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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 Sep 04. 2023

나비를 꿈꾸며…

“어머나, 내가 이런 것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는데! 제대로 되는 것 같아서 기운도 나고. 나의 내부에 고치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들어 있다면 - 나비가 될 수 있는 자질도 어쩌면 있을 거야.”

- 트리나 폴러스, <꽃들에게 희망을> 중에서


  일주일에 세 번, 벨리 댄스 학원뿐만 아니라 한 군데 더 가는 곳이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꼭 들렀던 곳은 중앙공원. 내가 사는 도시에서 가장 큰 시민공원이다. 수업을 마치고 공원에 도착하는 시간은 저녁 8시 20분쯤. 한낮의 열기가 가라앉아 시원하고, 저녁을 먹고 나서 드라마 시작할 때까지 한 시간 반쯤 여유가 있는… 운동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다. 덕분에 공원은 다양한 운동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는 주로 공원 둘레를 따라 빨리 걷기를 했다. 한 바퀴를 걸으면 1.5킬로미터쯤 된다. 최소 세 바퀴에서 많이 걷는 날은 여섯 바퀴까지도 걸었으니 공원만 9킬로미터를 걸었다. 집에서 학원을 왔다갔다한 것까지 더하면 12킬로미터 정도를 걸었다.

벨리 댄스에 빨리 걷기, 집에서는 덤벨을 이용해 근력 운동까지, 많게는 하루에 여섯 시간 정도를 운동하는 날도 있었다. 이렇게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열심히 운동했던 이유는 6개월 간의 여행에서 찐 살을 빼기 위해서였다. 유럽과 모로코를 여행하는 동안 와인, 치즈, 빵을 너무 맛있게 먹느라, 몸무게가 10kg 정도가 늘어서 왔다. 몸은 정말 정직했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두 달쯤 지나니까 7~8kg이 금방 빠졌다. 나머지도 한 달만 더 하면 빠질 거라 생각했는데, 2~3kg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빠지지 않았다. 이미 하루에 12킬로미터를 걷고 여섯 시간을 운동하는데 쓰고 있었기 때문에 운동하는 시간을 늘리기는 힘들었다. 아무리 백수라고 해도 다른 할 일이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식사량을 줄이는 것도 더 이상은 불가능했다. 이미 딱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먹고 있었다. 한참을 궁리 끝에 찾은 방법은 운동의 강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강도를 높이는 게 가능한 운동은 걷기밖에 없었다. 조금 더 찾아보니 달리기가 걷기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칼로리 소모가 높다고 한다.


“그래, 이거야. 오늘부터 달리는 거야!”

유레카를 외쳤지만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20년이 넘도록 운동화를 신고 달려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학교에 다닐 때도 체육시간을 제일 싫어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싫어했던 게 달리기였다. 졸업 후에는 차라리 늦고 말지, 버스를 타거나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뛴 적이 없었을 정도로 달리기를 싫어했다. 그런데 단지 살을 빼기 위해 달리기를 하겠다고? 그깟 2~3 킬로그램 안 빼도 충분히 날씬한 것 같은데…

하지만 하고 싶었다. 아니 꼭 해야 했다. 뭐라도 해야만 살 것 같았던 그때. 예전의 몸무게로 돌아간다는 건 어쩌면 핑계일 뿐, 벨리 댄스와 달리기를 하며, 뭔가 하고 있다는, 삶의 이유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그날 저녁, 벨리 수업을 마치고 8시 20분쯤 공원에 도착했다. 숨을 가다듬고 천천히 달려봤다. 천천히 뛰니 뛸 만했다. 그동안 빠르게 걷기를 하며 익숙해졌고 체력도 늘었나 보다.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한 300 미터쯤 뛰었던 것 같다. 그래도 20여 년 만에 처음 뛴 것 치고는 잘 뛰었다. 스스로를 칭찬해 주며 나머지는 걸었다. 다음 날에는 100미터를 더 뛰었다. 그다음 날에는 200미터를 더 뛰었다. 조금씩 늘리다 보니 어느새 1킬로미터도 쉬지 않고 뛸 수 있게 되었다. 달리는 게 점점 재미있어졌다. 달리기가 재미있다니…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이제 월, 수, 금 벨리 수업을 마치고 뿐만 아니라 학원을 가지 않는 날도 공원에 나가서 달렸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2주쯤 지나서였던 것 같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열심히 공원으로 가는데 뭔가 펄럭이는 것이 눈에 띄었다.


‘제10회 복사골 마라톤 대회. 9월 XX일’

한 달 정도 뒤에 집 근처에서 있는 마라톤 대회를 알리는 현수막이었다. 

‘저런 건 도대체 어떤 미친 사람들이 하는 거야? 마라톤이라니…’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한 바퀴를 돌아 다시 현수막이 보이는 곳으로 왔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마라톤이라지만 그 대회에는 5킬로미터와 10킬로미터 종목밖에 없었다. 

