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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숲사진가 Oct 06. 2022

2022 : 태풍 속 '눈의 시간' (FIN)

종잡을 수 없던 날씨. 그 것은 올해의 나 자신이었다.

어떤 날은 해가 보이다가도 금방 또 다시 비 구름과 바람을 마주해야 했다


올 여름의 날씨는 하루를 무사히 보냈어도 그 다음 날의 날씨를 예측함에 확신이 존재할 수 없었다. 분명 어제는 맑았는데, 오늘 아침 되어 다시 창문을 열었을 때 언제 그랬었냐는듯 거세게 불어오는 성난 비바람이 나를 맞기도 하였다. 하루가 아닌, 반나절 또는 몇 시간만에 이러한 변화가 보이기도 했다.


나는 비오는 날씨를 정말 싫어한다. 조금 더 어릴 때는 사실 속된 말로 '꼬라지'가 어떻게 되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진흙탕을 뒹구는 강아지 마냥 바깥 세상을 누볐고 편한 옷과 기동성 위주의 복장으로 다녔으니까 돌아다니는데에 제약이 있지 아니하였으며, 한 손에 우산,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밖을 돌아다닌 적도 많았다.


그러나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신경 쓸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 말을 입증하듯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는 편한 옷보다는 조금 불편하지만 각이 잡힌 옷을 입었으며 등에 짊어지는 가방 보다는 손에 들고 있어 오래 들고 있으면 팔이 저리는 일을 겪기도 하며 이전보다도 쉽게 피로해지는 기분도 함께 젖어드는 빗물처럼 서서히 느껴지곤 했다.



이 '비오는 날'의 의미에 대해 좀 더 풀어보자면, 액면 그대로의 의미일 뿐 아니라 우리의 삶 그 자체에 비가 내리는 날을 의미하는 중의적 의미 모두를 포괄했다. 겨울보다는 여름을 몇갑절로 좋아하는 나에게, 올 여름은 유독 여기저기에서 많은 비가 내리는 계절이었다. 그 비는 예기치 않게 갑자기 쏟아지기도 하였으며,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맞아도 내가 들고 있던 우산을 날려버릴 만큼 가늠할 수 없는 강력함으로 나를 두들겼다.


예기치 못하게 맞게 되는 비는 어찌보면 비참하기까지 했다. 어쩔 때는 그것 이 거스를 수 없는 힘에 의한 젖음이라는걸 알지만, 왜 나는 그 비를 직접 맞아야만 할 만큼 약할 수밖에 없었나는 자책하게 되는, 결국 내가 스스로를 더 다그치게 되는 함정 속으로 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비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어떻게든 그 비바람에 휩쓸려 날아가지는 않도록 주변을 붙잡고 엎드려 버티는 일 정도였다.


아 똑같은 수원역이지만 이 사진은 어찌나 참 마음에 들던지

나는 위기와 고난을 맞이 하는 순간이 왔을 때 사실 침착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온 주변이 알아볼 수밖에 없도록 온 몸을 뒤틀며 힘들어하던 유형이다. 다만 그럴지언정 이제까지 절대 완전히 놓아버린 채 절망에 자빠진 적은 없었다는 게 나의 강점이었다. 좋아하는 노래 가사 중에 '비에 젖어 움직일 수 없을 땐 차라리 더 맞는 것도 괜찮아'라는 가사가 나온 적이 있다. 올여름 유독 저 노래의 저 가사 부분을 곱씹었던 듯하다. 


내 의지와 역량에 상관없이 맑은 날과 비바람은 그 순서와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들었다. 예기치 못한 비 오는 날이 곧 불행과 직결된다고 믿는 이유는 쫄딱 젖고야 마는 그 상태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까닭일 것이다. 그냥 비에 젖어버리더라도, 결국 휩쓸려 날려가지만 않으면 오히려 잘하고 있는 상태일지도 모를 게다. 실패와 성공을 무엇으로 규정하고 판단하느냐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과 비슷한 논리에 의거하여 나는 이 비 오는 날씨에 겉으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나만의 '의연한' 방법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맑아지면 다시 함께 걸을 수 있을까


지금도 여전히 여름에 이어 거센 비가 계속 내리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우산도 다 놓쳐버렸고, 신고 있던 신발에도 물이 새어 들어오기 시작한 순간인 듯 하지만, 그냥 그런 모습도 결국 나 자신이니까 놓지 않을 것이다. 또한 어차피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날씨와 가능성이라면, 결국 지금의 이 눈의 시간을 건너 또다시 반대편 벽으로 나아가야만 할 것이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의 기억할만한 이번 여름의 날씨 속을 걸어가는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의 경의를 표하고 싶지만, 앞으로는 그 어떤 날씨가 닥치더라도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 자신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간절함을 담아 생각했다. 나는 비를 맞게 되더라도 그게 모든 것의 끝이라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 상태가 익숙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2022년의 유독 무덥고도 동시에 거세었던, 그래서 도저히 종잡을 수 없었던 여름날. 태풍 속 '눈의 시간'이었다.




빗물을 잔뜩 머금은 황화 코스모스는 간직한 이야기가 더 많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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