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 허기진 밤 #018
동아리는 생각보다 규모가 있었다. 단과대에 하나씩 총 3개 동아리로 구성되었다. 공대에 위치한 동아리방은 강의실 바로 옆에 있어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다가 가끔씩 수업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때가 되면 목소리를 낮추어 이야기했었다. 가장 인원이 많은 곳이었는데 공대인만큼 남자들이 특히 많았다. 바로 옆에 매점이 있었고, 학교 입구와도 가장 가까워 좁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곤 했다.
인문대에 위치한 동아리방은 가장 멀었다. 학교는 입구에서 멀어질수록 오르막길이었는데 인문대 건물은 입구에서 가장 먼 단과대 건물이었다. 그래서 잘 갈 일이 없어서 어떻게 생겼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인문대인 만큼 활동하는 여자들이 많았고 소수인원이었다.
그리고 내가 주로 있었던 곳은 경상대였다. 나는 사회과학대였지만 거긴 동아리가 있지 않았다. 경상대 단과 건물 5층에 동아리방이 있었다. 이 층은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공간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것 빼고는 아늑한 아지트 같았다. 이 층에서는 강의실이 없어 강의를 하지 않고, 공부하는 사람들만 있었고, 맨 위층이어서 같은 층에 옥상도 있었다. 샤워실도 있어서 자취방 느낌이 강했다. 동아리방에는 악기들을 보관하고, 공부하고, 열선이 깔려있어서 자는 사람들도 많았다.
수업이 끝나고 동아리방에 가서 쉬거나, 혹은 사람들끼리 모여 같이 점심을 먹거나 했다. 전공이나 교양수업 교재들을 서로 나누기도 했다. 풍물 동아리였기에 주기적으로 연습도 진행했다. 물론 시끄럽기 때문에 연습은 보통 지하주차장을 이용했다. 공간은 그렇게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묶어두는 역할을 했었다. 그리고 이때가 내가 인생에서 가장 술을 많이 마신 시기였다. 매일 동아리방에서는 술판이 벌어졌다. 밥은 늘 시키던 곳에서 주문했다. 냉장고에는 술이 가득 차 있었고 다른 편에는 캐리어가 있었다. 캐리어에 들어있는 건 빈 병들이었다. 언젠가 가득 모아서 팔러 갔는데 오천원정도만 받았었다. 그 후 병을 모으지 않았다.
동아리 혹은 학생회는 운동권이냐 비운동권이냐로 구분을 많이 했다. 물론 대부분이 비운동권이었지만 아직도 그런 잔재가 남아있었다. 이번 학생회장 기호 1은 운동권 이래더라, 혹은 비운동권 이래더라. 뭐 그런 말들이 있었다. 근데 뭘로 파악하는지는 몰랐다. 아예 관심도 없었고. 풍물 동아리는 특성상 운동권의 색깔이 짙었다. 예전부터 시위하거나 할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건 꽹과리였다. 다행인 건 내가 들어갈 때는 그런 색깔이 많이 없어져 있었다. 다만 동아리 선배 중에서 풍물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운동권 비슷한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듣긴 했다.
보통 대학생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과 생활을 하거나 동아리 생활을 하거나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나는 과생활에는 많은 흥미를 잃은 상황이었지만 동아리도 그렇게 내키지는 않았다. 친한 사람도 없었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도 딱히 없었던 것 같다. 학기가 시작하고 나서 점점 신입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 동아리에서도 점점 들어왔는데 미대생 여자애가 들어왔고 그 이후에 영양학과 여자애 둘이 들어왔다. 그래서 점차 동아리가 복작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