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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숲사진가 Jun 04. 2022

그 분들의 삶을 보았다 (남해.FIN)

독일 마을에 숨겨진 본질

"끝을 마주하는 순간의 감정은 늘 서툴다."

숙소를 떠나야만 하는 마지막 날 아침에 일어나는 기분이란 늘 복잡미묘하다. 딱 하루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가, '그래도 늦지 않고 주인 댁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얼른 움직여야 하는데', '하지만 정말 씻으러 가기에는 귀찮구나' 하는 생각들이 쉴 새 없이 따라 붙으며 찾아온다. 하지만 떠날 때 떠나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이 민박집과 다랭이마을을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사진이 다는 담아주지 못하는 공기와, 소리들, 꽃내음을.

떠나기 전의 분주했던 마당. 작품 같은 사진은 아니지만 늘 의미 있는 기억의 한 조각이다.


떠나는 날의 아침은 흠잡을데 없이 쾌청 그 자체인 날씨였다. 마당을 바라보니 다랭이 마을에 유독 많이 살고 있던 길고양이들이 한가롭게 햇빛을 쬐고 있던 모습들이 보였다. 이제 떠나면 저 녀석들도 한동안은 추억 회상이라는 안줏거리로 이후 창과의 술 자리에서 자주 오르내리게 될 것이었다. 마당 평상으로 나와 밥을 먹고 있자니, 우리가 한입 하라며 던져주기 전부터도 밥상에 올라 우리의 음식을 탐하려고 했던 귀엽지만 발칙했던 녀석들이었다. 동시에 몇몇 녀석들은 열려 있는 우리의 방문 안쪽까지 기웃거리며 방 안으로까지 들어가기도 했다. 물론 나의 바쁜 손사래에 호다닥 도망가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도망갔다가도 다시 슬금슬금 우리 쪽으로 돌아오곤 했던 녀석들이었는데 정말이지 자신들을 대하는 인간들을 들었다 놨다 할 줄 아는 아이들이다.


너희가 우릴 기억 못하겠지만 우리가 너희를 다시 찾을게

민박집 할머니께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리고 나와서 다랭이 마을을 한번  샅샅히 훑듯이 책을 했다. 나는 장소에 대한 애착이 강한 편인데, 화사한 봄을 입고 있는  마을과 유채꽃, 바다를 보고 있자니  곳의 여름과 차분하고도 추운 날들도 궁금해졌다. 기회가 되면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좋은 모습  아니라  사람의 모든 영역들에 대해 궁금해지듯이 말이다. 가장 좋아하는 상대의 면모  아니라 다양한 많은 조각들도 함께 받아들이고 좋아해줄  있다는 , 나에게는 그것이 애착이라는 단어에 대해 내릴  있는 정의였다. 그리고 나중에   마을 입구 땅을 다시 밟으러 오자는 창과의 다짐 속에  애착을 새겼다. 분명  다시  마을을 방문하게  것이다.


돌아와요 다랭이 마을의 그 바다에

어렵사리 다랭이 마을을 보내주고 점심 때를 훌쩍 넘겼지만, 아직 남해라는 도시와는 이별할 준비가 되지 않은 마음이 우리를 이끌은 장소는 교과서와 SNS에서 그럴싸한 사진들로 접했던 독일 마을이었다. 남해에서 운전을 하며 돌아다니다 보면 아마 금방 발견하게 될 특이점이 하나 존재하는데, 남해 대다수 지점들이 거대한 8자 모양의 도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8자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 남해를 편안하게 구경하고 다닐 수 있다. 이 독일 마을은 그 8자 모양의 마지막 끄트머리 쪽에 닿아 있었다.



놀이 공원이나 테마 파크 같은 곳들을 가면 으레 보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조잡한 플라스틱으로 흉내만 내어 놓은 벽들과 지붕들, 그리고 모양만 그럴싸하게 꾸며놓은 음식들까지. 독일 마을도 그런 곳이 아닐까하는 걱정을 앞서며 주차를 했다. 그런데 마을 입구를 지나 본격 마을이 보이는 언덕 정상에 들어서니, 지붕들이 제법 그럴싸했다. 진짜 독일이나 동유럽 쪽을 갔을 때 봤던 붉은 빛깔 기와들이 올려진 지붕과 빛이 반사 되어 반짝반짝 거리는 흰색 외벽들이 우릴 반겼다. 독일을 4번이나 다녀왔던 나로서는 반가운 풍경이었다.


