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 허기진 밤 #001
사람들은, 인생의 어느 전환점에 다다르면,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특별하거나 절망적인 순간이 없다면, 나이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특히 2에서 3으로 변하는 시점은 다른 변화보다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안다. 이제 청춘이 아니라는 것을. 건강했던 몸은 점차 사라져 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삐걱거릴 몸을 부여잡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밤을 새우며 게임을 하고도, 일주일에 8번 술을 마셔도 아무렇지 않았지만 이제 하루 밤을 새우면 다음날은 피로로 멍 때리는, 술을 마신다면 숙취로 골골거려야 한다. 몸을 씻을 때 거울에 보이는 뱃살 때문에 한숨짓고, 피로를 떨치기 위해 혹은 살기 위해 영양제를 하나씩 챙기며 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삶은 버림이고, 서른은 익숙한 것을 하나씩 버리기 시작하는 나이. 밤을 새우며 놀다가 맞이하는 새벽의 상쾌함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느끼는 세계의 확장에 대한 신비함도,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감도 사라진다. 설렘은 익숙함으로, 익숙함은 지루함으로, 지루함은 싫증으로 바뀌어 간다.
하지만 아직 나이의 무거움을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챙겨야 하는 건강도, 미래를 위한 금전적인 감각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인생에서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준비도, 애써 외면하고 있다. 나는 아직 서른을 맞이할 수 없었다. 나이에 비해 태도는 아직 미숙한 어린애일 뿐이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적으로는 누군가의 선배가 되었다. 막내생활이 길었던 탓인지, 어린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어려웠다. 나는 아직 나이와 어울리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젊은 사람들은 놀라울 만큼 능숙했고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것이 쉬웠지만, 나는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뒤처질 것만 같았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윗사람들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도 점차 전문화되고, 업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나에게 기대하는 영역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나는 늘 부족했다. 사회가 원하는 서른의 모습을 따라가려 하지만 내 안의 미숙함이 나를 가장 아프게 했다.
젊음을 가지고 해야 할 것이 아직 많았다. 20대에 생각했었던 다양한 도전들은 아직 계획에서만 머물렀다. 나이가 들기 전 시도해야 했다. 젊은 날은 관계에서의 허들이 낮았다. 여행에서도 타인에게도 쉽게 다가가고, 다가올 수 있었다. 이 시절은 그리 길지 않기에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젊음은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힘을 주었다. 나는 그런 막연한 안정감을 가지고 싶었다. 회사를 나와서도 도전하고 다시 안정적인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을.
하지만 시간은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그래, 앞자리가 3으로 바뀔 때 자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마음먹은 것과 다르게 나는 아직 살아있다. 살아있는 지금의 나는 하루를 충실하게 사는 게 아니라 죽지 못해 살아가는, 버티는 삶을 살게 되었다. 삶은 여전히 같은데, 마음의 한 부분이 헐거워진 채 그저 시간에 떠밀려 살아가는 기분이었다. 삶은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고 다가오니 매정하지만, 결국 적응하게 만들어 내는 것도 안다. 나는 도태될까, 버틸까, 사라져 버릴까.
알 수 없는 미지의 시간으로 서서히 물들어가면서, 나는 어느 쪽으로 변화할지, 알 수 없었다. 더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하면서도, 그 절망 속에서 부유하는 내가 궁금해하는 걸 보면 나도 미련이라는 것이 있는 걸까? 어쩌면 이건 내 부유의 기록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