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 허기진 밤 #019
작년, 친구의 결혼식을 갔다. 1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가 신부가 되어 결혼식의 주인공이 되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라 사람들은 신부랑 사진 찍는 것도 힘들었다. 마스크를 벗지 못하니 사진도 잘 나오질 않았다. 식이 시작되고 나서도 사람들은 모일 수 없었다. 식장에는 50명 정도밖에 들어가지 못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친구들은 옆에서 울었다. 우리들 중 가장 먼저 결혼하는 친구라서 그런 건가? 혹은 결혼은 지옥의 입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부러워서인가? 나는 왜 눈물이 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굳이 물어보기도 그래서 조용히 있었다. 식은 무난하게 마무리되었다. 긴 주례사도 없었다. 식이 끝나고 사진을 찍을 시간이 되었고 그때서야 들어오지 못했던 사람들이 들어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식장 밖으로 나섰다. 코로나로 뷔페를 먹을 수 없어서 답례품으로 대신했다. 재밌었던 건 우리 애들은 신부를 포함해서 총 5명이었고 나 혼자 남자였다. 그리고 내가 부케를 받았다.
꼭 주고 싶다고 해서 내가 받았지만 그게 3개월? 안에 결혼하지 못하면 몇 년 동안 결혼하지 못한다는 저주도 함께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우리끼리 뒤풀이를 하러 가면서 알게 되었다. 첫 결혼식이라 신기하면서도 나이가 먹었다 라는 것도 함께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 서른 즈음이다. 주변에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여자애들은 점점 현실로 오는 듯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지만, 남자애들은 아직 아니었다. 나이만 보면 정상이었다. 그와 별개로 주변 사람들이, 특히 내 친구들이 진지하게 결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신기했다. 그동안 열심히 함께 여행 다니고 이것저것 하며 놀다가 갑자기 결혼을 생각한다니 괴리감이 컸다. 나보다 나이가 한 살이라도 많은 사람들은 그럴 수 있고 그럴 나이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내 또래들은 그럴 나이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신기했다. 어색했다.
26살 때 라오스에서 만나서 놀았던 무리가 있었다. 그 안에 나와 동갑인 여자애는 그때 만나고 있었던 남자 친구와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궁금해서, 정말 궁금해서 왜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냐고 물어보았다. 그때 친구가 말해주었다. 이 사람이랑 만나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만날수록 편안해서 계속 오래가고 싶다고, 이 이외의 사람과 결혼을 생각 못하겠다고 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자신의 것을, 그것도 인생을 줄 수 있을 만큼의 신뢰는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그게 궁금했고, 신기했다. 내가 결혼을 포기했던 이유 중 하나가 신뢰였다. 나는 누군가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나는 남을 온전히 믿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한 발짝 떨어져 있을 때 가장 좋은 사람인 것 같았다. 너무 다가오면 질리고 너무 멀어지면 그저 그래서 애매한 거리에 있어야 했고, 그게 가장 좋은 온도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쉬운 사람이었다. 나는 다 괜찮다고 했다. 내가 조금 불편해도 같이 있는 사람이 기분 좋다면 그걸로 만족하는 사람이었다. “정말 괜찮아?” 나는 정말 괜찮았다. 불편하는 걸 말하지 않은 이유는 그렇게 불편하지 않아서였다. 만약 그 이상이었다면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몰랐고, 그런 태도들이 미적지근함, 그리고 자기 주관이 없다는 느낌을 주었던 것 같다. 나는 왜 신뢰를 주지 못할까? 내게 너는 믿지 못할 사람이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지 않았지만. 나는 나 스스로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이런 걸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연애였다. 난 아직도 모르겠다. 어떻게 사랑을 줘야 하고 어떻게 신뢰가 가는 행동을 하는지. 내가 준건 그냥 일반적인 사람 간의 적당한 신뢰였던 거지 연인과의 정은 아니었던 거 같았다.
그래서 이 신뢰라는 것,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것 이 중요했다. 그래서 그런 걸 구축하고 단단하게 쌓아 결혼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신기했다. 불가능한 것에 대한 동경과 같았다. 항상 그런 걸 원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것에 대해 나를 툭 놔버린 것 같았다. 다시 붙잡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