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훈의 집
다음날 아침, 도훈은 서둘러 경찰서를 찾았다. 손에 쥔 자료는 그의 수많은 밤을 지새우게 했던 증거들이었다. 경찰서로 들어선 그는 담당 형사에게 자신이 조사한 모든 사실과 유진의 어머니 홍선숙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형사는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더니 도훈을 따로 불렀다.
"강도훈 씨, 홍선숙 씨는 김유진 씨의 친모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도훈의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듯했다.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지만, 확인된 사실 앞에서 그의 심장은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이 사실을 유진 씨에게 말하지 말아 주십시오."
도훈은 간절한 목소리로 형사에게 부탁했다.
"지금 그녀가 겪고 있는 혼란에 이런 소식을 더하면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형사는 잠시 도훈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김유진 씨에게는 따로 알리지 않겠습니다."
경찰서를 나와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도훈은 고개를 들었다. 깊은숨을 내쉬며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이제 내가 그녀에게 가족이 되어주자. 내가 가족이 되어 그녀를 지키면 돼. “
그는 그날 바로 부모님을 찾아갔다. 집을 나와 혼자 살던 그였기에 오랜만의 방문이었다.
고급 조경사가 손길을 더한 정원은 마치 식물도감을 옮겨놓은 듯 다양하고 이국적인 식물들로 가득 차 있고, 잔디밭은 고르게 깎여 있어 완벽을 추구하는 아버지의 성격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하얀 대리석으로 되어 곧게 뻗은 현관을 들어선 도훈은 들어가려다 말고 멈칫했다. "참 신발을 털고 들어가야지? 우리 꼰대 혈압 안 오르게..." 대리석 양옆으로 고풍스러운 실내등이 정교하게 매달려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공간이 아니라 쇼룸에 전시된 듯한 느낌이 들면서 숨통을 조여 오는듯한 답답함을 느끼자 목뒤로 땀이 흘렀다.
부모님은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지만, 도훈의 이야기를 듣고는 분위기가 급변했다.
"뭐라고? 나이도 어린 데다 출신도 분명치 않은 여자랑 결혼을 하겠다고?"
도훈의 어머니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
"도훈아, 너 지금 제정신이야? 그 아이를 돕는 건 이해하지만, 결혼은 다른 문제야.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아버지도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 가문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생각해라. 네가 가볍게 결혼을 결정할 일이 아니다."
도훈은 부모님의 반대가 클 것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들의 냉정한 태도를 마주하자 화가 났다.
"유진 씨를 위해서 어떤 것도 감수할 수 있어요. 두 분이 반대하셔도 제 결정은 바뀌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울분을 토하며 외쳤다.
"너 정말 이래야겠니? 우리를 버리겠다는 거야?"
도훈은 침묵 속에서 깊은숨을 내쉬었다. 떨리는 손을 꼭 쥐고 고개를 들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는 것은 제 선택입니다. 그녀는 이제까지 가족 없이 혼자 버텨왔고 우린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예요. 저는 그녀가 더 이상 혼자 외로이 살게 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 유진 씨에게 연락을 하시거나 상처를 준다면 저는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몰라요. 그럼 두 분 건강하세요"
흔들림 없이 단호하고 날카롭게 할 말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리자 부모님은 더 이상 말하지 못한 채 서로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훈은 부모님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돌아서며 다짐했다.
"아, 갑자기 엄청 보고 싶네."
도훈의 발걸음이 빨라지더니 이내 정원을 가로질러 현관밖으로 뛰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