‘5킬로미터? 지금처럼 뛰는 거리를 조금씩 늘이다 보면 한 달 안에 5킬로미터를 더 뛰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어제 겨우 2킬로미터 뛰고 힘들어 죽을 뻔했는데, 5킬로미터를 어떻게 뛰어? 정신 차려!’

‘아니야. 나도 할 수 있을 거야. 다 못 뛰면 어때. 저걸 목표로 삼으면 매일 연습할 수 있지 않을까?’

두 개의 자아가 맹렬히 싸웠다. 

사실 계속 뛰기 위해서는 뭔가 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딱 맞는 목표인 것 같았다. 그날 집에 가서 바로 신청했다. 그날은 100 미터의 두 배인 200 미터를 더 뛰었다. 



  다음날 본격적으로 연습하기 위해 공원에 나왔다. 이제 그냥 뛰는 게 아니라 목표가 생겼다. 한 달 뒤니까 매일 100미터씩 늘리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산술적으로는 그랬다. 그날 이후 벨리 댄스 수업을 마치고 공원에 들르는 일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목표를 이루는 과정이 되었다. 구체적인 목표가 생겼고, 하루하루 목표에 가까워지는 게 재미있었다. 그런데 너무 쉽게 이루면 재미가 없어서 그랬을까? 나의 꿈에도 장애물이 생겼다. 매일 뛰는 건 무리였나 보다. 너무 열심히 뛰었는지 몸살이 났고 1주일 넘게 쉴 수밖에 없었다. 몸이 회복된 뒤 다시 뛰어보니 전에 하던 만큼은 할 수 있었지만 더 늘리기는 힘들었다. 대회 이틀 전에 겨우 4.5킬로미터를 뛰었다. 다음날은 대회 환경에 맞춰 보기 위해 아침에 뛰어보기로 했다. ‘그때 5킬로미터를 뛰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대회 전날, 처음으로 아침에 달리러 나갔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운동복 화보라도 찍듯이 예쁘게 뛰려고 했는데, 계획은 계획일 뿐… 200미터쯤 뛰고 나자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참고 뛰려고 했지만 점점 더 심해져서 도저히 계속 뛸 수가 없었다. 조금 더 하다는 쓰러질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왜 이러지? 내일 뛸 수는 있을까?’ 걱정됐는데, 알고 보니 전날 밤에 뛴 피로가 가시기도 전에 다시 뛰려고 해서 그랬던 거였다. 그날 밤에 5킬로미터를 완주해 보려던 연습계획은 취소했다. 그랬더라면 첫 대회에서 완주는커녕 100미터 정도 뛰고 쓰러졌을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아침, 드디어 대회날이 왔다. 누가 보면 풀코스 마라톤이라도 뛰는 것처럼 초콜릿과 바나나, 물 등의 간식을 준비했다. 아침은 탄수화물로 먹어야 힘이 난다고 해서 달달한 팥이 잔뜩 들어간 단팥빵으로 먹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대회장소로 가는 길. 지하철로 두 정거장의 길을 가는 내내 설레고 긴장되었다. 대회장이었던 종합운동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성인뿐 아니라 청소년과 어린이들도 많이 보였다. 유모차를 끌고 온 엄마, 아빠들도 있었다. 나만 몰랐을 뿐 많은 사람들이 가족이나 동호회 회원과 함께 또는 홀로 달리기를 즐기고 있었다. 지루한 대회 의식과 축하 인사, 준비운동까지 끝나고 드디어 대회가 시작되었다. 10킬로미터 참가자가 먼저 뛰고, 5킬로미터 참가자들이 그다음으로 출발했다. 다행히도 배는 아프지 않았다. 평소라면 차가 가득할 도로 위를 뛰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옆에서 뛰는 사람들과 함께 달리는 것도 좋았다. 힘들어서 쳐지려는데 마침 응원단이 보였다. 그들의 격려를 듣는데 갑자기 힘이 났다. 신기하게도 다시 원래 속도로 뛸 수 있었다. 평소 응원의 필요성에 회의적이었는데 정말 효과가 있었다. 


‘어머나, 내가 이런 것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는데!’

달리는 내내 떠오른 말이었다. 평소 차로만 다니던 동네 곳곳을 진짜로 내가 뛰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후 이 말은 나에게 최고의 칭찬인 동시에 만트라(mantra) 같은 말이 되었다. 1년 후 벨리 댄스 공연에 참가하게 되었을 때, 그 1년 후 벨리 댄스 대회 참가 제안을 받았을 때, 또 1년 후에 글을 쓰고 강의를 하게 되었을 때, 첫 책을 내고 감격에 사로잡혔을 때, 모두 이 말을 떠올렸다. 나비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애벌레처럼 나도 내 안의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림 출처: https://www.hopefortheflowers.org/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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