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ELAND] 명과 암 (EP.14)

미바튼에서 아큐레이리까지,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by 대숲사진가
크리스마스이브 저녁부터 크리스마스까지의 이야기
어렵사리 찾았던 미바튼 호수 인근의 한 숙소


2022년 12월 24일 밤, 미바튼 호수 북쪽 87번 국도


겨울철 아무도 찾지 않는 미바튼 호수와 만났다는 감동에 마음이 촉촉해질 새도 없이, 해가 지고 나자 큰 문제점 하나를 자각하게 되었다. 그건 바로 겨울에 인적이 드문 이곳인 만큼, 운영을 하는 숙소 자체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이곳의 겨울이 워낙 험하고 황량하다 보니 겨울철에는 집을 장기간 비웠다가 날이 풀리는 계절일 때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집들이 많다는 사실을 여행 중에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은 숙소 역시 운영하지 않는 곳이 대다수라는 말과 같았으며, 그 사실이 어느 때보다도 뼈저리게 다가오는 지금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머릿속에 입력되자마자 굶주림과 피곤함이 함께 물밀듯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오늘 하룻밤을 머물 곳을 찾아야 했다.


야큐레이리로 가기에는 이미 해가 져버렸고, 내일 하루 잠시라도 미바튼 호수를 다시 보고 싶었기에 아큐레이리로 100km 정도를 갔다가 다시 이곳까지 100km를 돌아오는 시간 허비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미바튼 호수와 가까운 곳으로 숙소를 잡아야 했는데 그러다가 미바튼 호수를 가로지르는 1번 국도 중간에 북쪽으로 빠지는 87번 국도 중간쯤에 한 숙소를 찾게 되었다. 이 길로 계속 넘어가면 아이슬란드 북쪽의 북극해 방향으로 나가는 항구 도시인 후사비크라는 곳으로 통하는 방향이었고, 그 중간에 있는 고갯길 어딘가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인 모양이었다. '그래 뭐가 되던 지붕에 구멍만 안 뚫려 있으면 잘 수 있겠지'라는 마음에 급하게 예약을 잡고 이미 해가 져버린 87번 국도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2022년 12월 24일 밤, 87번 국도 'B 게스트하우스'
IMG_5710.JPG 그래,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였지.


87번 국도부터 이 숙소까지 체크인하는 과정에서의 사진이 지금 와서 회상해 보니 많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이 순간의 내가 기록을 남기겠다는 여유 같은 것 없이 얼마나 춥고 지쳤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었다. 이 숙소에 대한 인상은 솔직하게는 한국에서 한 때 유행했던 '학교 수련회를 위한 수련원'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었다. 작은 오두막 같은 숙소동 여러 채가 띄엄띄엄 흩어져 있었는데, 각 숙소동 안에 방이 몇 개씩 딸려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 숙소동 건물들 중, 가장 위쪽에 있는 큰집이 식당이자 체크인&아웃을 하는 리셉션의 역할을 겸하는 곳이었다.


체크인을 위해 리셉션 겸 식당 건물로 들어서려던 찰나 창밖으로부터 안쪽에 예쁘게 꾸며놓은 트리와 크리스마스 장식이 보였다.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큰 위안과 따뜻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 도리를 보면 그 친구는 언제나 크리스마스에 설레어하고 늘 크리스마스 팝업과 마켓들을 찾아다니던데, 난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런 것에 대한 로망이 늘 없었다. 사진 하는 사람치고는 참 감정이 메말랐다고 해도 할 말 없을 것이다. 그랬던 나조차도 이 순간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추웠던 마음을 따습게 해주는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그 순간을 아이폰으로라도 급하게 꺼내어 찍자는 마음에 급하게 한 장을 찍고 신발에 잔뜩 묻은 눈을 털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 체크인을 하려고 해. 조금 전에 예약하고 왔어."


"아 그래, 여기 열쇠야. 그리고..."


이용 가능한 편의 시설과, 내 방에는 부엌이 없지만 다른 비어있는 숙소 동의 방에 있는 부엌을 이용해도 된다는 사실 등을 안내받으며 내가 속으로 저녁은 챙겨 먹을 수 있겠다며 안도할 때쯤 리셉션 직원이 내게 다른 말을 꺼내려하고 있었다.


"오늘 크리스마스이브라 게스트하우스 가족들이 모두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를 함께할 계획이거든. 너를 비롯한 다른 투숙객들도 모두 함께 와도 돼. 시간은 8시에 이곳으로 오면 될 거 같아."


