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 허기진 밤 #020
그러니까 말하자면 나는 20대 초반에는 싫어하는 대상을 말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이래서 싫었고 저래서 싫었다. 내가 싫어하는 대상들은 싫어할 이유가 명확하게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한 가지 이유로 욕을 먹어도 싼 사람이었다. 고 생각했다.
나는 20살이 되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나보다 먼저 아르바이트를 했던 친구가 재수를 시작해 그동안 일했던 편의점을 나에게 추천해주었다. 덕분에 이력서만 내고 별다른 면접 없이 일을 바로 시작할 수 있었다.
아침 8시부터 3시까지 7시간씩 일을 하는 주말 오전 조였다. 작은 매장이어서 같이 일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오전에 들어오는 물품들을 정리하거나 부족한 물품을 정리하는 게 주 업무였다. 최저시급은 4,110원. 나는 4,200원을 받으며 일을 했다. 그때 편의점에서 최저시급 이상 받아가며 일을 하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노원에서 편의점 야간조를 했던 친구는 야간인데도 불구하고 3,500원을 받았다. 지방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가끔 3,000원을 받기도 했다.
편하게 아르바이트를 했다. 친구가 왜 꿀알바라고 하면서 추천해 주었는지 알 것 같았다. 오피스 지역이라 평일에는 손님들이 꽤 있었지만 주말에는 무척 한산했다. 그 당시 손이 갔던 택배업무는 이용하는 손님이 없었고, 겨울에 서비스하던 호빵 같은 건, 주말에 운영하면 오히려 적자여서 하지 않았다. 필요 없는 일을 주지 않았던 사장님이 가장 친절했다. 가끔 일하는 시간대에 가족들과 함께 편의점에 방문할 때가 있는데, 오시면 음료수 하나씩 마시라고 하셨고, 손님이 없으니 노트북 들고 와서 게임하면서 하라고도 하셨다. 사장님 뿐만이 아니라 사모님도 마찬가지로 친절했다.
손님은 거의 고정되어 있었다. 보통 2~30대의 사람들이었다. 동남아시아에서 온 것 같은 외국인 노동자 아저씨는 “조오지아 주세요~!” 하며 노란색 조지아 커피를 자주 와서 마셨다. 나랑 띠동갑이라는 아저씨가 술 취한 채 여자 친구와 와서 하겐다즈를 사주거나 만원 용돈 주고 떠난 적도 있었다. 늘 평화로웠다.
하지만 좋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어김없이 8시에 나와 가게를 보고 있었을 때 어느 50대 아저씨가 오더니 사장님 친구라며 돈을 달라고 했다. 사장님은 30대, 많아봤자 40대로 보였기에 친구 일리가 없어서 물어보았다. “정말 사장님 친구세요? 제가 전화해서 물어볼게요”라고 말하고 전화하려 하자 욕하면서 사라 진적이 있었다. 사장님은 그런 일이 있으면 바로 전화 주라고 하셨다. 그리고 재밌던 건 저런 일이 한번 더 있었다. 또 역시나 나는 욕을 먹었다. 물론 돈을 가져가지 못했기에 욕을 한 거겠지만. 저런 사기가 유행할 때였다.
저렇게 작정해서 사기 치려고 하는 사람보다 짜증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도 있었다. 역시 여느 날처럼 가게를 보고 있었을 때 담배를 사러 왔다. 담배를 팔기 전 늘 민증 검사를 했었는데 이번에 하려고 하니 짜증을 냈다. 나는 20살이어서 얼굴만 보고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기에 늘 신분증 확인을 했다. 담배를 사는 사람 얼굴을 보니 20대 여자처럼 보이는데 규칙이라며 한다고 하자 욕을 하기 시작했다. 왜 내가 너에게 민증을 보여줘야 하냐는 것이었다. 몇십 분 동안 실랑이를 벌인 뒤 민증 검사를 할 수 있었는데 20대 중반의 여자였다. 민증도 안 가져온 것도 아니었고 왜 그렇게 짜증 내며 화낼 일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이후 한두 번 정도 방문하여 저런 일이 있고 나서야 순순히 민증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순순히 보여주니 그게 더 신기할 일로 여겨졌다.
