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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숲사진가 Jan 25. 2023

건네고 싶었던 인사 (대숲사진가 & 동감)

또다시 닿았던 연락에 고민을 거듭했다

무엇을 전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긴 시간 동안 대숲사진가를 지탱해 주고 지지해 준 감사한 인연들이 지난 수년간 꽤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졸업한 모교의 홍보대사 <동감>과의 인연은 그중에서도 꽤나 신기하고도 기묘했다. 대숲사진가라는 이름으로 스냅 촬영을 가장 처음 시작하던 해였고, 그 해 여름이 저물어 갈 즈음에 첫 연락을 동감으로부터 받았었다. 그때는 의뢰 하나만 들어와도 정말 설레던 때였는데 무려 동감이 나랑 촬영을 하자고 했다며 주변에 온갖 소란을 다 피웠던 기억이 난다.


나의 모교 홍보대사인 이 동감이라는 단체는 해마다 두 기수가 함께 활동하며 그 인원수는 매년 약 스물다섯 명 정도였다. 이들이 대숲사진가를 찾는 이유와 그 수요는 제법 명확했는데, 한 해에 같은 시간대에 함께 하는 약 스물다섯 명이 다 같이 같은 장소에 있는 순간을 기록할 수 있는 기회는 이렇게 따로 시간을 내지 않는 한은 없단다. 그런 연유로 처음 인연을 맺은 이후로 이들과 나의 이 촬영은 일 년에 한 번 있는 연례행사였으며, 대숲사진가의 사진 세계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촬영이었다. 


대체로 이런 의뢰로 연락을 받을 때면 생각이 복합적이다. 카메라 뒤에 서서 뷰파인더로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의 입장이란 사실 감성적으로 되려면 한 없이 감성적일 수 있었으며, 그 반대편의 극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촬영이 그들의 사심 가득한 수요라고도 생각할 수도 있었다. 동시에, 네 번의 계절을 한 바퀴 돌 때마다 꼭 한 번은 만나게 되는 반가운 손님이자 또 다른 이야기들의 씨앗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의 나는 완전한 후자의 편에 서서 이들을 맞이했다.


가을마다 생각나는 장면이었어요. 나중에 이 장면을 꺼내볼 여러분도 그럴 수 있길.


동감과 대숲사진가의 인연은 처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 길었고 튼튼했다. 함께했던 첫 해를 시작으로 그다음 해와, 그 후년에도 꼭 가을의 초입 즈음에 연락이 왔었다. 그때마다 마치 그 순간이 동감과 나의 마지막 촬영인 것처럼 임했고, 그 순간에 절대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달려들었다. 인연은 늘 소중한 것이기에, 동감이 대숲사진가를 필요로 하는 한 대숲사진가는 언제까지나 이들의 친구로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반대로 그들이 대숲사진가의 사진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날 또한 언젠가는 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던 것이 그 이유였다. 그것이 사진을 하는 내 시점에서의 나름의 낭만이자 동시에 현실과 타협한 생각 정리였다. 길고 긴 인연의 끈은 분명 늘 존재할 수 있다는 나의 욕심과 그에 반하는 현실이 충돌하며 빚은 대치상황이었다.


그런 연유로 이들에게는 이 촬영이 일 년에 한 번 다 같은 시공간을 담아낸 기록물의 갖는 가치였다면, 대숲사진가에게는 '여전히 열정이 사그라들지 않았는지', 그리고 '또 한 해 동안 활동하며 무엇이 변했나'라는 두 가지 질문 아래 오르는 시험대였다. 그렇게 모든 걸 불태워버리고 나면, 이 한 번에 만났던 사람들이 나중에 수많은 개인 촬영들로 다시 찾아 주었으니 또 다른 사람과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는 연결고리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들은 이후에도 내가 가지고 있던 기획안들을 함께 실현해 주는 오랜 친구가 되어 주었으며, 촬영을 통해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탐구하고 그 안의 대화들을 곱씹으며 내 사진 세계들을 더 다채롭게 해주는 일에 훌륭한 조력자들이 되어 주곤 했다. 그렇게 매년마다 큰 한 번의 불을 태웠고, 모든 연소가 다 끝나면 그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들이 태어났다.


