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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숲사진가 Sep 25. 2022

2022 : 태풍 속 '눈의 시간' (EP.2)

평소 할 수 없었던 소박하고도 거대한 미션을 행한다

평소의 나였다면 절대 시간을 쓰지 못했을 것만 같은 일들


평일 오후 탁이 일하는 곳에 놀러 갔다가 청파동이나 가보기로 했다


강남으로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의 나는 출퇴근에도 많은 시간을 썼으며, 주말에는 그런 평일간 푹 절여졌다는 것에 벼르기라도 한듯, 다른 신나는 일들을 벌이느라 일찌감치 다시 나가거나 잠을 몰아서 자곤 했다. 그래서 그 시절 나에게는 소박하지만 아주 거대한 미션이 존재 했는데 "아무 약속과 일정이 없는 주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동네 가장 이쁜 카페에 들어앉아서 아무 생각 없이 커피 한 잔 마시며 앉아 있는 일" 이 그것이었다. 평소의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 단박에 외치겠지만 당연히 그 시절의 나와 지금까지의 나는 이 미션을 해내지 못했다. 귀한 주말을 '고작 그런 일' 정도에는 쓸 수 없다는게 그 이유였다. 대단히 굳은 결심을 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또 다른 출항' 준비에 한창이던 나였지만 하루 정도는 이런 사치를 위해 시간을 써보기로 했다. 이럴 때가 아니면 또 절대 함부로 해볼 수는 없는 것을 하루동안 해보기로 마음 먹고 탁에게 오후에 '너희 회사에 들려 얼굴 보고 가겠다'라고 연락을 해두었다.


대낮의 야외 승강장 플랫폼 (나의 경우는 주로 신길역이 그러하다)에 내릴 때의 기분은 신기하다. 무언가 이 시간에 이러고 있으면 안될 것만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묘하게 보송송한 공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아서 기분이 같이 두둥실 떠가곤 하여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잠시 구름위에 떠있던 기분이 문득 '아 이 시간에 여기서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되는걸까.' 라는 기분을 느끼며 서글퍼지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 자신에서 많은 책임감이 주어진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본연의 나 자신이 온전히 나일 수 없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는 것. 그것에 우리는 쫓기기도 하고, 붙들려 있기도 한다. 아마 이 감정의 굴레는 우리가 성인이라는 울타리로 들어오는 순간 죽을 때까지 결코 내려놓고 털어낼 수 없는, 카드패의 마지막 남은 더미 카드와도 같을 것이다.


친한 친구의 직장에 대해서는 대체로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듣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여의도에서도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친구의 모습은 아주 오랜 시간 봤던 그의 모습들 중에서도 신선하고 새로웠다. 일을 하는 사람에게 중요할 수 밖에 없다는 주변 환경이라는 측면에서 탁의 회사가 위치해 있는 곳은 드높고 훌륭했다. 언젠가 양재에 직장을 다녔을 때는 늘 똑같은 양재 쪽 도심 뷰만 보이니까, 이 도시 속에 갇혀 있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사무실에서 종종 하곤 했는데, 서울 전역이 모두 보이는 탁은 그런 생각이 덜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역시 서울에만 갇혀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사치의 결정판인 회사 건물 22층에 있는 카페에서 얼음이 동동 띄워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집어 들고 앉았다. 커피 맛을 많이 알고 먹진 않지만 맛 좋다고 느꼈다. 그 맛에 관여한게 그 날 만큼은 원두나, 물의 온도와 양 같은 것들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것은 '평일 오후 그 시간에 밖에 존재할 수 있음' 으로부터 오는 맛이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 맛을 열심히 만끽하려 애썼다.


좋은 근무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탁. 들릴 수 있어서 즐거웠다.

잠시나마 즐거운 고층 도심 뷰를 즐기고 나온 내가 향한 곳은 한강대교를 건너가서 나오는 청파동이었다. 청파동 역시 높은 곳으로부터 넓고 먼 곳을 한 눈에 굽어 볼 수 있음에 좋은 곳이다. 하지만 청파동을 가는 것 역시 평소에는 모험이라고 불러도 이견이 없을 만큼 그 위치와 가는 길은 험하다. 물론 한 때의 진흙구덩이 뒹굴던 리트리버 이상의 역마살을 자랑하던 나는 거침 없이 그런 곳들을 누볐지만 하나 둘 씩 내려놓음을 반복해오던 현재의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그 때와 같은 나로는 살 수 없었다.


