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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미 Nov 14. 2024

구르미 그린 달

  친구들의 사연이 너무 슬퍼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음... 이제 내 사연을 이야기할 때가 된 것 같아.

  별이 사연을 들으면서 내 과거가 떠올라 한동안 가슴이 멍해졌지 뭐야? 나도 별이와 비슷한 사연을 가지고 있거든.


  원래 나에게는 나와 꼭 닮은 쌍둥이 형제, 그린이 있었어. 누나는 남자친구와 함께 우리 둘을 애견샵에서 데려왔고, 집에는 달이라는 고양이도 있었지.     

  그렇게 우리 셋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누나와 함께 살았고, 하루하루가 즐거웠어. 그린과 함께 뛰어놀고, 달이와는 서툴지만 조금씩 친해지며 나름대로 형제 같은 사이가 되었거든. 누나는 우리를 아끼고, 우리와 놀아주며 언제나 웃음을 지었어.

그야말로 천사가 따로 없었지.

  

   그때 난 세상 모든 게 새롭고 누나의 화장품 향이 정말 좋았지. 매일 누나 곁에서 즐겁게 뛰어다니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어. 우리가 자라면서 포메라니안인 줄 알고 데려왔는데 알고 보니 폼피츠였다고 우리가 너무 커질 것을 염려하기도 했지만 누나와 형은 우리를 여전히 사랑해 주었고 나 역시 이 세상 전부인 누나를 하늘만큼 우주만큼, 아니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좋아하고 따랐지.    


   형은 매일 우리 집에 드나들었고, 누나, 그린, 달 그리고 나, 이렇게 우리 다섯은 매일매일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어.

  하지만 어느 날부터 누나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어. 남자친구와 자주 다투는 것 같았어. 결국, 누나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었고, 우리 셋을 혼자 키우는 게 힘들어졌지. 그러면서 나와 달이는 각각 다른 집으로 보내지게 된 거야.     


  그나마 다행인 건 내 쌍둥이 동생 그린을 누나가 계속 돌봐주어 한편으로는 안심이었지만 나는 몹시 무서웠어. 누나를 떠나는 것도, 새로운 가족을 만나는 것도, 앞으로의 내 인생도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었거든.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그린과 달이를 볼 수 없게 되었어. 사랑하는 가족과 형제들 곁을 떠나는 게 너무 슬펐지만, 그때는 나도 어렸기에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     

  

  내 두 번째 가족은 혼자 사는 남자였는데 내가 서서히 마음을 열면서 그와 친해지기 시작했지. 그러나 여러 가지 일을 하던 형은 많이 바빴어. 나를 돌봐줄 시간이 없어서 밥을 제때 차려주지 못할 때도 많았고 친구들이 여러 명 와서 먹을 것을 엄청 많이 줄 때도 있었지.


  직장을 마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주말에는 친구들과 노느라 산책을 하지 못하는 나는 불안함과 우울증으로 배변활동이 원활하지 않았으며 먹는 것도 소화를 못해 다 토해내곤 했어. 평소에 너그러운 형이었지만 바쁘게 출근하고 저녁에 녹초가 되어서야 집에 오는 형은 피로와 스트레스 때문인지 배변활동이 서툰 나에게 화를 내고 손바닥이나 파리채로 때리기도 했어.      


  나는 깊은 혼란과 두려움을 느꼈지. 형의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왜 혼나는지, 무슨 잘못을 했는지조차 알지 못했고, 채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커지면서 더 큰 스트레스와 불안감으로 실수를 더 많이 반복하게 되었던 거야. 또한 토했다고 혼나고부터는 형 몰래 토사물을 먹어치워 버렸지. 형은 내가 토한 줄도 모르더라고 하하!

  하지만 지금도 나는 파리채 같은 긴 물건을 보면 움찔움찔 놀라. 형이 좋으면서도 형이 다가오면 긴장하게 되었던 것 같아.


  그렇게 또 나는 3개월이란 시간을 겪으며 눈치도 생기고 덩치도 많이 커졌어. 문제는 형에게 여자친구가 생기면서 부터야. 나는 또 한 번의 혼란을 겪어야 했어. 그녀가 동물을 너무 무서워한 거야. 고민 끝에 형은 친한 친구에게 나를 보내 버렸어. 그렇게 나는 또다시 다른 가족에게 보내진 거야.      


   내 세 번째 가족은 맞벌이를 하는 부부였어. 그들은 바쁜 중에도 주말이면 나와 함께 산책을 나가 주었어. 하지만 평일에는 거의 나 혼자 집을 지켜야 했지. 그래서인지 바쁜 생활 속에서 나를 돌보지 못하는 걸 미안해했고, 나를 위해 더 좋은 가족을 찾아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나 봐. 나는... 그냥 그렇게 살아도 괜찮았는데...


  어느 날 그들은 자신의 지인을 통해 두 번 다시 나를 그 어떤 곳으로도 보내지 않고 영원히 함께 해줄 가족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어. 그들간에 어떤 약속들이 오고 갔는지, 어떤 거래가 있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지금의 가족들에게 오게 된 거지.

   

  지금은 새로운 가족과 함께 안정된 삶을 살고 있지만, 그때는 자주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었고 가끔 그린과 달이와 함께했던 나날이 그립기도 했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과거의 일들이 잊혀져 갔고 지금의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추억으로 차곡차곡 쌓이면서 행복한 기억들이 더 많아졌어.     



  그리고 이제는 쉼터 친구들을 만나 여러 사연을 듣다 보니 나보다 훨씬 더 힘든 생을 사는 친구들, 또 힘들게 생을 마감한 친구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됐어. 나는 쉼터에서 돌아오면 매번 기도를 해. 세상에 모든 소외받는 이들이 하루빨리 행복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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