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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요커 Jan 07. 2020

뉴요커들도 잘 모르는 숨겨진 명소!

나의 새로운 고객사 모건 라이브러리 & 뮤지엄에 대하여

바야흐로 2020년 새해가 밝았고, 첫 글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이어 나의 2번째 담당 고객이 된 모건 라이브러리 & 뮤지엄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한다. 아무쪼록 독자 여러분 모두 2019년을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희망찬 2020년을 맞이하셨길 바라며 이번 편을 시작한다.


모건 라이브러리 & 뮤지엄은 과연 어떤 곳일까?


우선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미국 은행계의 거물인 J.P Morgan (John Pierpont Morgan)과 관련된 곳이다. 또 다른 금융계 거물인 모건 스탠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혼란스러워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둘이 같은 인물 아니냐는 질문도 받은 적이 있는데, 둘은 엄연히 다른 사람들이다. 엄청난 자본가였던 JP 모건은 미국에서 현재 가장 큰 대형 은행 중 하나인 J.P Morgan Chase 만들었으며,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모건 라이브러리 & 뮤지엄은 그와 그의 아들의 자택, 그리고 서재가 합쳐진 다소 큰 규모의 뮤지엄이다.


원래는 3개의 건물이 별도로 있었으나 레노베이션 등을 통해 저택 본관들과 서재가 모두 한 건물처럼 연결이 되어 있다. 지금 볼 수 있는 모던한 공간은 연결을 위해 실내화가 진행된 공간이며, 라이브러리 본관은 실제 서재이다. J.P 모건이 실제로 거주했던 저택 대부분의 공간은 기프트샵과 레스토랑을 제외하면 직원만 출입이 가능하다 (모건 라이브러리의 기본 정보를 이미 알고 계시다면 밑으로 스크롤을 쭉 내려 직원만 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내용을 하단에서 확인하시기 바란다).


금융 쪽에 몸을 담았던 그의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았고, 남북전쟁 시기 당시 사령관과의 친분을 통해 전쟁에 관한 정보를 얻어 금 거래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거두며 회사의 규모를 엄청나게 키울 재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의 저택 중 하나이자 업무를 보던 서재는 맨해튼 미드타운의 중심인 36가와 37가 사이에 Madison Avenue 선상에 위치하고 있었다. 경제 대공황 시절에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과 당시 미국을 이끌던 자본가들이 이곳에서 회의를 가진 적도 있다고 하니 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으만도 하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J.P Morgan이나 카네기 가문 등이 여러 산업을 독과점하는 것을 셔먼 독과점 방지법과 트러스트 등을 통해서 강력히 제재하여 J.P 모건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경제 극복을 위해서는 대통령도 그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옛날 모건 라이브러리 & 뮤지엄의 출입구 - 현재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J.P Morgan은 막대한 재산으로 전 세계의 엄청난 예술품, 서적, 장식품 등을 엄청나게 소유했다. 그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도 엄청나게 많은 미술품들을 기증했으며 록펠러 가문, 벤더빌트 가문과 더불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뉴욕에 큰 기여를 한 인물로 뽑힌다. 1924년에 그의 아들인 J.P Morgan 주니어는 그들이 소유하고 있던 당시 매우 호화로운 저택이자 서재를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공공시설로 기증을 하게 된다. 이 건물은 1966년에 뉴욕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건물로 선정이 되었고, 같은 해 국가 지정 유적 건물로도 지정이 된다. 그 후 수많은 보수와 증축 등을 통해 현재의 모건 라이브러리 & 뮤지엄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여기가 담당 고객사가 되고 첫 출근을 한 날, 나는 이곳에서 15년을 일한 직원으로부터 역사 설명과 더불어 VIP 투어를 받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규모가 커서 놀라웠다. 사실 나는 이곳으로 발령이 나기 전에는 존재를 잘 모르고 있었던 곳이었다. 투어를 받고 나니 깊은 역사가 있고, 이곳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들의 놀라운 가치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역사의 자랑인 첫 금속활자 직지심체요절 이야기가 나올 때 늘 교과서에서 글로만 보던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로 인쇄된 성경과 더불어, 모차르트, 베토벤 등 유명 음악가의 악보 원본, 르네상스 시대의 여러 미술품과 조각품, 수많은 유명한 도서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특별전을 통하여 매우 유명한 책들의 전시회를 진행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2019년의 겨울의 경우 크리스마스에 맞춰 Charles Dickenson의 오리지널 크리스마스 캐롤 악보와 가사집이 전시되기도 했다. 또한, 다양한 음악회 등이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한데, 올해 2월에는 제2의 조성진으로 불리는 네이슨 리의 피아노 독주 공연이 예정되어 있는 등 유명 뮤지션의 공연도 자주 이루어진다.


사실 사진으로 먼저 살펴봤던 모습들에 비해 실제로 본 광경이 더 예쁘지는 않았다. 특히, 라이브러리 본관 (East Room)은 사진빨이 엄청나게 잘 받는 곳임을 알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느낌만큼은 사진보다 훌륭한 느낌이었다. 역사적인 건물인지라 자세히 보면 낡고 어두침침한 느낌은 있었으나, 고풍스러운 느낌이 주는 감흥은 실로 대단했다. 특히 매우 작은 책부터 거대한 책까지 무수한 책들에 둘러싸여 둘러보면 숙연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많은 보정이 이루어진 위 사진들
조금 밝게 나왔지만 위 2장의 보정 사진과는 느낌이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그가 업무를 보던 서재에는 그가 사용하던 책상과 의자 등이 그대로 보존 및 전시가 되어 있다. 벽면에는 그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데, 그가 취득한 캠브릿지 대학 법학 박사 학위의 빨간 가운을 입고 있는 모습이다. 이 초상화는 그의 절친한 친구인 Frank Owen Salisbury 그려줬다고 한다.

