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 허기진 밤 #014
인터넷에서의 익명성 보장은 그때 큰 이슈였던 것으로 생각한다. 익명성은 표현의 자유와 맞물리면서 큰 파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장점과 단점을 이야기하며 논쟁을 벌였다. 구속받지 않아야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의견들과, 익명성 속에 숨은 언어적 가해와 선동을 단점으로 이야기했다. 아직도 익명성은 명확히 해결되지 않은, 사람들 간의 논쟁 중 하나가 되었다.
물어본다면 나는 익명성이 좋다. 사람들과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익명성이 좋다. 물론 익명성을 방패로 사람들을 욕하거나 비하하면서 내 욕망을 해결하려는 악플러는 싫어한다.. 그 악플러들은 익명성 뒤에 숨어서 구애받지 않고 욕을 하며 사람들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것으로 욕망을 해소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러니까 나는 나를 감추는 익명성 뒤에서 나를 표현하는 것이 좋다. 사람들은 글을 쓴 사람을 내가 아닌 나의 아이디로 봐주니까. 그럴수록 나는 내 이야기를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다. 나는 나를 버릴 수 없지만 내 아이디는 버릴 수 있었다. 아이디로 나를 특정하는 건 많이 노력이 필요하고 굳이 그런 쓸데없는 노력을 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그래서 신기하다. 내가 내 마음대로 하기 위해 새롭게 아이디를 만들고 표현한다는 게. 진짜인 나는 나를 표현할 수 없는데 가짜인 아이디는 나를 표현할 수 있다. 진짜는 진짜를 보여줄 수 없지만 가짜는 진짜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하네. 그래서 나는 익명성 뒤에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남 앞에서 싫은 소리를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이건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한때는 무리한 요청이 와도 다 받아줄 정도로 부탁도 거절하지 못했다. 나는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불쾌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고, 편안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내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그에 대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나를 표현하는 것이다.
나는 기록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게 글이, 사진이, 영상이 되었든 그 순간이나 느끼고 있는 감정을 담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느낌이나 감정을 담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설명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담아야 한다. 하지만 이는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순간으로 영원을 평가당하는 거 같아 좋지 않다. 게다가 내 표현 솜씨는 좋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래서 익명성이 좋다. 누군가를 이야기할 때 특정할 수 없으니까. 몇몇 아는 사람들만 알 수 있으니까. 글을 쓸 때 독자를 신경 쓰기 쉽다. 내 마음대로 쓰고 싶어도 누군가를 내 글을 볼 거라는 생각이 부끄럽고 나를 다 표현할 수 없다. 특히 더 싫은 건 특정할 수 없는 사람들을 걱정하는 것보다 내가 A에 대해 쓴 글을 보고 A가 어떻게 생각할지를 걱정하는 게 싫다. 그래서 나는 익명성 속에서 나를 표현하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