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실타래

by 구르미

유진은 병원에서 퇴원한 뒤 도훈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도훈은 유진이 힘든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곁에서 세심하게 신경 썼다. 하지만 유진은 극심한 충격으로 중요한 기억을 잃은 상태였다. 그녀는 혼란스러워하며 자신이 왜 병원에 있었는지도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도훈은 유진에게 무리하지 않도록 차분하게 일상으로 돌아가게 도우면서도, 그녀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조심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나 유진이 기억을 되찾을 때마다 심한 두통과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괴로워했다.

어느 날, 유진은 갑작스럽게 깨어난 기억 속에서 엄마(홍선숙)와 함께 있던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따뜻한 아침 햇살이 드리운 거실, 엄마(홍선숙)는 웃으며 자신에게 옷을 입혀주며 다정하게 말을 걸고 있었다. 하지만 기억은 곧 바뀌어, 엄마(홍선숙)가 무섭게 소리 지르며 자신을 가두던 순간으로 이어졌다. 유진은 숨이 막히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괴로워했다.

도훈은 그런 유진을 안고 조용히 말했다.
"유진아, 너무 억지로 기억하려 하지 마. 너의 기억을 되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네가 스스로를 지키는 거야."

유진은 도훈의 말을 들으며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녀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진실의 무게를 느끼면서도, 도훈의 존재가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며칠 후, 유진은 병원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문득 과거의 기억 속에서 빠져나올 단서를 발견했다. 병원 복도의 밝은 빛 아래에서 그녀는 홍선숙의 말투와 표정, 그리고 자신을 학대하던 모습이 퍼즐 조각처럼 떠올랐다.

그날 밤, 유진은 도훈에게 말했다.
"나... 기억이 점점 돌아오고 있어요. 그 기억들과 마주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거든."

도훈은 유진의 손을 꼭 잡으며 대답했다.
"그래, 네가 어떤 결정을 하든 함께 할게."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둘씩 맞춰질수록 유진은 과거의 진실을 더 명확히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과거의 학대와 어두운 순간들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 통증과 두통은 더욱 심해졌다. 그럼에도 유진은 자신을 치유하기 위한 여정을 멈추지 않았다. 기억을 되돌리는 일과 함께 병원치료를 병행해야 했지만 그 힘든 과정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있었다.


유진은 도훈과 함께 다시 경찰서를 찾았다. 그녀는 형사에게 말했다.
"저, 이제 준비됐어요. 기억을 하나씩 꺼내서 증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끝까지 도와주세요."

도훈은 옆에서 유진을 지켜보며 그녀의 결심을 응원했다. 그는 유진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고 진실을 마주하려는 모습이 애처롭고 안타까웠지만 반면 그녀의 용기에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유진은 경찰서에서 형사와 함께 사건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기억을 증언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도훈의 손을 꼭 잡고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어릴 때 엄마가 저에게 했던 일들이 기억나요. 혼자 방에 가둬놓고 불을 끄고 나가버렸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밤새 울다가 지쳐 잠들곤 했죠. 아빠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혼자 있어야 했어요. 그게 며칠이었는지 모르겠어요. 처음엔 배가 고팠지만 나중엔 느낌이 없었고, 용번을 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이불에 볼일을 보고 덮어두었다가 엄마에게 매를 엄청 맞았던 기억이 나요.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고 옆에는 할머니가 계셨어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방치되었다면 많이 야위었을 텐데 아버지가 돌아와서 유진 씨의 상태를 보고 아무 의심을 하지 않았나요?"

형사는 유진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적으면서 중요한 단서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유진이 증언할 때마다 그녀의 손을 꼭 잡은 도훈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저는... 몸도 약하고 자주 아파서 엄마가 많이 힘들었어요."

유진은 진술을 하며 그때의 상황을 떠 올렸다.


어린 기억 속 불 꺼진 방에서 탈진한 유진을 홍선숙이 미음을 먹이고 목욕을 시키다가 돌연 화를 내던 모습이 떠올랐다. 유진이 용변을 본 이불을 내다 버리며 "네가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아빠가 일하러 가면 차차 이야기하자. 네 걱정에 아빠까지 걱정 끼치고 싶진 않겠지? 그러려면 아무 말도 해서는 안돼. 알았니?"라고 말하는 홍선숙의 매서운 눈빛을 떠올리며 또 한 번 몸을 떨었다.


"여보 힘들었죠? 유진이 좀 아파서 치료하느라 자주 연락 못해서 미안해요."

"아냐, 괜찮아. 근데 유진이 왜?"

"몰라요. 심리적인 요인이 큰 거 같은데... 허언증과 망상이 심하고 거식증 때문에 밥을 잘 못 먹어요. 억지로 조금 먹이고 나면 다 토해 버리고... 벌써 5살인데 대소변도 못 가리고 이불에다 용변을 보고 해서 이불도 몇 개를 내다 버렸는지 몰라요."

"당신이 고생이 많겠네? 원래 안 그랬는데... 지 엄마 죽고 애가 좀 이상해졌어."


유진은 과거를 회상하다가 "아빠는 엄마에게 늘 미안해했어요. 저를 맡기고 며칠씩 출장을 가는 일이 많아서 집에는 늘 외삼촌이 와 있었고..." 잠시 뜸을 들이던 유진은 떨리는 입술을 천천히 열었다. "엄마가... 매질하는 게 힘들다고 외삼촌에게 시켰어요. 흐흑!"

"그만, 유진아 그만해!"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유진이 안쓰러워 도훈은 유진을 꼭 끌어안았다.


유진의 증언이 이어질수록 형사의 표정은 점점 심각해졌다. 그는 유진에게 말했다.

"힘들면 그만해도 돼요."


잠깐 휴식을 취한 뒤 유진은 홍선숙과 함께 살던 집의 모습과 그곳에서 있었던 여러 사건들이 상세히 떠올랐고, 특히 아버지가 사고로 사망하기 전 홍선숙의 행동이 이상했음을 기억해 냈다.


"엄마가 집을 나가기 전 아빠가 몇 번이나 사고를 당했어요. 그런데 아빠는 왜 사고가 났는지 기억하지 못했어요."


형사는 이 증언을 바탕으로 당시의 증거 자료와 진술들을 다시 검토하기로 했으며 도훈은 어린 시절 유진의 모든 진료 기록과 복지관 상담기록들을 모았고, 경찰은 새로운 증거를 확보했다. 홍선숙의 과거 계좌 기록과 사건 당시의 병원 기록에서 의심스러운 정황이 발견되었다. 마침내 그녀는 법정에 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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