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미바튼 호수와 만났고 우리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미바튼 호수에 도착은 아직도 기약이 없었다. 그리고.
2022년 12월 24일 오후, 862번 도로 진입로 앞 (데티포스 서편 입구)
나는 1번 국도 중간에 잠시 비상 깜빡이를 켠 채 멍하니 862번 도로로 빠지는 진입로에서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862번 도로로 들어서는 진입로는 통제사인이 세워진 채, 기존 왕복 2차선 도로라는 본모습은 흔적조차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깊은 눈에 뒤덮여 있었다. 어디까지가 도로이고 어디가 경계선인지도 모른 상태의 이 도로에 진입했다간, 차와 함께 눈밭 깊숙한 곳에 처박혀 꼼짝없이 조난당할 것이었다.
이 도로의 통제에 유독 아쉬워했던 이유는 이곳이 이 여행에서 무척이나 보고 싶어 했던 장소였던 데티포스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오프닝 촬영지이자, 유럽에서 가장 큰 폭포라던 이곳은 나 역시도 처음이었고 꽤나 크게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자연의 압도감 중에서도 단연 최고일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 도로 역시 험상궂은 날씨에 뒤덮여 인간의 진입을 허락지 않았다. 잠시 크나큰 모험을 감수하고 차를 도로 진입로에 세워두고 걸어갔다 와볼까 생각해 봤지만 구글맵을 들여다보니 진입로에서 데티포스까지만 편도 30km 가까이 되는 거리임을 보고 그마저도 포기해야 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검토했음에도 방법이 없다면 미련을 내려놓고 즉시 냉정하게 돌아서야 했다. 통제된 진입로를 데티포스 대신 본 것이라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천천히 카메라의 셔터를 누른 후 이내 다시 자동차 핸들을 돌려야만 했다.
그렇지만 미바튼 호수로 향하던 중간에 가로막힘과 만나지 못한 존재들로부터 느낀 좌절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잠시 거쳐갔던 뫼드뤼달뤼르(Möðrudalur)라는 장소 역시 지금은 본연의 역할인 캠핑사이트도, 함께 딸려 있는 숙소 역시 영업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고 교회를 포함한 모든 건물도 굳게 닫혀 있었지만, 흰 눈에 뒤덮인 채 분홍빛으로 물들던 하늘과 어우러진 마을은 그 자체로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무언가를 할 수는 없었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분명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물씬 발산하는 모습은 매료되기에 충분했다.
뫼드뤼달뤼르에서는 레이캬비크 쪽에 위치한 헬리 화산(Volcano Heli)의 전경을 헬기로 투어 하는 관광 상품도 있는 모양이었다. 이곳에서 헬리 화산까지는 족히 6~700km는 될 것이었지만, 헬기로 멀찍이서 내려다보는 시야라면 아마 문제없을 것이었다. 물론 지금 이 동네 역시 깊은 겨울잠에 빠진 마당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될 순 없었다. (그 시기에 이 마을에는 화산 투어는커녕 이 동네 전체에 인적 자체가 없었다.) 끝없는 순백 융단으로 뒤덮인 마을을 잠시 만끽하며 15분 정도 산책을 하다가, 굳게 문이 잠긴 교회 앞에서 잠시 가족과 그 순간 생각나는 친한 이들의 안녕을 위해 기도하고 차로 돌아왔다. 따로 정해진 밥시간도, 밥 먹는 장소도 정해진 게 없었기에, 마을의 모습을 담은 사진 몇 장을 차 안에서 조용히 리뷰해 보다가 점심 도시락을 꺼내어 먹고 다시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렇게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고요함과 적막의 테마를 머금은 기록들이 이곳에서 남게 되었다.
이후 무념무상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곱씹으며 설원 위에 펼쳐진 1번 국도를 달렸다. 사실 무념무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이 글을 적고 있는 이 순간 이 구간의 감정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 그 순간의 나는 분명 슬슬 지루해지고 있었고, 도대체 '얼마 남지 않은 것만 같았던' 그 미바튼 호수는 언제쯤 나오는 것일까라고 생각하며 말없이 달리고 있었을 것이라고 그 순간의 내 기억을 더듬어본다.
