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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숲사진가 Sep 17. 2022

2022 : 태풍 속 '눈의 시간' (EP.1)

가까운 존재들에게 좀 더 많은 눈길을 둘 수 있는 모먼트

가까운 곳에 있는 존재들에게 다시 인사를 건낸다

2022년의 여름은 화창했고, 지독했다. 이런 시기의 쉬어간다는 것은 과연 휴식이라는 단어가 그대로 전해주는 축복이라는 의미가 맞았을까. 인연은 타이밍이라고들 많이들 이야기 하듯, 어딘가 아슬하게 어긋난듯한 나의 상태와 '휴식'의 상관관계가 그려내는 감정은 무더운 더위와 끝없이 퍼붓는 비 만큼이나 잔혹했다. 


휴식 이후의 막연함이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시기는 불안감의 부메랑이 되어 날카롭게 나를 때린다. 하지만 태풍이 쓸고 지나갔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태풍을 '누가. 왜 일으켰는가' 라는 사실보다 다시 그 자리에 나의 성을 쌓아 올리고 또 다른 모험을 준비 하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덕분에 잠시 술도 끊었고, 운동과 끝없이 몸을 움직이게 하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하루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매진할 수 있었던 여름날들이었다. 덕분에 한창 사무실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보다 맑은 정신과 더 나아진 체력으로 달릴 수 있게 되었다.


평소에는 절대 여유를 갖고 볼 수 없는 가장 가까운 곳들의 순간들

집과 동네 이외의 나갈 일도 잘 만들지 않으며 할 일에만 매진 하며 사는 일상 동선은 '십리 밖을 내다보는 독수리의 시야'로는 세상을 볼 수 없었지만, 반대로 어두웠던 등잔 밑을 밝힐 수 있는 시간도 된다. 가까웠지만 미처 '다른 더 먼 곳'의 일들만 둘러보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곳들을 지긋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 감정을 갖고 가장 처음 발걸음을 떼어봤던 곳은 동네 뒷편 경계면에 있는 한 작은 호수였다. 평일 낮에는 그야말로 갈 일이 없는 곳이며 주말의 아침이나 낮에 한가롭게 가보기에는 나는 너무 게으르거나 지나치게 바빠서 갈 생각조차 않던 곳이다. 그랬던 이 곳이 정말이지 찌는 듯한 더위만 빼고는 정말 평화롭게 나를 반겼다. 흩어지려 애쓰지만 뭉텅이로 우겨놓은 듯한 뭉게구름들은 하늘 높은 곳에서 나를 반겼다. 하늘 빛깔은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바로 그 빛깔이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광경들만 가득 담겼을 뿐이지만, 코닥 골드가 담아내준 휘핑크림 같이 은은한 단맛을 떠오르게 해주는 색감과, 그럼에도 늘 그 자리에 변함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존재가 있어주었음에 위로 마저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이 날 산책길의 끝 무렵에 마주한 해바라기가 평소 같았으면 별 것 아니었을텐데 유독 눈에 밟혀서 한장을 더 기록하며 골드 한롤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지금 보니까 해바라기조차도 이 날의 더위에 한 풀 지친 것 같은 모습인데, 간사한 인간의 마음은 이 더위 마저도 글을 쓰는 지금에는 좋은 기억으로 남게 해준다.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축복이라는 말이 이 날에도 맞아 들어갔다. 


'가까운 곳의 존재'들에 대한 정의는 장소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닌 사람들까지도 포괄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막연한 미래의 두려움과 조우 해야만 했던 나의 이런 아슬한 시간들에 대해서 나 못지 않게 모험감과 두려움을 함께 느꼈을 것이다. 이 지점의 감정들에 대해서는 얽힌 실타래를 보는 듯 생각이 많았다. 집을 지키는 시간들이 많았던 만큼, 계속된 모험의 의지를 내 스스로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보이고 싶었다. 계속해서 손과 발을 놀리고 그로 인해 나는 내가 가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 


밤 시간대의 어둠이 내리깔린 도서관에 엄마의 퇴근길을 보조하러 매일 밤 길을 나서기도 했고, 대낮의 한산한 산책로를 런닝화 끈을 조여메고 달렸다. 그렇게 나는 내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들에 맞서 일말의 방어선을 쳤고 그 불안감들이 나를 잠식해가는 일들을 막아냈다.


그 일련의 작업들이 얼핏 봤을 때는 '단지 나의 헛헛함을 달래는 작업'으로 비춰질 수 있었겠지만, 결국은 '미안함'과 '고마움' 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주는 존재가 되어주고 있음에 깊고도 깊은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그 고마운만큼 그러한 존재들을 실망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에 대한 동기부여, 그 동기부여가 강하면서 표출되는 미안함, 욕심들. 그 모든 마음들을 차곡차곡 개어서 마음 속 구석구석에 접어넣으며 나는 또 다음 걸음을 하기 위한 마음들을 무더운 날들 아래 갈무리 할 수 있었다.




우리 엄마의 퇴근길. 밤의 도서관은 적막만이 가득하다
어느 주말, 새롭게 발견한 드라이브 코스
운동은 무기력함을 달래는데에 좋은 수단이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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