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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숲사진가 Apr 17. 2022

그런 봉은사를 나는 처음 보았다

태풍 속 눈의 시간 같은 장소

토요일은 익스타의 생일 겸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였다. 삼성동 쪽에서, 그것도 주말에도 근무하는 녀석의 신세가 퍽 고달프다는 걸 알았기에 기꺼이 삼성동까지 내가 가겠다고 하며 저녁 자리를 함께 했다.


둘이 적당히 딱 기분 좋을만큼 술도 몇잔 하고 나서 분위기가 점점 마무리의 하향 곡선으로 흘러가지만 여기서 끝내기는 좀 아쉬울 즈음에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여기 바로 옆에 봉은사에 연등 걸려있지 않니 지금? 그거 한번 보러가자." 익스타도 바로 집에 가기에는 아쉬웠는지 시원스럽게 동의했다. 그렇게 봉은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다 같이 펼쳐진 연등이 봉은사 초입부터 방문객들을 반긴다

익스타와 나는 둘 다 불교계 대학교를 나왔다. 그래서 해마다 이 시기가 되면 학교에 밤하늘에 피는 꽃과도 같은 연등 불빛들을 즐겁게 구경하는게 익숙했다. 그런 익숙함이라는 감정 때문에 우리는 학교 이외의 장소에서 연등제를 구경할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았다. 원래 가까운 장소일수록 더 소홀해지곤 한다는데, 정확하게 우리 이야기였다. 그러한 연유로 이 계절 속의 이런 단장을 한 봉은사의 모습을 우리는 그렇게 이만큼 각자 나이를 먹고나서 처음 마주해보게 되었다. 오늘도 몸이 가볍고 싶어 카메라는 따로 챙기지 않았기에, 아이폰이 수고를 해주었다.


열심히 꾸며 놓은 봉은사의 밤

이제까지 봉은사에 대해 나는 큰 감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구 1000만명이 머무는 서울시에서도, 가장 시간이 빠르고 바쁘게 흘러간다는 삼성동 한복판에 이런 사찰이 있다는 사실에 봉은사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가졌었던 적이 있다. 신라 때부터 견성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어져서 상당 수 중간에 무너졌었지만, 기어이 복원까지 되어 살아남은 이 봉은사의 존재에 대해 기껏해야 얼마 되지 않은 짧은 세월을 살았던 나는 "왜" 라는 질문을 던졌다.


물론 사진 찍으러다니는 사람들에게 봉은사라는 장소가 갖는 의미는 충분하다. 봄에는 서울에서 홍매화를 가장 먼져 틔워내어 '서울에도 봄이 왔구나' 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전령 역할을 하기도 하며, 우리가 마주한 이 연등의 계절이 오면 우리와 같이 야경을 구경하러 오는 사진가들의 카메라들이 이 사찰 구석구석을 누빈다.

사진 하는 사람들은 다들 봉은사에 이거 찍으러 오더라.


"이 곳은 서울 도시 한복판에 있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야."


익스타는 봉은사에 대한 나의 의문에 대해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장소" 라고 대답했다. 본인이 직접 그 사막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가고 있는 여행자와도 같은 삶이기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나 또한 이곳을 걷고 있자니 어느 새 서울 한복판의 시간보다 혼자 조금 느리게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만 같은 이곳의 한산함이 마음에 들었다. 연등이 주는 신비로움과 안정이라는 감정은 느려진 시간 속을 장식 하며 화려하게 퍼져나갔다.


암흑 속의 빛나는 존재란, 지친 사람들의 발걸음에 신비로운 힘을 다시 불어넣어주는 오브제가 된다. 그 오브제들은 대체로 우리의 일상과 가까운 지점에서는 만나기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갇혀 있는 빌딩숲을 벗어나는 시간을 갖고 싶어하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의 염원과 바람을 실어 날려보낸다. 그 것이 연등이 걸리는 계절과, 연등과 함께 변하는 장소가 주는 신비스러움이다.


드리는 기도가 꼭 바램의 끝에 닿기를


"고통이 없는 삶은 걱정이 없는 삶이야. 걱정이 없는 삶은 성장과 개선의 의지가 없는 삶이니까, 힘든 시간도 결국 의미가 있어." 라고 연등 아래 각자의 소원과 요즘 고민거리들을 한바탕 쏟아내며 사찰을 한바퀴 모두 돌고 난 후에 이야기 했다. 서로의 가진 고민이 너무 깊은 근황들이었다. 나도, 익스타도, 이 자리 없던 탁까지. 그런 힘듦 속에서 본능적으로 어둠 속을 밝힌 등불들의 숲을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은 사실 제법 나쁘지 않게 달리고 있는 중이다. 다만 가진 고민의 크기가 너무나 크게 자라나, 그 삶의 괜찮은 전반까지 가려버릴 뿐이었다. 여타 같은 나이대의 다른 이들과 다름 없이 하루하루에 불안함과 걱정을 동반한다. 무사할 수 있을까를 늘 염려하며 긴 밤을 지나가고 있는 중이지만 결국 언젠가는 이 밤이 끝나지 않을까. 그럼에도 결국 다시 동쪽에서 뜨는 해를 보면서 한번 더 성장한 모습으로 문을 다시 나서겠지. 


지금까지 그랬듯이 언젠가는 다시 회상하며 별 일 아니었다는 듯이 손사레 칠 수 있을 것이라고 서로에게 한번씩 다시 이야기 했다. 그때가 되면 한번 더 봉은사에 대해 회상하며 이 밤을 수놓던 불빛들을 기억해낼 것이다. 태풍 속 태풍의 눈과도 같았던 장소에서 그날 밤 우리는 그런 의미들을 찾아냈다.



"제법 괜찮은 토요일 저녁이었다. 그리고 늦었지만 한번 더 익스타의 생일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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