문득 찬 공기를 마시기 위해 운전석의 창문을 내릴 때쯤 진한 유황 냄새가 공기에 실려 날아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오호라, 이건 분명 미바튼 호수로 들어가는 길목 직전에 있는 크라플라 화산이 가까워 오고 있는 것일 거야'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나는 달리고 있는 길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과연 어느 순간부터 달리고 있던 1번 국도의 양옆으로는 폭설이 채 다 뒤덮지 못한 채 거뭇거뭇하게 튀어나와 있는 화산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겨울의 혹한과 폭설이 차마 다 덮어버릴 수 없었던 이 불과 얼음의 나라에서 불을 맡고 있는 북부의 심장부에 도달하고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갓길에서 잠시 지금까지 달려온 길을 기록한 후, 한 번의 정차 없이 곧바로 크라플라 화산 맞은편 아래에 위치한 흐베리르로 내달렸다.
2022년 12월 24일 오후, 흐베리르 주차장
흐베리르 주차장에 마침내 차를 세우기 직전, 먼저 크라플라 화산 지열발전소 쪽으로 잠시 들어갔다가 더 이상 갈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걸 깨닫고 차를 돌려 다시 나오는 어리석은 짓을 한번 더 했지만, 어쨌든 미바튼 호수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간헐천 지역, 그곳에서도 가장 중심을 이루고 있는 흐베리르와 마주하게 되었다.
레이캬비크 근교에 위치한 골든서클에 게이샤르 간헐천이 있다면, 북부에는 이곳 흐베리르가 있었는데 게이샤르에서 보던 것보다 더 거대한 기운의 간헐천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온도와 지열로 끓어오르며 피어오르는 연기도 그 갑절은 족히 되어 보였다. 레이캬비크와 남부 일대가 마치 인자하고 넉넉한 분위기로 품어주는 이 아이슬란드의 어머니 땅이라면, 이곳은 엄하고 금방이라도 호통칠 것만 같은 아버지 땅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자욱한 연기와 맞부딛히는 겨울 추위가 만들어내는 비경이 제법이라 느끼며 그 공기의 흐름에 주목하며 셔터들을 누르며 천천히 흐베리르의 끓어오르는 핫스팟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이 거룩한 풍경을 앞에 두고 꽤나 우스운 생각이었지만, 그 순간 내가 카메라 뷰파인더와 육안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던 채로 그 순간을 열심히 기억 속에 담으며 가장 먼저 하던 생각은 '여기에 닭 넣으면 바로 삼계탕 되겠지?'라는 생각이었다. 잠시 집중력과 기력이 흐트러진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농담이었다. 미바튼까지 오던 길이 실질적 거리를 떠나 심적으로는 먼 길이었고, 북부까지 오면서 많이 지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떠올리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한번 지칠 시점쯤에 흐베리르와 만나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이곳은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뜨거운 곳 중 하나였으니, 그 열기와 열정을 온전히 받아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 그 이유였다.
간헐천의 유황 냄새에 슬슬 후각이 마비되어 간다고 느낄 때쯤, 마침내 뒤를 돌아보니 하늘이 슬슬 암청색의 탁한 하늘빛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결코 긴 하루를 허락지 않는 아이슬란드의 크리스마스이브날의 해가 저물어 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흐베리르를 지나 미바튼 호수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큰 고갯길을 넘어야 했는데, 해가 지기 전에 그 고갯길 정상에서 미바튼 호수의 석양을 꼭 보고 싶었기에, 서둘러 흐베리르를 벗어났다. 아마도 미바튼 호수의 초저녁을 조우하는 것이 이 날 내 카메라의 마지막 임무가 될 것임을 직감하며 재빠르게 움직였다.
2022년 12월 24일 초저녁, 미바튼 호수 초입
고갯길의 정상에 올라 미바튼 호수와 그 아래에 펼쳐진 마을들이 눈에 들어온 것은 해는 이미 사라지고 여명이 아스라이 남아 어둠이 내리깔리기 직전의 순간이었다. 한 때 어마어마한 땅의 끓어오름과 그로 인한 천지가 진동한 외침이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던 경관이었다. 그리고 억겁의 세월이 지난 후에 그 흔적이 풍파에 다듬어지고 조각된 모습, 그리고 그 속에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완벽한 조화였다. 잠시 그 압도적인 풍경에 사로잡혀 그 조화를 즐겨본다.
물론 하루가 완전한 암전 속에 빠지기 전에 미바튼 호수를 그래도 조금이라도 훑어보고 싶었기에, 고갯길 정상에서 계속 감상에 젖을 여유는 얼른 다시 집어넣고, 이내 발걸음을 재촉한다. 미바튼 호수에는 1번 국도를 계속 타고 가는 위쪽길이 있고, 848번 국도를 타고 호수의 남쪽으로 도는 아랫길이 있었다. 당연히 난 두 길을 모두 볼 요량이었고, 이 해 질 녘에 탈 길은 아랫길로 정했다. 이 길 중간에 풍경 감상 포인트로 구글맵에 나오는 스팟도 몇 개 있었고, 날씨가 언제 바뀔지 몰랐기에 1번 국도가 아닌 루트가 통제가 걸려있지 않을 때 돌기로 한 것이다. 결심을 했으니 곧바로 빠르게 실행으로 옮겼다.