최근 씨티팝이 주목 받는 장르로 발돋움 하면서 그렇게 다들 이야기 하는 '한강대교 감성'을 나도 느껴보기 위해 대낮의 한산한 버스를 탔다. 물론 씨티팝 애호가들이 이야기 하는 한강대교 감성과는 조금 다르지만, 대낮의 밝은 햇살이 창가로 들어오며 한산 버스 맨 앞자리의 트인 시야를 즐기는 것 또한 다른 갈래로 행복한 순간이다. 역시, 이걸 느껴보기 위해 차를 갖고 오지 않은 것이지. 잘한 선택이었다.



'난 108계단이 처음이었지' 하는 생각이 108계단을 향해 걸어가던 중에 처음으로 생각났다. 보통 이태원과 해방촌을 타고 넘어가곤 했는데 이 길목은 처음이었다. 일년 일년 나이가 들어갈 수록 '난 이걸 여태 한번도 안해봤나' 하는 생각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잠시 108계단 앞으로 보이는 언덕을 지긋히 응시하며 새로운 것을 접하는 마음이 언제부터 그렇게 변해왔나 그런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하필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바로 앞에 보이는 것이 넘어서야만 할 언덕이었다는 사실에 좀 더 막막한 생각이 자리 잡았는지도 모른다. 그런 나의 조급함을 전혀 모르겠다는 듯 108계단의 엘레베이터는 느릿느릿 청파동 중심부를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왼쪽 사진의 옥상 위의 가족들을 난 한참 구경했다.


이곳을 방문하던 시기의 나의 처지와 다르게 청파동은 평화롭기 그지 없는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옥상에서 미니 풀장과 파라솔을 함께 설치 해놓고 함께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가족의 모습은 그 중에서도 단연 시선을 사로 잡았다. 평온함 속에서 요동치고 있는 나의 상태 때문에 더욱 유심히 보게 되었던 것 같다.


청파동이라는 동네는 무질서함 속에서 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는 균형이 매력이었다. 태초부터 푸른 야산의 언덕이 많았기에 이름도 그렇게 불리어 왔다고 하니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집들은 제각각으로 여기저기 블록 쌓기처럼 끼워져 있었으며, 언덕을 끼고 있어 층과 층의 구분을 숫자로 표현함이 무의미 했다. 이런 무질서 하지만 어떻게든 그 삶을 유지해나가는 이런 동네를 나는 좋아했다. 서울시 차원에서는 이런 동네들을 점점 없애고 싶어하는 듯 하지만 난 오래오래 현실과 잠시 떨어져 있어 시간이 멈춰 있는 듯한 이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동네를 오래오래 보고 싶다. 이 시점의 나 뿐만 아닌 다른 처지의 사람들도 그와 비슷하게 위안을 얻어가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 곳의 사람들 또한 본연의 이 모습을 잃지 않고 싶어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청파동이라는 동네는 꼭 정상과 끝을 향해 달려야만 하는 곳은 아닌 동네였다. 끝까지 오르면 결국 청파동을 다시 벗어나 속세로 나가게 되니까. 물론 청파동의 매력은 시간이 멈춘듯한 시공간이지만 그런 시공간에 영영 갇혀 있을 수는 없듯이 결국 우리는 벗어나게 되고,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정상이 아닌 구석구석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간 또한 매력 넘치고 소중하지 않을까. 우리 인생에 그 시간 또한 결코 없어서는 안될 시간이 아닐까. 우리 또한 그런 시간이 없다면 고장 나버리고 말 것이다.


아름다웠던 만큼 생각이 많았던 오후의 발걸음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름 없던 한 구멍가게의 풍경을 뒤로 하며 청파동의 마지막 경계를 넘어 다시 현실로 그렇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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