워런 버핏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이 그의 집무실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온라인에 모건 라이브러리를 소개한 여러 좋은 글이 많으니 지금부터는 숨겨진 역사나 직원들만이 알 수 있는 정보들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J.P Morgan은 사랑꾼? 입구의 커다란 '종'과 직원만 볼 수 있는 '배'에 대하여


직원들만 출입할 수 있는 저택의 층계가 있는 곳인 1층 메인 로비에 가면 생뚱맞게도 배의 모형이 전시가 되어 있다. 나는 스페셜 투어를 해준 직원으로부터 그 배경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직원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이라 매우 조용하고 숙연한 저택의 로비


그 배는 사실 J.P Morgan이 이탈리아 밀라노를 좋아하는 아내와 함께 뉴욕과 밀라노를 오갈 때 사용하던 배를 본 딴 모형이었다. 둘은 그러한 여행을 즐겼고, 한 번 다녀오면 막대한 양의 예술품과 사치품 등을 구매하는 등 아내를 위해서도 많은 선물을 하던 그였다고 한다. 너무 막대한 재력과 과시를 많이 한 그의 성격 탓일까? 그는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미움을 받고, 미국 정부로부터도 약간의 미운털이 박혔었다고 한다. 그래서 기증도 많이 했고,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그가 사용했던 커다란 배였다. 그 배는 미군의 군함으로 활용이 되었다고 한다.


그 배에서 기증하지 않은 것이 딱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입구에 있는 커다란 '종'이라고 한다.


사랑꾼의 다른 여자?


구석구석 투어 하다 보면 비슷한 두건을 두른 한 여성의 조각상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그의 아내라고 생각을 한다. 그녀의 모습을 보면 당시 막대한 부를 누리던 여성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고, 귀족의 느낌이 덜해서 일부 사람들은 J.P Morgan이 마음에 품은 아내 외의 다른 여자가 아닐까 추측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사실 처음으로 고용된 Librarian 인 Belle da Costa Greene이다.


프린스턴 대학 출신의 재원으로 1905년 26살에 고용이 되어 1948년 은퇴 때까지 자신의 평생 커리어를 보내고 이곳의 역사를 더욱 빛나게 만든 인물로 평가된다. 그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제작된 자화상, 얼굴 조각상, 흉상 등을 뮤지엄 내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아내의 모습을 담은 자화상은 레스토랑인 The Morgan Dining Room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간의 활용


현재 Management 오피스는 저택 본관에 대부분 위치하고 있다. 2층에 사무실이 많이 있고, 1층에는 2곳의 미팅룸이 있는데 과거에 손님들을 위해 사용하던 공간이다. 현재 기념품샵이 위치한 곳은 과거에 응접설로 사용을 하던 공간이다. 그리고, Dining Room이라고 불리는 레스토랑은 이름에서도 추측할 수 있듯 그의 일가가 실제로 식사를 위해 사용하던 공간이며, 해당 공간을 확장하지는 않아서 뉴욕 중심가의 레스토랑 치고는 매우 작은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저택과 라이브러리를 연결한 신관의 대부분 공간은 엄청난 수의 유리창을 가진 대형 카페로 사용되고 있다.


신관들을 제외하고는 역사적으로 보존이 되고 있는 건물이라 건물 자체의 냉난방 시설 또한 오래전 시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사무실의 문들 마저도 옛날의 그것을 그대로 사용 중이다. 나의 오피스 문 또한 오래되어도 교체를 하지 않아서 그 문에 장착된 락이 여러 개다 (누군가 과거에 열쇠를 잃어버리고 새로 락을 달거나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두 그루의 나무


신관에 보면 카페를 중심으로 나무 2 그루가 있다.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류라고는 하는데 (이름이 잘 기억이 안 난다), 원래는 키가 모건의 그것들만큼 크지 않는다고 한다. 크기를 키우기 위해서 이 나무를 플로리다까지 보내서 오랜 시간 키워서 다시 가져와서 심었다고 하니 정성이 기가 막힐 정도다. 아직도 이 나무는 매일 아침 많은 낙엽을 떨어뜨리지만 하루가 지나면 또 다른 잎사귀가 피어나는 등 실제로 살아있는 나무이다.


그들(?)과는 차원이 다른 친절함


이 회사에 오고 나서 트레이닝을 받았던 곳을 포함해서 총 3곳의 미술관 혹은 박물관에서 근무를 했었다. Library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관장님을 비롯한 모든 클라이언트가 정말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친절하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근무하던 때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했는데 한 유럽계 백인이 내 인사는 안 받고 다른 백인이 타자 웃으며 인사하던 못 된 인간 때문에 기분이 나빴던 기억이 있는데 인종차별이라고 생각을 했다. 집에 와서 너무 분해서 아내에게 하소연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다음부터 마주칠 때면 입꼬리를 올리고 인사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 모건으로 오고 난 이후부터는 정말 그런 것으로는 스트레스가 하나도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관장님은 너무 젠틀한 영국 신사이시고, 부관장님인 제시카는 매일 보며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친근한 사이가 되었다. 그 외 모든 부서의 디렉터들도 어찌나 친절한지 만날 때마다 기분 좋은 인사를 주고받아서 출근할 맛 나는 장소이다.


우선 새해 첫 글을 최대한 빨리 써보고 싶었던 생각에 모건 라이브러리 & 뮤지엄을 다룬 여행 정보 글들에 비해서는 잘 정돈되게 작성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알게 되는 특별한 정보들을 나눠볼 계획이다.





오늘도 제 글에 관심을 갖고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늦었지만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20년 한 해 이루고자 하시는 것들 꼭 이루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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