오호라, 이건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제안이었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알고 보니 이 게스트 하우스는 가족 사업으로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였고, 그 식구들이 모두 다 같이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투숙객까지 초대해 준다니, 이것은 겨울 미바튼 호수에 이어 또 다른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기분이었다.


"오 정말? 난 너무 좋아. 꼭 시간 맞춰서 이곳으로 올게!"


흔쾌히 인사를 하고 잠시 씻고 몸을 녹이려 내 방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 내 방에는 냉장고가 없었는데 숙소동 입구에 잔뜩 쌓여 있는 눈밭에 갖고 있던 맥주 두 캔을 그 눈밭에 파묻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IMG_5725.HEIC 냉장고가 없어도 아이슬란드는 걱정 없다.


정말 딱 잘 수 있는 침대 하나와 화장실만 딸린 방이었지만, 이 순간 이 보다 아늑하고 좋은 휴식공간은 있을 수 없었다. 눈에 젖은 옷들을 방 안에 널어 말리고, 샤워를 하고 나오니 몸의 모든 피로가 일순간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 상태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리고 싶었지만, 그 상태의 나는 침대에 등만 닿아도 그대로 잠들어 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차마 그러지 못하고 가만히 창가에 앉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로등 너머의 칠흑 같은 아이슬란드 북부의 밤하늘을 응시했다. 그렇게 애써 잠들지 않고 크리스마스 저녁식사까지 시간을 흘려보냈다.



2022년 12월 24일 밤, 게스트하우스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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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만났던 건 부엌 중앙에 고즈넉하게 꾸며놓은 크리스마스트리와 그 트리 아래에서 꼬물거리며 움직이던 귀여운 친구였다. (녀석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보지 못한 게 아쉽다!) 생긴 건 참 개구쟁이처럼 생겼는데 어찌나 그 식구들의 말도 잘 듣고 얌전하던지, 음식 냄새가 부엌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데도 한 번도 짖거나 방방 뛰어다니지도 않고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이런 곳까지 와서 투숙하는 사람이 얼마나 또 있겠나 했는데, 놀랍게도 나 말고도 다른 투숙객이 또 있었는데 독일에서 여행 왔다는 한 부부였다. 많아도 나보다 3-4살 정도 많지 않을까 싶었던 친구들이었는데, 각자 링로드를 돌고 있던 이야기도 나누고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나눌 쯤이었다.


"너희는 어떻게 처음 만나서 결혼하게 됐어?"


"우린 음악 페스티벌 행사에서 처음 만났어... 근데 얘(여자애가 남자애를 가리키며)가 처음에는 굉장히 바보 같은 (다소 의역) 모습이었거든..."


음악 페스티벌에서 처음 만나 결혼까지 했다니 오늘 같은 날 듣기에 딱 좋은 낭만적인 서사라고 생각했다. 그 이야기를 다 들은 나는 반대로 나 역시 결혼과 미래에 가정을 꾸리는 것에 늘 꿈을 꾸고 있지만, 맞는 사람을 찾는 여정이 어려운 것과 전 연인과 헤어지게 된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고 이번에는 그들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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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교환학생 때도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그런 이야기가 한창 무르익을 때쯤 식사 준비가 끝났다. 식당 한편에 뷔페같이 준비된 음식들을 원하는 만큼 덜어서 즐겁게 먹기만 하면 되었다! 모두 먹기 전에 가족 중 가장 어른 되시는 분으로 보이는 한 노인장께서 기도를 드렸고, 우리도 함께 기도를 드린 후 식사를 시작했다.


유럽에서 크리스마스 저녁식사는 사실 교환학생으로 머물던 스페인에 있을 때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유럽의 크리스마스가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은 난 가족 중심적 분위기라고 생각했는데 이방인인 나로서는 완연한 그 느낌을 경험할 수 없었기도 했고, 스페인에 있을 때는 그 시기에 여행을 떠났던 탓도 한몫했다. 그래서 지금의 이 식사 경험이 너무나 소중하고 특별했다. 북부를 지나는 이 기간에 남부와 동부만큼 많은 구경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 아쉬움을 조금은 달래줄 넉넉한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계속 나누며 식사를 즐기고 그렇게 서서히 저물어가는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을 만끽했다. 마지막 트리 아래에 있던 선물을 게스트 하우스 식구들이 서로 뜯어보며 나누는 모습을 흐뭇하고, 조금은 부러운 마음으로 지켜보다가 나는 조용히 따뜻한 차 한잔을 들고 문을 나섰다. 다음 날 또다시 길을 떠나야 하기도 했고, 가능하다면 후사비크 쪽으로 나가 오로라를 또 한 번 노려볼 계획도 곱씹어 보았다.



