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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숲사진가 May 15. 2022

'순간'을 위해 떠난 여행길 (남해 EP.1)

사소한 이유와 긴 여정

"왜 갑자기 그 순간을 원했어?" 라는 반문을 스스로에게 할 만큼 올 봄에 들었던 내 욕구는 갑작스러웠다. 하지만 <바다가 보이는 민박집 옥상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싶어> 라는 모먼트가 그것이었다고 한다면, 반문할 사람이 많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꼭 대단한 동기부여나 목표가 있어야만 여행길에 오르는 것은 아니니까. 비로소 지도에 핀만 찍어두고 먼 길이라고만 되뇌이던 남해군을 다시 바라볼 때가 되었다.


우리는 이 순간을 원했고, 실제 마주한 이 시공간에 반했다.

작년 겨울에 제주도를 함께 했던 호흡과 감성이 제법 마음에 들었던 기억 덕분에 나는 전부터 남해를 간다면 창과 반드시 함께 가고 싶었다. 주변의 내 여행 메이트들이 제각각 다른 매력들을 갖고 있는데, 창은 그 중에서도 모험 속에 마주할 수 있는 고난과 어려움도 두려움 없이 대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 그 덕분에 그 어떤 길과 경험이라도 여행 중에 해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즐거움으로 여행을 채워 낼 수 있다는 것이 창과 동행 할 때의 가장 큰 강점이었다.


남해. 우리 동네에서 찍으면 약 300km 정도가 나오는 기나긴 길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먼 거리 뿐 아니라 그간의 나는 늘 이 봄이 기지개를 켜는 시기에는 항상 바빴다. 운전을 할 수 없었고, 새로운 봄을 맞이 하여 찾아오는 과제나 업무들과 씨름 해야 했으며, 대숲사진가로서 올 봄에는 '어떤 촬영을 어디서 누구랑 하지' 라는 고민들로 채워지곤 했다. 그 한 차례의 바쁜 일들이 지나가고 나면 초여름이 바로 내 눈 앞에서 손을 흔들곤 했으니, 봄이라는 계절에 오롯이 나만을 위한 휴식이나 여정을 담은 사진 기록들은 없었던 셈이다. 나이가 들고 마주한 봄은 그래서 "또 봄이냐?"가 아닌 '무언가 일어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되는 봄' 이었다.


"날씨에 스트레스 받을 것 없다. 그건 우리가 그 장소를 즐길 수 있는 수 많은 모습 중에 하나일 뿐"


전날 밤 하동으로 미리 내려가서 밤을 보낸 뒤 하동 금오산을 거쳐서야 비로소 남해대교를 건넜다. 고속도로의 종점가까이 가서도 또 상당 시간을 들어가야 도달해낼 수 있는 기나긴 길이다. 오랜 시간 동안 '가고 싶다' 라는 꿈으로 간직했던 여행지에 마침내 닿을 때의 감정이란,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꼭 여행지가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물건을 용돈을 모아서 산다거나,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과 드디어 재회 했을 때의 그런 감정들과도 비슷하달까. 그만큼 강렬하고 간절함의 키워드를 넘어 섰을 때 우리는 가진 바의 힘 이상을 발휘 했다는 활력과 성취감, 그리고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는 용기를 얻는다.


비가 와도 이쁠 것 같다고 이야기 한다면 너무 과장일까? 하지만 남해가 주는 신비로움은 벅차오르게 해주는 거대함이다.


남녘 마을들이 그렇듯 서울 경기보다 남해의 봄은 한참이나 먼저 봄의 제전을 연주했다. 첫날의 날씨가 좀 많이 흐린게 사진에서도 숨길 수 없었지만, 그 또한 남해의 수 많은 모습들 중 하나였다. 해안가 일대 임에도 불구하고 산악 지형이 많고 도로들이 다소 험한 편이었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는 만큼 높은 곳들에서 내려다 보는 바닷가와 그 일대에 펼쳐진 수 많은 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감탄을 자아내고도 남았다. 별다른 명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갓길에 차를 자주 세우고 감상할 수 밖에 없었다.


남해는 특별한 명소가 아니어도. 이 곳에 머문다는 사실 자체로도 기분이 좋은 곳이다.



숙소를 잡았던 다랭이 마을에 대해서는, 가장 처음 가보는 사람이 이 곳을 보면 어떤 첫 인상을 가질지라는 질문에게 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창은 자기가 드라마 PD라면 반드시 이 곳을 배경으로 드라마를 찍겠다고 했다. 어촌 시골마을 단칸방 하숙방에 내려와 형설지공처럼 공부해서 꿈을 이루어 나가다가 그러다 민박집 딸과 로맨스도 생겨나는 그런 스토리 보드라나. 그런데 그런 전형적인 스토리보드여도 흥행을 시켜줄 것만 같은 배경임에 이견이 없었다.


다랭이 마을의 집들은 특별히 대단한 외관이 아니고 오히려 시골의 다소 촌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는 전형적인 시골 집들이었다. 다만 해안 절벽 경사면들 사이사이에 자리 잡은 마을 구석구석의 요소들이 이루는 조화가 그야말로 완벽했다. 자연을 거스르려 하지 않고 그 흐름에 순응하며 함께 공존하려는 마을의 모습에 매료 될 수 밖에 없었다. 산으로부터 흘러나와 마을을 관통하는 수로가 자리했으며, 높고 낮음 그대로 오르막과 내리막길들을 이었으며 집들은 제각각의 위치에 위 아래로 자리 잡았지만 파도의 요동치는 높낮이처럼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다랭이 마을을 구석구석 돌아보면 누구라도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마을의 한 구석에서 전화로 미리 예약을 드리고 온, 나의 머릿속 그림 안에 있던 그 민박집 옥상에 들어왔다. 

평상에 앉아서 마을의 중턱으로부터 마을의 최하층부와 그 아래로 깔린 융단과도 같은 바다가 보이는 곳. 그리고 그 바로 앞에 붙어 있는 미닫이문 단칸방 느낌의 우리 숙소방 한칸까지. 보통 여행 최고의 순간은 여행의 중후반부에 나오곤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나는 단연코 이 민박집을 발견 해낸 순간이 최고였다고 지금도 확신한다.


그 날 밤의 평상에 앉아 창과 술을 기울이던 시간 중, 거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비가 와도 다음 일정들이 크게 걱정이 되지 않는 밤이었다. 다음 날들에는 또 그 다음대로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달까. 그렇게 첫날의 빗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얼큰하게 술을 마신채 첫날의 우리를 이부자리에 눕혔다.



내 머릿속에 내내 존재하던 그 모먼트의 실체. 이 곳.
다랭이 마을에는 고양이가 정말 많았다. 녀석들은 우리 평상을 수시로도 호시탐탐 노리며 또 한 갈래의 기억으로 남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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