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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숲사진가 Nov 09. 2022

그 자체가 곧 제목과 주제였다

대숲사진가의 옆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사진들을 '많이' 가져간 지인

한 번의 큰 홍염이 아닌 꺼지지 않는 마지막 잉걸불 같았던 조력자


사진을 오래 했지만 잘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던 터라, 이따금 누군가 극찬에 버금가는 칭찬을 해줄 때 상당수 부담스러운 감정을 숨길 방법이 없었다. 그런 생각이 지속되다가 나온 나름의 대답은 "사실 난 사진을 전혀 못하는데, 내 또 다른 자아인 대숲사진가가 사진을 잘하는 거야."라는 지극히 마블 영화들을 많이 본 사람이 할 법한 엉뚱한 대답으로 둘러대곤 했다. <헐크>나 <문나이트> 등을 본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렇지만 또 다른 자아라고 규정해버린 이 대숲사진가는 일상 속에서 내 '본캐'의 삶 도중에서도 중간중간 튀어나오곤 한다. 꼭 모델님들과 함께 하는 대숲사진가 촬영이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사진 그 자체를 즐길 일이 너무나도 많은 탓이다. 그 덕분에 나름 내 옆에 자주 있게 됨으로써 내가 찍는 사진들을 고스란히 같이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내가 그럴싸하게 찍어낸 음식 사진, 장소의 기록, 그리고 "야 지금 여기 좋다. 너 여기 있어봐." 라며 찍어주는 소소한 사진들이 그랬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한 두장은 아니고 짧은 시간 동안 꽤 여러 장을 열심히 지인들을 찍어주는 불시의 순간들을 나만의 별칭으로 '3분 대숲 사진가'라고 부르기도 했다. 


갤럭시의 첫인상은 언제나 '봄이 잘 어울리는 아이'였다. 지금도 그렇다.


위와 같은 이야기들을 짚고 다시 돌아봤을 때, 갤럭시는 그런 대숲사진가의 옆에서 자연스럽게 얻어가게 되는 사진들을 지금까지 가장 많이 누려온 '주변인'중 한 명이다. 문득 알고 지낸 세월을 되돌아보니 이 친구와 내가 알고 지낸 시간이 어느덧 6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도, 이 친구만을 위한 촬영을 그것도 많이 한 것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찍어본 인물 사진 중에 기억에 남는 컷들을 떠올려보라고 한다면 분명 그중에 갤럭시의 사진이 들어가 있다. 대숲사진가 촬영본을 보관하는 아이클라우드 내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한데 모으는 게 일이 되겠지만 그것은 반대로 뒤집어 생각했을 때 크게 일을 벌이지 않았더라도 지금껏 길게 대숲사진가와 함께 해주었다는 사실과도 같다. 감사한 일이다.


당사자 시점 기준으로 '다소 정 없게' 표현해보자면 갤럭시는 대숲사진가 세계관의 레전드는 아니지만 레전더리 한 순간들을 꽤 많이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레전드가 아니면 어떤가. 내가 동아리를 은퇴할 쯤에 처음 신입으로 들어왔던 갤럭시를 뒤풀이 술자리에서 처음 만나서 사진을 찍어줬던 순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난 이 친구가 내 프레임으로 들어오던 일을 반기지 않은 적이 없었다. 첫 술자리에서 봤던 막내 동생의 느낌처럼 마냥 밝음보다는 맑다는 느낌에 가깝다고 느꼈던 갤럭시의 사진들을 난 좋아했고, 귀하다고 늘 생각했다. 한 명의 큰 규모와 놀라운 결과물을 얻어가는 촬영이 있지만, 누군가와 긴 시간 동행을 하면서 그 사람의 성장을 옆에서 관찰하는 과정 또한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행운이 결코 아니기에 지금도 감사하다.




큰 촬영이 아니어도 가장 많은 대숲사진가들의 사진들을 가져갔다. 자신만의 색을 담아.


루미큐브라는 보드게임에는 소위 말하는 '조커' 칩이 존재한다. 이 조커의 역할은 모두가 알다시피 루미큐브 게임 플레이 중 특정 숫자들의 조합을 만들어 내 손에 남은 숫자 칩들을 털어내기 위해 내가 원하는 그 어떤 숫자로도 대신 사용할 수 있는 그야말로 만능 칩이다. 갤럭시는 그런 대숲사진가의 조커 같은 조력자였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세계관의 레전드가 아닐지라도 적어도 대숲사진가의 세계관에 갤럭시의 이름이 빠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주제를 정하고, 소재와 테마를 정하고 그다음에 모델을 선정하여 연락하는 일반적인 과정이 아닌, 그냥 이 친구 자체가 하나의 제목이고 테마였다. 


나와 교류가 잦았던 만큼, 내가 언제 어디서 펼칠지 모르던 사진들을 옆에서 고스란히 자신의 것으로 가져갔으며, 그것들을 단순히 대숲사진가로부터 받아 들은 사진들이 아닌 그 위의 자신의 투명하고도 맑은 빛깔을 덧대어 챙겨갔다. 다만 "언제든 촬영할 사람이 없으면 대신 자신을 부르라"라는 이 친구 시점에서의 선의의 인사가 나름은 감사하고도 한편으로는 대단히 미안했다. 또한 그 이야기 자체에 대해 '중요도가 낮은 언제든 쉽게 불러낼 수 있는 친구'라는 이미지로 왜곡되지 않도록 인식을 다스리기 위해 꽤나 꾸준한 스스로의 노력도 어느 순간부터의 나에게는 과제로 옆에 따라다녔다.


복잡하게 많은 것을 고려하는 내 성격과는 정반대였어서 내가 사진 생활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거나 같이 촬영을 할 때의 고민 등도 의외의 지점에서 쉽게 풀어내어주곤 했으며, 대숲사진가가 촬영을 사실상 중단하고 글을 쓰는 지금 이 시점에도 많은 걱정들을 앞서 하는 나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곤 했다. 그렇게 대숲사진가의 취약하거나 디테일한 빈 공간들을 보다 튼튼하게 조각조각 채워낼 수 있었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한 번의 크게 타오르는 홍염 같은 삶이나 순간을 원한다. 하지만 순우리말로 잉걸불이라고 부르는 강하게 타고 있는 꺼지지 않는 숯불과도 같이 지속적으로 붙잡아줄 수 있는 동력원도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힘과 마주할 수 있는 계기는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사실 아무에게나 쉽게 찾아오는 기회는 아닐 것임을 안다.  


갤럭시는 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아이였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이 친구의 여름, 가을, 겨울을 달려 나가는 과정까지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와 응원, 그리고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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