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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 Sep 19. 2023

매일의 힘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 싶어?’라는 질문에 한동안 나는 “뮤지컬 배우”라고 대답했다. 예쁘게 화장을 하고 화려한 의상을 입는 배우의 삶이 멋있어 보였다. 춤과 노래와 연기라는 나에게는 없는 재능도 부러웠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자신의 재능과 감정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무대를 가졌다는 것이 부러웠다.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공감을 얻는 무대라는 공간을 동경했나 보다.

돈을 버느라 받는 스트레스를 돈을 쓰면서 풀던 시절, 뮤지컬은 가장 즐기던 스트레스 해소 법이었다. 팍팍한 삶을 살며 마음속에 화와 욕심이 많던 때였다. 뮤지컬을 보는 두 시간 정도는 현실을 잊고 그리스의 작은 섬에 놀러 가 함께 춤을 추거나, 원숭이들이 날아다니는 마법의 나라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 주 정도는 씩씩하게 살 것 같은 에너지를 받은 느낌이라 돈이 아깝지 않았다. 앞으로도 자주 보려면 더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는 동기부여까지 됐으니, 오히려 돈을 번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 기쁨과 영감을 주는 배우들을 동경했다는 것이 더 맞겠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몇 년 전 그런 삶과는 이별을 고했다. 이제 뮤지컬 배우로의 환생은 그야말로 죽은 다음에나 생각해 볼 일이 되었다. 다른 의미로 다시 태어난 삶에서는 화려한 무대가 없어도, 춤과 노래와 연기라는 재능이 없어도, 나를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방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방법은 타고난 재능이 없어도 된다고 한다. 그 밖에도 다양한 장점이 있다. 먼저 비싼 의상과 화장품이 필요 없다. 첨단 기술을 갖춘 무대 장치도 필요 없으니 돈이 들지 않는다. 훌륭한 스승이 없이 혼자서도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장소와 시간에 구애 없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고 한다. 

바로 글쓰기다. 하지만 뮤지컬 배우와 마찬가지로 글쓰기도 하루아침에 저절로 좋아질 수는 없다. 춤을 잘 추기 위해서 매일 연습하고 체력과 필요한 근육을 키워야 하듯이 글쓰기도 매일 연습을 통해 근육을 길러야 한다고 한다. 긴 시간도 필요 없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고 한다. 실제로 구본형 작가는 그의 첫 책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쓸 당시에 직장인이었고 새벽에 한두 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서 글을 썼다. 그 외에도 유시민, 나탈리아 골드버그처럼 글쓰기로 먹고사는 전업 작가들이 한결같이 말했으니 믿을 수밖에 없겠다.

그들은 어느 정도 (본인들은 극구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재능이 있었기에 하루 한 시간 정도 연습으로도 가능했지만, 한참 부족한 나는 택도 없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던 차에 매일의 힘을 숫자로 계산한 작가를 알게 되었다.


“향상심이 강한 사람이 전날보다 매일 1퍼센트씩 자신의 행동을 개선하여 그것을 1년 365일 지속해 간다. 그리고 그것을 1.01의 365승이라 생각하면 1이 약 38이 된다. 한편 어찌해도 의욕이 생기지 않아서 전날보다 매일 1퍼센트씩 행동이 절하된 상태로 1년 365일을 이어나가면 0.026이 된다. 20년, 30년이라는 시간 간격으로 샐러리맨을 보고 있으면 이 수식이 무척이나 현실적으로 와닿는다.” 

<18년이나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후회한 12가지>, 와다 이치로.


지난 4년 정도 매주 한 편의 칼럼 쓰기를 연습했다. (첫 1년은 북리뷰도 한 편씩 썼다) 처음에는 책도 주초에 미리 읽고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조사도 열심히 하고 정성 들여 썼다. 다 쓴 후에는 퇴고도 여러 번 한 후에 공유했다. 때로는 이미 포스팅한 글도 다시 퇴고의 퇴고를 거쳐 고쳐 올리기도 했다. 역시나 시간이 흐를수록 게을러졌다. 매일의 힘이 아니라 주말에 몰아서 하거나 마감시간에 겨우 맞추는 데 급급했다. 그러다 보니 글의 퀄리티가 점점 낮아지고 공감을 얻기 힘든 글을 쓰고 말았다. 어느 정도 글이 좋아지고 가장 열심히 썼던 글은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출간했다. 하지만 이후에 급하게 쓴 글은 다시 읽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다. 그래서 퇴고도 한 번 못 했다. 변명이지만 사실이다. 

지난 7월부터 그동안 썼던 글을 제대로 퇴고하고 보완해서 출판하기를 목표로 하루에 한 편씩 브런치에 올리고 있다. 이번에도 처음에는 여러 번에 걸쳐 읽고 또 읽고 다시 고쳐 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하루에 한 편이라는 목표만 겨우 맞출 뿐이다.  

습관을 갑자기 바꾸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억지로 하려다가 지쳐서 포기할지도 모르겠다. 정량적 목표 달성에라도 만족해야 할까? 하는 순간에 이치로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미련한 듯 보이지만 매일 1%씩 개선하는 마음으로 하루에 한 편씩 올리다 보면 정성적 목표도 언젠가는 맞출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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