다시 이 장면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은 나만 지레짐작 포기하고 있던 것일지도.


그랬던 인연도 우리가 마스크를 쓰기 시작한 3년간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점점 끝이라고 생각해 버렸던 것 같다. 그래서, 2022년의 이 가을에 대숲사진가 활동 자체를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하나쯤 내려놓기 시작할 때쯤 이들로부터 다시 연락을 받았을 때는 마음속에서 소용돌이가 치는 듯한 기분이었다. 반가움 이전에 고민과 망설임의 감정이 뒤섞인 반죽을 휘젓기 시작했다. 


이미 꺾여버린 나는 이들에게 이전에 보였던 모습과 온도로 대할 수 있을지, 3년 동안의 단절을 겪었음에도 대숲사진가를 또다시 찾은 이들은 과연 어떤 마음과 이유였을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실례와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이들에게 어떤 마음과 생각인지를 처음에 많이 물었다. (아마도 날 굉장히 까탈스러운 졸업생 정도로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여러 번의 질문을 던졌다. 이 시점의 대숲사진가에게는 무엇이 남을 수 있고, 어떤 의미로 남을 수 있을지를 질문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을 결국 툭 던진다. '오랜만에 찾은 친구들 실망시키지 않을 수 있겠어?'


나는 항상 이것저것 시작을 만들어내는 일에는 능숙했다. 때로는 그중에서 번득이는 것들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완벽한 피날레를 모두 이루었냐고 한다면 그렇지 못했다. 항상 그걸 보완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노력해야만 했고, 특히 대숲사진가를 마무리하는 일을 생각하던 이 시점에서는 그게 유독 더 중요한 의미였다. 대숲사진가를 마무리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그 마무리도 제대로 하고 싶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팬데믹의 시대 이후 하고 싶었것들을 많이 포기하는 과정이었던 2021년과 2022년 동안 나의 사진들은 이도저도 아닌 어딘가의 지점에 끼인 채로 많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나의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마치 길거리 한복판에 거꾸로 매달려 있기라도 한 듯한 기분이 들며 보기 싫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이 반복되며 나는 새로운 시도에 대해 전보다도 많이 망설이거나, 도망쳐왔다. 그 나쁜 흐름을 어떤 계기로든 바꾸는 게 필요했다. 수십 번의 마음속 준비와 다짐을 거듭하고, 막상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비장함까지 갖춘 채로 며칠이 걸려 그들에게 답을 보냈다. "이번에도 한번 같이 재밌게 해 봐요. 열심히 해볼게요."



동감과의 만남이 연례행사가 되면서 해마다 빠져들곤 했던 생각의 굴레가 존재했다. 이들은 매년마다 대숲사진가를 찾는데, 과연 나는 저들에게 '작년보다 무엇이 나아졌음을 보여줄 수 있을까', '올해는 좀 이런 주제로도 해보면 어떨까' 하는 고민들이 그 당시엔 크게 자리 잡아 있었다. 나 홀로 오랜만의 추억의 무대를 준비하는 가수의 마음으로 돌아보니 이런 마음들도 '참 그땐 그랬구나'라는 생각이 들다가 문득 그런 시절의 나도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소중해졌다. 그리고 그 매개체가 되어준 이들에게도 감사하단 생각을 했다. 


