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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숲사진가 Aug 23. 2022

사진쟁이 어머님은 남한산성 야경을 처음 보았다

야경 찍으며 다시 곱씹어본 '부모'라는 무게감

나의 발걸음이 바쁠 동안 엄마는 늘 집이었다


피치 않게 쉬게 되었던 여름 한복판의 시간들을 보내주고 다시 성수동으로 출근을 시작한 첫 주말이었다. 그냥 시간만 보내주기는 싫었고, 하늘도 간만에 푸르렀다. 사진쟁이들에게 이런 날 오는 촉이 몇가지가 있는데, '음 이런 날 인물 사진 찍으면 이쁘게 잘 나오겠다.', '오늘은 노을이 이쁜 하늘이겠구나.', '아 오늘은 흐리지만 제법 분위기가 있겠어' 등의 순간순간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들이 그 것이다. 오랜 시간 사진을 하다보면 누구나 장착하게 되는 그런 촉이라고 할 수 있는데 꽤나 정확한 감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서울에서만 경기와 서울을 오고가는 삶으로 20대의 거진 전부를 보냈고, 작년부터 약 1년간 처음으로 집과 회사가 모두 수원인 일상 동선을 보냈다. 그러고서는 결국 다시 서울로 돌아온 지금, 나는 서울 전체를 한 눈에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근래부터 했었다. 때 마침 엄마도 도서관에 출근하지 않는 주말이었기에 나는 저녁 드라이브를 엄마에게 제안할 수 있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또 서울만한 곳이 없다. 황금빛 노을 아래 굽이쳐 흘러가는 한강 줄기, 사이사이 솟아 있는 건물들의 기세.


야경 찍는 사람들에게는 철저한 시간 기준선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그 것을 '매직아워'라고 부른다. (누군가는 골든타임이라고도 부르는걸 보았다.) 일몰 시간을 기준으로 앞뒤 30분씩, 총 1시간을 일컫는 말인데, 이 시간대에 찍는 것이 가장 화사하면서도 건물 구석구석의 어두운 암부까지도 디테일이 살아 있는 채로 다채로운 야경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이다. 직장인들에게는 참으로 지키기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주말이고 여유로웠기에 일찌감치 나는 차에 시동을 걸고 남한산성으로 차를 몰았고, 큰 어려움 없이 남한산성 서문에 올랐다. 


남한산성이라는 존재는 서울 수도권에 적을 두고 있는 대다수의 사진 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장소이다. 이 곳에서 맑은 날씨에 내려다 보는 시야는 과장 좀 보태서 인천을 넘어 강화도까지 보인다고 하곤 할 만큼 과거의 한양이었던 현재의 우리의 서울을 조망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어느 나라를 가도 이 정도의 거대한 규모의 제1 도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환경이 있는 곳도 보기 어렵다. 남한산성 서문에서 이따금씩 벌어지곤 한다는 자리싸움을 난 싫어하지만 일어나는 사실 자체는 그런 이유에서 어느 정도는 납득할 수 있었다. 운전을 하기 전에는 어려운 걸음이었지만 그래도 나 역시 종종 오곤 하던 장소였다.


한강을 반으로 가르는 롯데타워와 저 뒤의 남산타워


다만, 내가 한창 이런저런 이유로 더 넓은 세상을 보겠다며 돌아다닐 때 늘 집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시던 엄마는 남한산성 야경이 처음이고 생소했는지, 내가 자리를 잡고 매직아워에 돌입하는 동안 연신 성곽을 산책하며 조망 그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정작 나는 이곳을 그렇게 자주 방문하면서 관심도 없고 몰랐던 사실이었던, 이 남한산성 바로 밑에 초등학교가 있다느니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면서도 나름의 처음하는 광활하고도 즐거운 구경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사진을 하기 한참 이전부터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반드시 어떻게든 지금의 이 사진들과 같이 현실과 절충을 보면서라도 해야만 했던 성격이었고, 엄마는 현실과 이상 사이를 오가며 나에게 좋은 이야기만을 하지는 않던, 어찌보면 자처한 악역에도 가까운 역할을 나의 성장기 때부터 맡아왔다. 물론 고집불통의 나를 결국 엄마는 포기 했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게 내버려두곤 했지만, 그 시간들 속에 내가 더 넓은 세상을 보겠다고 누비고 다닐 동안 엄마는 늘 내가 그 여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에 집 안의 불을 밝혀두고 내가 혼자 불을 켜지 않도록 반겨주는 역할이었다는걸 나는 잊고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해가 한창 사라지고 땅거미가 지는 순간에도 연신 셔터를 누르기 보다는 그냥 찍을 컷만 적당히 담아두고 상념에 잠기는 시간이 이 날은 좀 더 길었다.


해를 집어 삼키는 순간을 지켜보는 이 순간의 즐거움, 나만 알고 있었다.


2018년 가을에 노을이 형과 방문 했던 이후로 가장 맘에 들었던 남한산성 야경이었고, 완벽한 일요일 마무리의 화룡점정이 되었을테지만, 그럼에도 그런 생각들로 아주 깊은 마음 한켠은 동시에 무거웠던 것 같다. 어디선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할 대상을 갖게 되는 것' 이라고 들은 바 있다. 그와 같이 부모의 마음이라는게 그럼에도 괜찮다고 말하며 웃어보이는 것일까 라는 의문과 함께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그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던 구할 수 없던, 늘 열심히 넓은 세상을 찾아 모험을 하던 대숲사진가는 그 대숲사진가를 낳은 어머니의 발도 앞으로는 많이 되어 드려야겠다는 또 다른 다짐을 함께 갖게 되었다. 또한 발이 되어드리면서도 '부끄럽지 않은 발'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가시거리가 좋지 않았지만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참 괜찮았던 일요일 남한산성 야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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