2022년 12월 25일 이른 아침, 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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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스하고 피로도로 몸이 조금 뻣뻣한 체감을 느끼며 눈을 떴다. 어제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시 차를 몰고 후사비크 마을 어귀까지 나갔었지만, 오로라는 만날 수 없었다. 미바튼 호수에서 오로라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사실 강하게 했었지만 호숫가 주변에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는 위성사진을 보고 그나마 구름이 개여있을 후사비크 쪽으로 고갯길을 넘어가 봤던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그냥 혼자 단란한 야간 드라이브 한번 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전날의 일을 곱씹어보며 침대에서 일어나 쳐두었던 커튼을 걷었는데, 세상에!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폭설이 온 천지를 뒤덮은 세상이었다.


나는 아연실색 한 채로 숙소동 문을 열고 나갔다. 숙소동 현관을 나서자마자 곧바로 땅을 디딘 발이 손가락 마디 3~4개는 족히 될법한 깊이로 푹 빠지는 것을 느꼈다. 우선은 오늘 하루의 도로 사정 정보라도 얻어야 했으니 리셉션 건물동으로 걸었다. 이 순간 어이없고도 웃겼던 것은 밤새 내린 눈 때문에 리셉션까지 가는 길도 온통 눈으로 뒤덮인 채 사라져 있었다. 그냥 그 건물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을 순간이었다.


리셉션에 들어가서 우선 체크아웃에 대한 의사를 전달했는데 호스텔 주인이 나를 바라보며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날씨가 나빠서 도로 통제가 걸릴 것 같은데, 여기서 하루 더 머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여기서 하루를 더? 아큐레이리까지는 100km 남짓인데, 그 거리만 오늘 어떻게든 이동해 놔야 다음날 다시 서부로 이동할 거리를 조금이라도 더 줄일 수 있을 터인데, (이 여행에서 아마도 가장 긴 이동거리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던 터라, 거리를 조금이나도 좁혀놔야 했다.) 그럼 아큐레이리는 사실상 포기하고 곧바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동거리로 바로 서부로 넘어가야 했다.


"아니야. 어떻게든 아큐레이리까지는 가야겠어. 난 오늘 체크아웃하기로 할게"



결국 이번에는 한번 고집을 부리기로 하고, 한번 헤치고 나아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실시간 도로 교통 정보에도 어쨌든 도로 '통제'까지는 아니라고 했으니, 가는 것 자체가 문제는 될 일이 없었다. 그러나 우습게도 이러한 고집은 불과 30분 만에 곧바로 한번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는데, 호스텔 숙소동 입구에서 시동을 걸고 호스텔 입구 어귀 쪽으로 차를 몰려다가 눈이 쌓여 있어 어디가 길일 지를 분간하지 못해 그만 길이 아닌 옆 화단에 빠지고 만 것이다. 화단에 쌓인 눈더미로 빠진 앞바퀴 한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크게 헛돌았다. 이 여행에서 어이없게 당한 두 번째 조난이었다.


해쳐 나아가겠다는 굳은 결심을 한지 몇 분이나 지났다고! 허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어차피 눈밭에 한번 빠질 거면, 도로 한복판에서 빠진 거보다는 호스텔 앞마당에서 빠진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리셉션 쪽으로 올라갔다. 삽이라도 한 자루 빌려 차 앞에 눈을 퍼낼 요량이었다. 내 부탁을 들은 호스텔 주인이 잠시만 기다리라면서 차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후, 운전석에서 기다리던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제설차 한대였다. '도대체 이 동네는 어떤 동네길래 호스텔 주인집에서 제설차를 가지고 있는 거지?!' 생각보다 이곳의 겨울은 더 혹독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내가 오늘 아큐레이리까지 가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무리한 결정이 아니었을까라는 반대급부의 불안감이 슬슬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움직이기로 마음먹었으니 더 이상 망설일 수는 없었다. 곧바로 호스텔 입구를 나서 조심스럽게 어제 미처 보지 못했던 미바튼 호수의 반대편 위쪽 길로 차가 진입했다.



2022년 12월 25일 오전, 미바튼 호수 지역 1번 국도


어렵사리 1번 국도로 접어들며 다시 마주친 미바튼 호수의 모습은 어제의 평온했던 그 모습이 같은 곳이 맞았을까 싶을 만큼 무시무시한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었다. 어제의 미바튼 호수가 평온한 꿈을 꾸고 있었다면, 오늘은 잠에서 깼을 때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만큼의 무시무시한 악몽을 꾸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악몽에 '감히' 발을 들인 나를 미바튼 호수는 쉽게 보내줄 마음이 없는 듯했다. 차량의 와이퍼를 아무리 빠르게 속도를 올려도, 조심스럽게 운전을 해도 눈보라는 계속 내 시야를 가로막았고 위태로운 운전이 계속되었다. 마치 이 악몽이 마치 내 탓이라도 되는 듯 호수는 사정없이 나를 향해 휘몰아쳐댔다. '오늘 일정은 아큐레이리만 무사히 들어가도 대성공이겠어'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미바튼 호수의 악몽을 감상하며 거북이걸음으로 1번 국도를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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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보았던 그곳이 맞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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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설명을 안 해도 자동차 시이드미러의 상태가 모든 설명을 대신할 것.