3년 만에 다시 만난다는 사실과, 그간의 내가 더 느긋해져 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이번 준비는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음 편하게 했던 것 같다. 오히려 사진 외적으로 그때 같은 현장에서의 나의 에너지가 여전할 수 있을지, 대규모 인원의 촬영에 오랜만에 나가는데 현장에서 그들의 열기에 같은 온도로 반응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실제 현장에서 느낀 이전의 만나던 동감과 이번의 동감은 분명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기분 나쁨의 이질감은 아니었지만, 내가 이전과 같지 않은 에너지였을지 이들이 이전 기수들보다 더 활기가 넘쳤던 것일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우선 나도 그만큼의 공백기가 차지한 시간만큼 더 나이가 들었고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벌어지는 시간의 격차는 점점 이들에게 어떠한 행동과 발언을 하기 전에 한 번씩을 더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런 복잡한 나의 심리와 무관하게 이들은 마치 그날 하루에 모든 것을 해보겠다는 듯 이전의 만나던 기수들보다는 현장에서 훨씬 더 많은 의견들을 그 자리에서 내게 주었고 밝은 분위기로 촬영 무대였던 학교 캠퍼스 구석구석을 채웠다. 2022년 가을의 동감은 하고 싶은 것도 굉장히 많았고 프레임 안에 담고 싶은 감성들도 분명 달랐다. 동시에 나도 같이 분위기에 올라타는데, 지금보다는 훨씬 덜 복잡한 마음으로 사진을 하던 내 모습이 오버랩되며 보이는 기분이었다. 시간의 격차가 주는 괴리감과 동시에 웃음 짓게 만드는 과거의 나와 마주할 수 있는 모먼트다. 과거의 나 자신까지 끄집어내며 나름 열심히 뛰어다니고 온도를 맞추려 노력해 보았는데, 과연 할 수 있는 한의 최선을 주고 싶었던 나의 진심이 어디까지 이들에게 닿았을지는 모르겠다. 



촬영 현장에서 흠뻑 뛰어다녔던 덕에, 그 뒤의 작업은 마치 거대한 축제 뒤의 무대를 다시 깨끗하게 정리하는 일만큼이나 길었다. 보정 작업도 정말 이전에는 손이 날렵했는데 마치 비 오는 날 축 젖은 몸처럼 느리고 둔해진 기분이었다. 이제는 이렇게 촬영을 다녀와서 작업을 하려고 자리에 앉고, 컴퓨터를 켰을 때 급하기만 한 내 마음과는 반대로 둔탁하기 그지없는 내 손놀림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무엇 때문일까 라는 질문에 대해선 아직도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고 달리 설명할 길도 없어서 이들에게는 미안하다는 인사 밖에 할 수 없었다. 


아마도 긴 시간을 걸어오면서 일상에서 내게 주어진 과업과 사용해야 하는 시간의 무게감, 그 모든 것을 온전히 이겨 내야 하는 나 자신을 다 덜어내고 난 그 나머지의 내가 대숲사진가로 남아 있었을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적어본다. 어느 순간부터 그 나머지라고 규정한 잔량이 점점 적다고 체감했을 것이다. 인생 곡선에 시간이 축적될수록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결론지으려 해도, 언제나 이런 것엔 익숙지 않고 힘이 든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이제는 이런 순간을 마주하는 것이 힘들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남과 이별, 상실감과 환희가 번갈아 반복되는 그 온도차에 점점 무감각해져 간다는 사실도 힘들다.


촬영의 시작부터 끝까지 복잡하고 어려웠던 나의 소회와 다르게 이들의 2022년 가을은 화려하게 담겼다. 언제부터인가 추구하고 싶었던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딱 그 중간지점쯤에 맞춰진 듯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과거에 매몰되는 순간 전진할 수 없다. 결국 그 과거와 현재를 딛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때 우리의 삶은 계속 이어지고, 발전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미래의 문을 넘어서는 우리의 모습은 현재의 우리가 과거의 우리와 마주하며 일어나는 대화 속에서 결정되기도 한다. 대숲사진가를 내 손으로 직접 닫고 새로운 할 일을 찾아 나설 미래의 나를 쌓아 올려낼 과거와 현재에는, 분명 이들이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그래서 동감도, 과거의 자신과 마주할 일이 있을 때 이 날의 기록을 본다면 과거의 자신을 보며 새로운 길을 무탈하게 찾아나갈 수 있는 그들이길 응원한다. 촬영을 통해 남은 결과물 속 내가 진심으로 건네고 싶었던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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