초등학생들은 예의 그 활기찬 에너지로 편의점을 헤집어 놓거나 라면 국물을 엎기 일수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진상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연령층이 오면 한 번쯤 의심해 보았다.
군대를 다녀와서 나는 뭐든지 짜증을 내는 사람이 되어있을 때였다. 누구에게나 짜증을 내는 건 아니었고 뭔가 내 눈에 아니다 싶은 게 보이면 짜증이 났다. 내가 완전한 정의는 아니었기에 표출하진 않았지만 화가 쌓여있었다.
내가 가장 선호하는 대중교통은 지하철이었다. 버스는 도착시간이 도로 사정에 따라 달라져 시간 계산하는 게 힘들었고, 택시는 비싸기까지 했다. 그래서 공식적인 약속이 있을 때 지하철을 자주 이용했었다. 지하철을 많이 이용할수록 짜증 나는 그룹들이 생겨났다. 일반화하려는 건 아니다. 나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연령층 혹은 성별이 집중된 것뿐이며 나는 그냥 나의 경험이었다.
지하철에서 가장 마주치기 싫었던 건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다. 사람 많은 2호선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면 항상 어느 순간 내 앞에 끼어들어와 먼저 지하철에 타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맨 앞에 서 있는대도 불구하고. 지하철 안에서도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몰려 있는 사람들을 미친 듯이 헤집고 다녔다. 줄을 선다는 개념,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개념이 없이 원하는 것만 하고 싶어 했다. 나는 그럴 때일수록 길을 비켜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오랜 시간 기다렸는데 나이를 이유로 먼저 가려고 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어디를 멀리 갈 때 앉아있으면 앞에서 눈치 주는 노인들도 있었다. 양보를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때때로 노약자석이 비워져 있어도 일반 승객들이 앉는 곳을 앉기 위해 그러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힘들어서 앉아있는데 왜 눈치까지 주지?라는 생각에 비켜주지 않았다. 그런 눈치를 주는 사람일수록 더 눈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혀를 차거나 중얼거리며 다른 곳으로 떠났다. 젊음은 주변 사람들에게 무조건 양보를 해줘야 한다는 의무를 가진 것이 아니었고, 늙었다고 해서 주변 사람들이 무조건 배려를 해줘야 한다는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배려였다. 이를 망각하는 사람들을 지하철을 타면서 너무 많이 봤었기에 신물이 났다.
혼잡한 지하철에서 내리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볼 수 있는데 여기서도 항상 만석이었다. 몸 아픈 사람들은 타질 못하고 건강한 사람들이 아픈 사람들보다 더 앞에서, 오히려 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모여있는 걸 보면서 저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나이를 먹는다고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젊을 때 현명한 사람이 늙어서도 현명하고, 젊을 때 무례한 사람들은 늙어서도 무례하다.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에 대한 문제다. 그럼에도 나이를 먹어가는 시간이 있고, 경험이 쌓이기 때문에 현명해질 가능성, 사람이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고는 생각한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모든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친구들이 생각했다. 여기는 이래서 싫고, 저기는 저래서 싫고, 좋아할 구석보다 싫어할 구석을 찾는 사람처럼 보였나 보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걸어가는 사람들, 좁은 골목에서 어깨빵을 하며 가는 사람들 등 점점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한때 그만큼 화가 났었다가 지금은 사그라들었다. 피하면 그만, 내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던 일이라는 생각에 감정 소모를 줄이고 있다. 그랬던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계기가 필요하지만, 그러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화를 내게 하는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을 향한 비난이 언젠가 나에게 돌아올 화살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을 비난하기 위해서는 내가 깨끗해야 하는데 나도 깨끗한 사람은 아니었고 앞으로도 깨끗할 거라는 자신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에게 잘못을 말해야만 할 때가 있다면, 사람 그 자체가 아니라 행동에 대해서만 말을 하게 되고 그 이상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두려워한다. 그 화살의 방향이 나를 향하게 되는 건 아닐지.
뭐 그래도 싫은 사람은 싫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