꾸며낸 것이 아닌 '진짜' 이야기가 담긴 마을

이제는 꽤나 예전이라고 이야기 할만한 시절에 광부, 간호사 등으로 파독을 나가셨던 분들이 이곳에 한데 모여서 사시는 곳들이라는 것들 마을을 돌며 알게 되었다. 그간 남해에 독일 마을이 있었다는 것만 알았지 그 내면에 대해서는 사실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던 나 자신의 무지함에 대해 책망하면서 마을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집 앞 마당마다 독일의 익숙한 도시 이름들이 문패와 같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알고 보니 집의 주인이신 어르신들께서 파독 기간에 머무르셨던 도시 이름을 문패에 같이 걸어놓으신 것이었다. 이 곳은 일개 테마파크 따위로 생각할 곳이 아닌, 누군가의 일생의 연대기 속 일부를 끄집어내서 그 시절을 되살려 놓은 기억의 조각들 그 자체였다. 이 분들의 삶 속 또 다른 평행세계를 우리는 그렇게 감탄하며 잠시 동안 마을을 산책했다.


맑은 날씨를 만끽하며 걷다가 눈에 들어온 베를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카페에 들어섰다. 사진쟁이들은 또 이런 카페의 분위기와 광경에 취하지 아니할 수 없다. 구경하면서 점점 드는 확신 '아 정말 누군가의 독일 속 삶을 내가 들여다 보고 있구나.' 소품 하나하나가 조잡하게 흉내낸 것이 없고, 건물 내부가 여행지에서 영감과 깊은 인상을 주었던 요소요소들이 살아 있었으며, 유럽의 가정집과 카페, 식당들의 자부심이라고 할만한 오래되고도 근사한 그릇들을 찬장과 선반들에 주르륵 나열하여 전시해놓은 광경들이다. 흉내 낸 것이 아닌, 그대로 옮겨 놓은 독일이라 할만했다. 혹자는 '그래도 남해에 흉내낸게 무슨 독일이야?' 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 분들의 삶과 인생의 한 조각을 옮겨와 그 시절의 이야기 자체를 옮겨 놓았다는 것에서 나는 감히 '테마 파크' 정도로 생각했던 나의 지레짐작을 반성했다.


베를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독일 마을의 한 카페, 이것은 꾸밈 없는 진짜 삶의 일부이다.


진정성이 담긴 진짜 이야기를 들여다본 기분이라 마을에서 내내 좋은 기분으로 걷고, 잠시 마시고, 다시 또 걸었다. 파독 시절의 삶의 일부를 끄집어내어 이곳에 구현하셨음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져본다면, 아마도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기억되기를 바라시길 바라셨을 마음이었을 것이라 감히 짐작 해본다. 희생이라는 가치 아래 많은 세월들을 우리가 투영하여 보고 있는 이 삶 속에 사셨고, 이 독일 마을이라는 평행 세게에는 다 담기지 못한 아픈 기억들도 있었을 것이다. 아픈 이야기까지는 우리가 모두 다 찾아보고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으니, 한 때 그런 삶을 거쳐온 분들이 계셨다는 것이라도, 우리의 기억 속 한켠에 오래오래 함께 하길 바라시지 않았을까. 그렇게 남해에서는 굉장히 많은 '기억'들을 보따리에 담아 넣어둔채 마침내 귀향길에 올랐다.


"(운전 하기에) 컨디션은 좀 어때, 괜찮아?" 라는 말을 올라오던 차 안에서 창이 건냈다. 남해를 벗어나서도 바로 위의 사천군까지 내리 가로질러 지나쳐서야 고속도로에 올라탈 수 있었던 기나긴 귀향길이었지만, 이상하게 오래 걸리지 않고 금방 올라오는 기분이 남았다. 그만큼 짙고도 긴 여운을 우리에게 남긴 여행이 아니었을까. 요리 하겠다며 들고 갔던 코펠 세트의 뚜껑 하나를 잃어버려서 집에 돌아와 한 소리 듣긴 했지만, 뚜껑 하나 정도로는 흠집도 나지 않을 만한 서사의 완성이었다.




귀향길 휴게소에서 지던 석양. 진짜 여행의 마침표를 찍는 시간이다.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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