2022년 12월 24일 초저녁, 미바튼 호수 남쪽길 (848번 국도)
성난 화산이 활동했던 흔적인 분화구들이 미바튼 호수 주변에는 참 많았다. 그 분화구들이 점점 시야 속에 가까워져 오며, 이내 카메라 화면 이내에도 다 담기 어려울 정도의 크기가 될 때쯤에 반대편 호수 쪽을 보니, 마침내 겨울 속 미바튼 호수의 모습과 만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려 그 거대한 호수와 마주 선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이슬란드의 험난한 겨울 날씨를 뚫고 이곳까지 굳이 찾아올 사람은 아마 나뿐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찾아온 나에게 미바튼 호수가 파노라마를 펼쳐 내 눈앞에 보였다.
겨울철 아이슬란드 북부가 볼 것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난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격렬하게 동의할 수 없다고 외치고 싶었다. 비록 생동감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겨울잠을 자고 있는 호수의 모습은 마치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생각날 만큼 느릿한 여유 속에 기품이 넘치는 클래식 음악 같은 모습이었다.
호수는 겨울잠에서 영영 깨어나지 않을 것만 같이 차분하고도 고요했다. 미처 다 얼어붙지 못하여 바람에 수면 일부가 물결치고 있는 모습만이 지금 이곳이 호수라는 모습을 증명했다.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이 깊은 겨울을 지나고 있는 호수를 보면서 어쩌면 지금 보고 있는 이 미바튼 호수의 모습은 겨울잠 속 호수가 꾸고 있는 꿈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방대한 꿈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순간의 미바튼 호수는 감히 카메라 따위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광활함으로 펼쳐져 있었다. 그 어떤 카메라와 재주로도, 이 순간의 미바튼 호수가 보여주던 모습을 다 담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자연이 언제나 모든 것을 다 허락지는 않는다는 단순한 그 깨달음을 다시 기억해 내며 내가 담을 수 있는 만큼 힘껏 그 모습을 담았고, 나머지는 오감으로 모두 느끼며 최대한 기억하려 애썼다. 최대한 오래오래 희미해지지 않는 기억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마치 축구 경기에서 후반전 종료 직전 추가시간의 추가시간처럼, 카메라는 애진작 하루 업무(?)를 마치고 가방 속으로 퇴근해야 할 시간이었지만, 정말 마지막 한 점의 여명이라도 남아 있는 한, 최대한 마지막까지 이 모습을 만끽하고 기록하겠다는 의지로 나는 연신 최소한으로 늘릴 수 있는 셔터스피드를 잡고, ISO 감도까지 최대한 타협할 수 있는 한도까지 끌어올리며 버티고 있었다. 그만큼 아직은 이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의 미바튼 호수를 보내줄 수 없다는 나의 무언의 뜻이었다.
이윽고 몇 안 되는 미바튼 호숫가 주변의 민가들에 불이 들어오고, 완전히 도로 주변의 시야가 확보가 어렵다고 느껴질 때쯤이 되어서야 나는 카메라의 배터리를 분리하고 가방으로 들여보내 줄 수 있었다. 이미 지금까지의 여행의 반환점을 돈 시점에 아름답고 경중을 따질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기록들을 수 없이 담았지만, 유독 이 날의 사진들은 한 장 한 장이 느껴지는 밀도가 남달랐다. 아무도 겨울을 뚫고 와서까지는 보지 않는다는 겨울철 미바튼 호수, 그러나 고요한 겨울 속의 미바튼 호수가 잠시나마 허락했던 그 모습은 내겐 또 다른 의미의 '미바튼 호수의 기적'이었다.
그 기적이 크리스마스날 이브의 내게 남긴 따스한 마음을 소중히 품에 안은 채, 또 하루 동안 내게 주어졌던 시간을 마무리하며 어둠이 깔린 848번 도로를 빠르게 빠져나갔다. 다음 날의 내게 또 어떤 일이 어디서 펼쳐질지는 북부에 들어온 이상 아무도 알 수 없었지만 우선은 오늘 하루가 남긴 여운을 충분히 만끽해도 될 것만 같았다.
여전히. 이 여정이 머물고 있는 곳은 미바튼 호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