그 삶을 기록으로 남겨 200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 대문호로 칭송받는 괴테의 말을 믿으며 나도 오늘부터 마법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림 출처: https://www.theater-essen.de/spielplan/a-z/faust-ist-einer-von-uns-oder-zum-teufel-komm-ra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