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미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언니 혹시 강아지 키워 볼 생각 없어?”
나는 가족들과 캠핑 중이었고 주변에 강아지를 데리고 캠핑을 온 가족들이 몇 보였다.
모두들 강아지와 함께 너무나 행복하게 잘 놀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아이들이 즐거워 보였다.
우리 애들도 얼마 전부터 강아지 타령을 했지만 먼저 고양이를 키워보니 털 빠짐 관리가 잘 안되어서 시골 부모님 댁으로 보낸 경험이 있었다.
그런 우리 사정으로 미루어 볼 때, 또 새로운 가족을 들인다는 건 무모한 짓인 것 같았다.
무엇보다 고양이를 보내고 아이들이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했는데, 혹시나 키우다가 다시 또 보내게 되는 날에는 아이들에게도 입양한 강아지에게도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망설이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생후 7개월 되었고, 종은 폼피츠.”
“폼피츠? 첨 듣는데?”
내가 되묻자 그녀는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 ‘포메라니안’과 ‘스피츠’라는 종이 섞여서 ‘폼피츠’라는 새로운 종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믹스견이야?’ 되물어 보려다 키울지 안 키울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키운다고 한들 종류가 뭐든 그게 왜 중요할까 싶어 그만두었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폼피츠는 예쁜 품종을 만들어 키우기 위해 연구하던 중 포메라니안과 스피츠를 교배하여 만들었다는 설도 있고, 예전에 포메라니안이 스피츠의 한 종이었기 때문에 같은 종인줄 알고 교배하여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현재 폼피츠는 어엿한 새로운 품종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너무 예쁜 외모 때문에 애완인이 선호하는 품종이기도 하다.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키우는 분에게 사정이 생겨서 구르미를 매일 혼자 집에 두어야 하는데 그게 너무 애처로워서 구르미를 외롭지 않게 해 줄 가족을 찾고 있대. 순간 동물 좋아하는 언니 생각이 나서 내가 먼저 연락해 본거야.”
그리고 그녀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한 장 보내 주었다.
다 자란 성견으로 보였다.
하긴 강아지 7개월이면 거의 다 자란 거나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사진만 보고 결정하기 곤란했다.
가족들도 모두 찬성을 해야 하고 예산도 배제할 수 없었기에 일단 실물을 보자고 했다.
다음날 우리 가족은 구르미를 보러 갔고 찬찬히 살펴보던 남편이 물었다.
“포메라니안인가? 이쁘긴 진짜 이쁘다.”
일단 남편은 찬성하는 듯했다.
하지만 작은 아이가 반대하는 바람에 그냥 돌아왔는데 저녁이 되자 마음이 바뀌었는지 다시 데려 오라고 했다.
“어제는 싫다면서?” 하고 묻자,
“우리보다 먼저 죽을까 봐 그랬어.”
녀석은 언제 일어날지도 모를 이별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대신 평생 아껴주고 예뻐해 주자.”
나는 작은애를 다독거리고 구르미를 데리고 왔다.
내가 고양이를 키우자고 할 때에도 남편은 늘 말해왔다.
“나는 고양이보다는 개를 좋아해.”
그러나 처음에 내가 구르미를 데려 오자고 할 때 남편은 몇 번이나 키울 자신이 있냐고 물었고 중간에 포기할 거면 처음부터 키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었다.
그러나 남편은 구르미가 집에 오자마자 장난을 치면서, 대소변을 가리고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행동들이 신기하다고 했다. 또한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퇴근할 때마다 무뚝뚝한 다른 가족들과 달리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을 반겨주는 구르미에게 홀딱 반해버린 듯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달랐다.
동물사육사가 되고 싶었을 만큼 모든 동물을 좋아했지만 그중에서도 고양이를 가장 좋아했고 ‘고양이는 신이 만든 걸작’이라고 하며 고양이 예찬론을 펼치던 나였다.
특히 내가 고양이를 좋아한 이유는 너무 충성스럽지 않아서였는데, 개는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을 위해 대부분 목숨을 걸고 충성을 다한다.
그런 나에게 구르미는 조금 부담스러운 존재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감정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품종 : 폼피츠
나이 : 생후 7개월
성별 : 남(수컷)
이름은 그대로 ‘구르미’ 가끔 구르미의 준말 ‘꾸미’ 그리고 ‘구름’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지만 구르미는 모두 자신의 이름으로 인식하는 듯했으며, 태어난 날을 정확하게 몰라서 처음 우리 집에 온 날인 2019년 5월 7일을 구르미의 생일로 정했다.
예방접종과 중성화 수술을 이미 한 상태였고 대. 소변도 가린다고 해서 우리는 별 걱정 없이 구르미를 키우게 되었다.
이렇게 구르미는 우리에게 왔고 함께 살아온 지 만 3년이 된 지금 우리가 구르미에게 느끼는 감정은 나나 남편이나 아이들이나 모두 같을 것이다.
고양이, 강아지, 반려동물 따위의 수식어들을 떠나서 그저 우리 가족 구성원중에 없어서는 안 될, 아니 생각조차도 해보지 않은 당연한 존재였고 다른 가족들이 그저 그렇게 살아가듯이 우리 또한 구르미와 함께 평범하고 소박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구르미를 가슴에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