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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숲사진가 Oct 10. 2022

닿을 수 없었던 청사포에 이르렀다

청사포에서 오후를 보내며 느낀 3가지 생각들

닿을 수 없던 곳에 도달 했다
나에게는 늘 멀고도 먼 부산

새 직장에 합류한 이후로는 외근이 꽤나 생기게 되었지만, 부산으로의 출장 지시를 받게 된 것은 정말이지 뜻밖이었다. 부산은 심적으로 ‘굉장히 먼 곳’이라는 이미지가 박혀 있는 곳이기 때문에 여행으로든, 그 다른 목적으로의 방문이던 서울 수도권 거주자에겐 결코 쉽고 만만하게 방문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올 한 해의 내 삶에 대해 한 문장으로 정리 하라고 한다면 ‘단 일주일 뒤의 내 운명도 알 수 없으리만큼 변화무쌍한 인생곡선’ 이라고 이야기 한다. 올해의 날씨와도 같다고 언급하곤 했던 올해의 내 삶이 그토록 닿지 못하게 가로막던 청사포에 결국 그렇게 다다르게 되었다. 미포 블루라인 해양열차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청사포의 바닷바람을 마신다


열차 문이 열리고, 청사포에 처음 발을 내딛었다


#1  

부산은 여행지로서는 거대한 도시이다. 그곳으로 가기까지의 교통비도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또한 운전을 하기 전까지는 부산에 제 아무리 볼거리가 많다고 해도 가서도 마음껏 돌아다니기가 어려웠고 학생일 때는 택시비도 제법 부담을 주곤 했다. 이래저래 이중 삼중의 장벽이 쳐져 있으니 그럴 바에는 아예 더 오지인 곳을 가거나, 그냥 서울에서 놀고 말지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부산은 그렇게 여러모로 내 마음 속에서 먼 곳이었다. 그 중에서도 외딴 곳에 있는 청사포는, 내게는 그 ‘닿을 수 없었던’ 장소였다. 부산에 연고가 있거나 사정에 능통하지 않고는 쉽사리 가볼까 하는 생각조차 갖기 어려웠던 장소였으니 말이다.


어쩌다 가끔씩 ‘그래 가볼까’ 하며 강한 마음을 먹어보고자 해도 이상하게 그 결집했던 마음들이 금방 손에 쥔 모래처럼 알알이 흩뿌려져 나가곤 했다. 이처럼 여행지도, 사람의 일과 인연들도 아무리 애써도 결국 ‘나의 것’이 아닌 것들이 있었고 아무 생각 없었거나 원하지 않았어도 결국에는 이내 선선해지는 가을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나와 함께 하게 되는 존재들이 삶에 늘 있었다. 그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미로 속 길을 잃은 여행자처럼 감정을 고정시켜두기 못하고 두려움에 빠지거나 슬픔에 잠기기도 한다. 삶이 늘 그러했고 결국 우리는 그렇게 또 한걸음씩 나아감을 반복했다.


닿을 곳이라면 결국 언젠가는 반드시 도달 해내게 된다.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2

기어이 마주한 청사포의 첫 인상은 제법이었다. 단단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의 깊은 푸른색과 여전히 강한 9월 막바지의 햇살들은 흰색 일변도의 집, 건물들의 외벽에 쏘아져 나가며 반짝거림을 더했다. 마을 자체는 작지만 내실 있는 인상이었다. 그 와중 자투리 농경지로 주어진 땅들을 열심히 일구어 놓았으며 배들은 잘 정돈 되어 물길이 인간에게 허락하는 날에 한해서는 언제든 나갈 준비들을 하며 쉬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틈새틈새로 여행지들을 반기는 감각 있는 가게들이 보였으며 한 쪽 구석으로는 음식점들이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모든 요소들로 넓어져 나가던 시선은 마을 중앙의 등대에서 다시 한데 만났다. ‘아 참 좋은데, 마을 참 작다. 정말 금방 둘러보네. 그래도 마음에 든다 꽤.’ 라고 결론을 내렸다.

무대가 소극장일뿐, 그들의 오랜 세월 이어져온 삶 역시 바다와 함께 깊음을 품었다.


그 마을을 보고, 사람들의 삶을 보고, 작은 마을에 걸맞는 소담스럽게 아름다운 바다도 보고, 이내 항만 앞에 있는 한 카페를 발견하고 들어갔다. 디저트를 좋아하지만 ‘굳이’ 시키지는 않는 타입인데 이 날 따라 유독 케이크를 같이 시키고 싶었다. 케이크와 드립커피를 함께 한입씩 하는데, 정말 달다. 뻔뻔하게도 먹는건 끝없이 입으로 들어가는데, 계속 생각없이 입 안에 집어넣으면서 ‘이 정도의 달콤함에 비견될 만큼의 그 감정을 난 이 곳에서 기대했던걸까.’ 라는 생각으로 운을 뗐다. 그리고 그 기대와 내가 실제로 보고 있는 청사포는 일치 하는게 맞는걸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답을 내기 어렵다. 청사포를 기대해보던 시점의 나와 얼떨결에 기어이 도달하게 된 지금의 내가 다른 것인지, 청사포가 실제로 내 기대 속에서 부풀려졌던 것일지 길게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계속 미제로 남긴다. 그 문제를 계속 곱씹을 즈음에 지금의 이 글을 이 장소에서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3

여전히 내 2022년은 '올해의 변화무쌍했던 날씨'와도 같았다. 이번 부산 출장에서 같이 갔던 회사 동료 분이 “올해의 남은 목표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을 했는데, 사실 그게 대해 속시원하게 답을 하지 못했다. 가장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의 궁극적이고 추상적인 대답은 아마도 “이 불확실함의 날씨에서 벗어나 더 멀리 맑고 또렷하게 보는 것이요” 라는 대답이었을 것이다.


한 치 앞으로 알 수 없는 날씨로부터 벗어나 그러한 또렷함의 삶을 산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또렷함이라는 키워드를 만들어내기까지는 많은 것들이 관여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그 어떤 날씨가 찾아와도 ‘종잡을 수 없다’는 감정 조차 없도록 내 스스로가 깊은 뿌리를 가진 거목이 된다는 것, 그리고 약간의 운이 필요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깊게 뿌리를 내려볼 수 있을까. 결국 거목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지점까지 커나갈 수 있을까. 더 이상 흔들리는, 그리고 그 것이 당연한 나무가 되고 싶지 않다. 간절하게.




하루 앞을 알 수 없는 날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다는 것의 의미란 알고도 지켜내기 어려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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