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훈의 추리
도훈은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자료를 하나하나 정리했다. 정리된 정보를 읽으면서 그는 점점 더 깊은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유진의 어머니 홍선숙
22년 전, 홍선숙은 홍진수에게 입양되며 새로운 가족이 됨.
입양 후 1년 만에 홍진수가 의문의 사고로 사망.
그로부터 5년 뒤, 홍선숙은 김준혁과 결혼
자료를 정리하던 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유진 씨는 김준혁과 홍선숙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인데…"
도훈은 곧바로 유진의 생년월일을 떠올렸다. 간단한 계산을 해보던 그는 손을 멈췄다.
"유진씨는 지금 스물한살… 홍선숙과 김준혁이 결혼한 뒤 태어났다면, 유진 씨는 어머니가 결혼한 시점에 최소 16살 미만이어야 하는데…"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달은 도훈은 자료를 다시 뒤적였다.
"아니, 어쩌면… 유진 씨는 홍선숙 씨가 김준혁 씨와 결혼하기 전에 데리고 온 아이일 수도 있겠네. 그렇다면 유진 씨의 친부는 김준혁 씨가 아닐 수도 있어."
하지만 이 가설도 석연치 않았다. 도훈은 자료를 한참 들여다보며 머리를 싸맸다.
"만약 유진 씨가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해 김준혁 씨의 성을 물려받았다면, 그건 무슨 이유일까? 그리고 유진 씨의 친부는 누구였을까?"
책상 위에 펼쳐진 서류를 바라보던 도훈은 더 큰 의문에 사로잡혔다.
"설마 홍선숙 씨가 친부의 존재를 숨기고 김준혁 씨와 결혼한 걸까? 아니면 어떤 이유로 가족의 배경을 감춘 걸까?"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손을 멈추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머니를 찾으려던 유진 씨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감당할 수 있을까? 이걸 말해야 할까, 아니면 더 깊이 조사한 뒤 알려줘야 할까?"
도훈은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진실을 찾으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진실이 항상 위안을 주는 건 아니야. 이걸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정말 어렵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료를 들여다봤다. 더 많은 단서를 찾기 위해 그는 홍선숙 씨의 과거를 더 깊이 파헤치고 있었다.
"유진 씨가 모든 걸 털어내고 새롭게 살기 위해서라도 과거를 정리해야 돼."
도훈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책상 위에 널부러진 자료는 점점 더 복잡한 퍼즐처럼 느껴졌다.
"홍선숙, 22년 전 입양, 양부사망사고, 김준혁과 결혼, 김유진의 응급실, 김준혁의 여행 중 사고와 교통사고, 홍선숙의 가출, 김준혁의 사망사고… 그리고 최근의 사고까지…."
머릿속에서 수많은 조각들이 얽히고설켜 선명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스스로를 다그쳤다.
"야, 강도훈. 정신차려. 네가 탐정이라면서 이렇게 멍하니 앉아 있으면 되겠어? 일단 계속 정리해보자."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그는 자료를 하나씩 들춰보며 기록된 정보를 재확인했다.
유진의 어머니 홍선숙
22년 전, 홍선숙은 홍진수에게 입양되며 새로운 가족이 형성됨.
입양 후 1년 만에 홍진수가 의문의 사고로 사망.
그로부터 5년 뒤, 홍선숙은 김준혁과 결혼.
결혼 3개월 뒤, 김유진 다발성 골절로 병원에 입원.
김유진 퇴원 후 1년간 어머니와 떨어져 할머니와 동거.
김준혁과 홍선숙은 결혼 1년 뒤, 제주도 여행 중 김준혁 의문의 추락 사고, 6개월 뒤 김준혁의 뺑소니 교통사고.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음)
그 뒤 1개월 후 홍선숙은 김유진을 두고 가출, 2주후 김준혁이 강도에 의해 살해되었음.
그리고 최근 2건의 사고...
도훈은 정리된 정보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김유진은 할머니에게서 자람... 할머니는 김준혁의 어머니"
순간 도훈의 머리속에 무언가 번득했다.
“아! 유진씨.“
도훈은 가슴을 움켜쥐며 한참을 흐느꼈다.
"이 모든게 홍선숙과 연결되어 있어. 홍선숙과 관련된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고를 당한거야."
도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건 더 깊이 조사해야 해. 유진 씨에게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이 모든 퍼즐을 맞춰야 한다."
그는 책상 위의 자료를 정리하며 다짐했다.
"홍선숙 씨의 행방을 찾으면 모든 답이 나올 거야. 그리고 그 비밀이 무엇이든 유진 씨를 지킬 방법도 찾을 수 있겠지."
결의를 다진 도훈은 노트북을 켜고 새로운 단서를 찾기 위해 검색을 시작했다.
도훈은 피곤한 눈을 비비며 사무실 문을 닫고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소파에 웅크리고 잠든 유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발걸음을 멈췄다.
희미한 조명 아래, 유진의 얼굴이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평소 밝게 웃던 얼굴이 고된 하루에 지친 듯 창백해 보였고, 가늘게 들이마시는 숨소리가 간신히 들렸다. 그녀는 긴장한 듯 팔을 꼭 끌어안은 채 잠들어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쩐지 어린 아이처럼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였다.
도훈은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천천히 앉았다. 유진을 보는 내내 마음속에서 복잡한 감정이 차올랐다.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도훈은 손끝이 저릿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처진 어깨와 굳어 있는 손가락 끝이 마음을 저미게 했다.
"이렇게 작고 여린 사람이 얼마나 많은 무게를 혼자 짊어지고 있었던 걸까."
도훈의 눈길은 유진의 창백한 얼굴선과 긴 속눈썹으로 옮겨갔다. 그녀의 얼굴에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으면서도 억지로 버텨온 흔적이 서려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담요 끝자락을 들어 유진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담요가 그녀의 머리칼을 스칠 때, 도훈의 손이 잠시 멈췄다. 차마 그녀를 방해할 수 없을 만큼 연약해 보이는 그 순간, 도훈은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더 이상 혼자 아프지 않게 할게요. 내가 꼭 옆에 있을께요."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길엔 사랑스러움과 함께 단단한 결의가 섞여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도훈의 세상에 유진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