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실타래

과거의 조각들

by 구르미

유진은 도훈과 정민의 물음에 확실한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무언가에 홀린 듯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갑작스럽게 기억 속에 파편처럼 떠오른 장면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어린 시절, 엄마와 외삼촌이 언성을 높이며 다투던 모습이 떠올랐다.

“박재현 시켜서 한 거지?”
외삼촌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아니야! 아니라고! 너 나 못 믿어?”
엄마는 울분을 터뜨리며 외삼촌을 향해 소리쳤다. 그 순간의 긴장감과 두려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유진은 숨을 고르려 했지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면서 가슴이 죄어왔다.
“엄마가... 화를 내고 이... 써...?”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자 도훈이 급히 유진의 어깨를 붙잡았다.
“유진아, 괜찮아? 무슨 기억이 떠오른 거야?”

정민도 다급히 옆에서 물었다.
“유진아, 말해봐. 우리가 도와줄게.”

유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박재현... 어릴 적 엄마랑 외삼촌이 싸울 때 그 이름이 나왔어. 외삼촌이... 엄마에게 물었어. ‘박재현 시켜서 한 거지?’라고.”

도훈과 정민은 서로를 마주 보며 상황의 심각성을 직감했다.

도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더 기억나는 건 없어? 박재현이 누구인지,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들었는지...”

유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때 엄마가 화를 내며 ‘아니라고!’라고 소리쳤던 게 전부야.”

도훈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박재현이라는 이름이 네 과거와 연관된 건 분명해 보여. 그리고 홍선숙이 그 병실에 들렀다는 건 그냥 우연이 아닐 거야.”


세 사람은 병원에서 나와 도훈의 차에 올라탔다.

정민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외삼촌이 살아 있었다면 뭔가 단서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경찰 조사를 통해 알아내는 수밖에 없어.”

도훈도 고개를 끄덕이며 의견을 더했다.
“홍선숙과 박재현, 그리고 유진의 과거까지 연결된 걸 보면 단순한 사건이 아니야. 경찰서로 가서 물어보자. 도와줄 수 있을 거야.”

유진은 불안한 마음에 손을 꼭 쥐며 말했다.
“그래... 경찰이 뭔가 알고 있을 거야. 가보자.”

셋은 경찰서를 찾아가 사건 담당 형사를 만났다. 도훈이 신분을 밝히며 협조를 요청했다.
“홍선숙과 관련된 사건을 조사 중입니다. 병원 CCTV에서 그녀가 박재현이라는 환자를 찾는 모습을 확인했어요. 박재현과 홍선숙이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있을까요?”

형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도훈의 조사 협조 요청을 받아들이며 말했다.
“박재현은 현재 중환자실에 입원 중입니다. 몇 주 전 아파트에서 추락해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당시 그의 아내로 밝혀진 홍선숙이 유력한 참고인으로 조사받았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유진은 형사의 말을 듣자마자 충격에 빠졌다.
“홍선숙이... 박재현의 아내라고요?”

정민도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박재현이 홍선숙의 남편이라니... 이건 생각지도 못한 연결인데.”

도훈은 차분히 물었다.
“박재현이 사고로 추락한 경위는 밝혀진 게 있나요?”

형사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목격자가 없어서 정확한 경위는 알 수 없습니다. 추락 전날 밤 부부싸움이 있었다는 이웃들의 증언은 있지만, 홍선숙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가 추락하기 직전에 쓰러지며 손에 뭔가를 쥐고 있었던 게 발견됐습니다. 서류 봉투였습니다.”

정민이 갑자기 눈을 빛내며 말했다.
“서류 봉투? 그거 지금 어디 있나요?”

형사는 서류 봉투가 사건 증거로 보관 중이라고 답했다.
“아직 조사 중이라 보여드릴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도훈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홍선숙이 박재현을 만나려고 병원에 들렀다는 건, 그 봉투가 그녀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뜻이야. 그 안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몰라.”

유진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려 노력하며 물었다.
“엄마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왜 그런 싸움을 했는지, 대체 무슨 비밀이 있는 걸까?”

도훈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남은 건 그 서류 봉투를 확인하는 것뿐이야. 경찰 조사에 협조하면서 더 자세히 알아보자. 그리고 박재현의 상태가 좋아지길 기다리자. 깨어난다면 진실을 직접 들을 수 있을지도 몰라."

정민과 유진은 도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우리 셋 다 너무 힘든 하루다. 다음일은 내일 생각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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