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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숲사진가 Sep 06. 2022

2022 여름. 태풍 속 눈의 벽을 만나.

그랬던 여름에도 나는 나이고 싶어서 사진을 했다

나의 삶과 사진은 함께 정비례 곡선을 그린다.


나는 계절에 대한 호불호가 극과 극을 달리는 취향이다. 한 해를 보내며 모든 신나는 일들은 언제나 따뜻한 공기가 밀려오는 계절들 속에 함께 압축 되어 나타났다. 그래서 봄이 시작되는 4월 초순즈음부터 무더워지는 8월 경에 나의 감정선은 절정에 도달했고 선선함이 자리하는 9~10월 경에는 기분 좋게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옷들을 즐기며 하루를 누빈다. 반면에 춥고도 긴 겨울이 찾아오는 11월부터 2월까지는 그 앞선 시간들 속에 일어났던 즐거운 일들을 곱씹으며 기나긴 추위가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그랬던 여름이라는 계절에 나는 잠시 뜻밖의 쉼표를 한번 찍을 수 있었다. 쉼표를 찍었다면 계속 글을 써나가기 위한 다음 문장을 준비해야했다. 또 한번의 새로운 도전과 시험대가 내 앞에 놓였다. 올해의 여름은 유독 이러한 그간의 싸이클을 가볍게 비웃기라도 하듯 또 한번의 시험대의 연속이었다. 마치 아주 쨍쨍하고 덥다가도 어느 날 어느 곳에는 물난리가 났다고 연신 보도하는 이번 여름과도 같이 참으로 종잡을 수 없었다. 태풍 속을 헤메이고 있어야 할 나이지만, 달리고 또 달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올라서게 된 '태풍 속 눈의 시간'이었다. 


이번 여름은 유독 변화무쌍하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나날들이다.


물론 5년차 마케터는 여전히 성장을 갈구 하는지라, 느즈막히 오전에 눈을 뜨면 맞을 수 있던 여름 햇살과 함께 그대로 편하게 쉬고 싶지만은 않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여름 구석구석을 채워 줄 시간들을 포기하고서라도, 또 다른 모험을 준비 해야했다. 사회의 최전선에서 매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는 '태풍 속을 헤쳐 나가는 모습 등'으로 비유를 하지만, 정작 그 태풍을 벗어나게 되면 더 큰 불안감에 휩쌓인다. 그리고 마음 먹은대로 제 시간 내 벗어나지 못할 경우에는 그 불안감이 점점 더 커지고 우리의 마음을 좀먹는다. 그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것은 정말이지 크나큰 과제였다.


그랬었던 축복이자 동시에 크나큰 맑고 화창한 태풍과도 같은 이 여름에 어찌보면 아이러니 했던 것은 여전히 값비싼 라이카를 손에 들고 필름을 장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순리와 이치에는 맞지 않는 행동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필름 값은 여전히 고가를 달리고 있으며 당장 다니던 자리를 잃은 사람에게 라이카라는 상표가 주는 무게감은 너무나 컸다. 과연 이런 처지의 내가 사용해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을 떨쳐내기가 정말 어려웠다.


Leica M3 + Voigtlander

하루 외출을 하면 교통비가 얼마인지, 차를 몰면 나가는 돈에 대한 생각, 밖에서 사용하는 식비 등 한 푼 한 푼에 궁색해질 수 있는 그 시간들에도 마지막 보루라고 정의 내리며 새로 들였던 라이카를 놓지 않았던 이유는, 속된 말로 잘 나갈 때나 혹은 좋지 않은 시간일 때나 그 모두가 결국 나였기 때문이었다. 최근 읽는 중인 <조선상고사>에서 단기 신채호 선생은 이 땅의 역사가 상당수 소실된 이유는 많은 외침과 문화재의 유실 보다도 기록하는 사람의 이기와 편협함으로부터 누락되거나 왜곡된 역사들이 너무나 크다고 주장했다. 최근의 이 시기를 겪고 이 문장에 크게 공감한 부분도 있으나 침체의 시간들 속 나의 기록 또한 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록을 담는 나 자신' 또한 또 하나의 나의 정체성이었다. 결국 모두 나 자신이니까.


다행히 이 글을 발행하는 지금은 제법 근사한 '새로운 함선 위'에서의 기회를 잡아내었다. 새로운 배에서 또 다른 모험을 위해 출항할 수 있는 갑판장과도 같은 기회를 거머쥘 수 있게 된 것이다. 여느 때와는 다른 여름이었고, 많은 생각들을 새롭게 재정비 했다. 간절함이라는 키워드 아래에 또 다른 삶의 지혜들도 얻을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며 감사하기로 했다. 아주 많이, 자주 지치고 힘들어 했지만 결코 무너져 내리지는 않겠다는 다짐을 지켰으며 항상 올바르고 또렷한 상태를 지켜내는 자세라는 스스로와의 약속도 지켰다. 언제나 스스로의 상태에 대해 물음표와 의심을 많이 던지는 나 자신이었지만, 이번에는 위기상황에서 다부지고 잘 이겨냈다는 자부심을 갖기로 했다. 그리고 이 자부심을 안주가 아닌 앞으로의 더 큰 도약으로 바꿔 내겠다는 생각을 잊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들을 늘 그래왔듯이 진솔하게 기록할 것이다. 


여느 때와는 달랐던 2022년 여름 속 '눈의 시간' 중에 발견해낸 소중한 지혜의 근원이었다.




기록 하는 내 모습을 지키는 것은 시련 속에서도 가장 나 답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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