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만남
다음 날, 도훈은 형사를 통해 서류 봉투의 열람 허가를 받았다. 정민과 유진이 옆에 서서 긴장된 눈으로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봉투를 열자, 안에는 몇 장의 오래된 사진과 손으로 쓴 편지가 들어 있었다. 사진 속에는 젊은 시절의 홍선숙과 박재현, 그리고 낯선 남성이 함께 있었다. 유진은 낯선 남성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사람이 누구지?”
정민이 사진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외삼촌 아니야? 젊었을 때 모습 같은데...”
유진은 사진을 보며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맞아... 외삼촌이야.”
도훈이 편지를 꺼내 읽었다. 손글씨로 빼곡히 적힌 내용은 과거의 비밀을 담고 있었다.
“재현아, 네가 없었다면 나는 살아남을 수 없었을 거야. 네가 내 편이 되어준 덕분에 그날의 선택을 할 수 있었어. 하지만 너도 알잖아. 그 일은 우리가 평생 짊어져야 할 짐이라는 걸. 우리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아서는 안 돼.”
유진은 도훈의 손에서 편지를 빼앗아 떨리는 손으로 움켜잡고 있었다.
정민도 충격을 받은 듯 말했다.
“홍선숙이 박재현의 아이를 낳았다는 뜻인가? 설마...”
유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 내가?”
"아니야, 그건 아닐거야. 조금 더 기다려 보자. 아직 확실한건 아무갓도 없어..." 도훈이 유진을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거렸다.
유진은 집으로 돌아와 혼란스러운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직도 유진의 머릿속에는 친절하고 자상한 홍선숙의 얼굴과 자신을 괴롭히던 홍선숙의 얼굴이 교차하였다.
“우리 엄마는 누구일까? 우리 엄마는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지금 엄마는 왜 이런 비밀을 숨기고 있을까? 박재현과 외삼촌, 그리고 나는 대체 무슨 관계일까?” 오만가지 생각들이 유진을 밤 새 괴롭혔다. 거실에서는 도훈의 코 고는 소리와 정민의 잠꼬대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다음 날, 유진은 홍선숙이 구금되어 있는 경찰서를 찾아갔다. 그녀는 면회를 요청하며 말했다.
“엄마를 만나야 해요. 꼭.”
"잘 오셨습니다. 참고인 조사할 게 있는데 언제 시간 한번 내주시겠어요?"
"네 그런데 오늘은 엄마를 만나고 싶어요."
"따라오세요."
잠시 후 홍선숙이 들어왔다. 홍선숙은 유진을 보자 짜증 섞인 목소리로 고개를 돌렸다. "난 할 말 없다. 얘 내보내세요!"
"엄마, 잠깐만 이야기 좀 해요." 유진의 볼멘소리에 고개를 획 돌린 홍선숙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누가 네 엄마야? 겨우 2년 같이 살았다고 내가 너를 가족으로 받아들여야 되니? 잘 들어! 너는 내가 네 아버지와 결혼할 때 딸려온 혹이야! 알겠니?"
"그만하세요!" 옆에 있던 형사가 유진의 눈치를 보며 홍선숙을 말렸다. 유진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홍선숙의 차가운 말은 유진의 심장을 찌르는 칼날처럼 아팠다. 그녀는 무릎을 꿇은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아 멍하니 바닥을 바라보았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먹먹했다.
“진짜... 엄마가 아니었어.”
유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홍선숙은 차갑게 고개를 돌렸고, 형사는 유진을 보며 말했다.
“괜찮아요? 무리하지 마세요.”
유진은 눈물을 닦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그녀는 홍선숙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엄마가 아니라면... 우리 엄만 어떻게 됐나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너희 할머니한테 물어봐. 널 끔찍이 여기는 네 할머니 있잖니?" 하고 쏘아붙이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으휴 지독한 할망구!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서 애 교육시키는데 감 놔라 배 놔라... 으~ 지겨워."
그 순간, 형사가 홍선숙에게 말했다.
“그만 가시죠.”
유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뒤돌아섰다. 그리고는 정처 없이 걸었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도 알지 못한 채 발길이 닿는 대로 걷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