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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숲사진가 Apr 16. 2022

‘일단 기록’ 하고 볼 일이다

순간을 놓치기 싫다면 수단과 도구를 가릴 게 없다

“꼭 손에 대단한 카메라가 없어도 놓치기 싫은 순간들이 너무나 많은 나날들이 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겨울이 유독 길고도 싫었다. 특히 밖으로 돌아다니는 사진을 많이 하는 나로서는, 추위 앞에 움츠러들며 언제쯤 다시 봄이 올까를 달력을 보며 계속 해서 되뇌이는 모습이었다. 겨울보다는 따뜻한 날씨를 좋아하는 내게 즐거운 일들과 그 해의 즐거운 추억들은 주로 늘 봄과 여름에 함께 모여들었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우리 앞으로 날아와 우리를 시리게 때리고 가는 바람과 찬 공기 속에 느릿느릿한 발걸음들이 계속되었다.


그랬던 내게 지금의 이 4월이란 얼마나 축제 같은 계절인지 모르겠다. 가벼운 옷차림과 다시 주변이 푸르고 초록빛 기운이 돌며 그 속에서 더욱 다채로워지는 빛깔들. 역시 봄이란 좋은 계절이다. 다채로워지는 계절이라는 것은, 그만큼 추위 속 멈췄던 것들이 다시 생기를 되찾아가고, 다시 말해 사진 찍는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록할 거리가 굉장히 많아지는 순간이라는 의미와도 같다. 고개만 돌리면 “아 저 순간을 그대로 멈춰서 내가 갖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이 많다.


회사 점심 시간에 산책 하다 찍은 마지막 벚꽃과 민들레, 싸리꽃. 카메라가 손에 없어서 아이폰으로 찍었다

학생 때 사진을 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다. 니콘의 D700이라는 카메라를 썼었는데, 원래도 튼튼하게 만든다는 니콘 DSLR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녀석이었다. 그때는 후줄근한 옷차림에 백팩에 그 무거운 걸 렌즈까지 몇개씩 넣고 매일을 들고 집과 서울을 누볐다. 조금 더 어렸던 그 때의 나는 ‘좋은 순간은 꼭 좋은 장비가 내 손에 있는 순간에 담아내는게 중요하다’고 믿었다. 지금의 나는 인정하기 싫기도 하고 부끄럽지만 그때와 똑같은 넘치는 힘과 폭발적인 동기부여는 조금 많이 줄었다. 사진을 한 순간부터 보내온 계절이 이미 너무나 많이 지났기 때문이리라. 경험이라는 것은 자산이지만 때로는 반복 학습 속의 매너리즘도 함께 동반하곤 한다.


이런 순간은 도구에 연연할 것 없이 늘 설레이는 순간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이 화려한 계절의 문 앞에서 설레이지 않을 수 있겠나. 그리고 그 순간들을 담아내는 일에 여전히 설레인다. 이럴 때는 그냥 아이폰으로만 찍어도 즐거운 사진을 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됐다는 그 때의 넘치는 힘보다는 좀 부족하고, 내 가방에는 매일이 아닌, 간헐적으로 카메라가 함께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순간들을 마주하면 내 손에 있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기록 한다. 무겁고 좋은 장비가 내 손안에 있다는 것보다는 역시 기록하는 이와 ‘기록 그 자체’ 라는 단순 불변의 진리를 기다려온 이 계절에 다시금 느껴본다.


신나는 와인 파티 자리에도 가벼운 가방 든다고 카메라를 못챙겼다. 그래도 일단 기록만 해도 좋다.

주변에서 무언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블로그를 해보고 싶은데 카메라가 아직 없다거나, 유튜브를 해보고 싶은데 고프로가 없어서 아직 시작을 못했다라는 등의 이야기를 종종 함께 듣는다. 물론 하려는 장르와 연출에 따라 특정 장비가 반드시 있어야 유리한 상황에서 운영할 수 있을 때가 있다. 그렇지만, 꼭 수단과 도구가 모든걸 좌우하지는 않았다. 기록을 반드시 완벽하고 빈틈 없이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런 생각은 나중에 가장 기록을 해야할 상황에서 망설이다가 그 순간을 놓치게 하는 족쇄로 나중에 되돌아 오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 봄의 나는 이번에도 이렇게 생각하며 완연한 봄을 즐겨보려 한다.


“모르겠고, 일단 기록하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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