어제저녁과 마찬가지로 미바튼 호수를 가로질러 가는 길 위엔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정확히는 미바튼 호수에서 이런 모습을 이런 상황에서 마주하고 싶은 이는 아마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나 또한 이런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으니까. 애써 밝게 이야기해 보자면 미바튼 호수에서 눈보라를 홀로 해쳐 나왔다는 술자리 안줏거리와 '이런 모습조차도' 모두 봤다는 그런 추억이 남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차피 느릿하게 가고 있었기에 사진을 찍기 위한 템포 조절은 차고 넘쳤다. 물론 이제는 날 도와줄 제설차 같은 건 없었기 때문에 정차를 중간중간 할 때마다 신중에 신중을 가해야 했다. 자칫 잘못해서 이런 곳에서 조난당했다간 나 하나 구하기 위해 구조대가 출동해야 하는 (이런 경우 구조자에게 모든 출동 비용이 청구된다고 들었다.) 경우가 생길 수 있었는데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지금이야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도 한참이 지난 시점이기에 이 순간을 어느 정도 미화해서 추억할 수 있지만, 사진을 찍으면서도 내내 이 순간을 나아가고 있는 게 잘하는 일이 맞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곳 한 곳에서 삐끗했다가 뒤에 서부로 가는 일정까지 도미노 효과로 같이 망치고 싶지 않았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이미 남부에서 한번 그걸 겪었는데 또다시 그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단순하게 이 순간에만 집중하자면 흩날리는 눈발이 사진에 그대로 생생하게 담기고 있어서 기록의 생동감이 상당히 좋았다. 천천히 차가 1번 국도의 미바튼 호수 구간을 통과했고, 그렇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내 뒷덜미를 붙잡으며 나에게 강렬한 기억만을 심어주던 미바튼 호수를 간신히 떼어내며 작별을 건넸다. 언젠가 또 만날 수 있다면 그때는 서로가 다른 모습으로 만나기를 기원하면서.


안녕. 그 겨울의 미바튼 호수.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 불과 하루 차이로 이렇게 극과 극을 경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눈보라가 아주 잠깐 멎었을 때쯤 미바튼에서 아큐레이리 사이에 있는 고다포스 폭포에 도착했다. 북부에서 계획대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고 다포스만큼은 날 환대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내게 길 정도는 열어준 상태로 방문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듯 그 자리에서 힘차게 흐르고 있었다.


고다포스까지 가는 길에는 사실 긴장감은 없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로 보이는 휴게소 같은 곳의 뒤편으로 5분 정도 비교적 평지를 걸어가면 나오는 곳이었기도 했지만, 앞서 미바튼 호수와 비교적 격렬한 (?) 작별인사를 나눈 직후라 잠시 차를 세우고 안도의 호흡을 내쉬자마자 긴장이 팽팽했다가 한순간 풀려버린 노끈 같은 상태였던 것도 한몫했다.


겨울철 고다포스가 내뿜는 성난 겨울의 기운을 감상하시라.


고다포스의 온전한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데크에 오르자마자 첫 10분 간은 폭포의 기운을 느끼며 잠시 멍하게 구경만 했다. 다른 폭포처럼 높은 곳에 있거나 외딴곳에 숨겨져 있듯 있는 폭포가 아니었는데도 평원에 광활하게 펼쳐진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기운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그렇게 멍하니 수십여분을 가만있다가, 갑자기 몰려드는 추위를 느끼고 이내 서둘러 삼각대를 꺼내기 시작했다. 평소 습관대로면 급하게 펼치다가 삼각대 주머니를 그냥 옆에 던져놓곤 했는데, 여기선 그랬다간 삼각대주머니가 날아가버려 폭포 아래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삼각대 중앙 칼럼 아래 후크에 카라비너로 잘 고정해 둔 채 삼각대를 설치했다. 기왕 기록하는 폭포를 ND필더를 써서 장노출로 담아보기로 한 것이다.


동전의 양면 같은 마음이 들었다. 문득 이 순간을 육안과 카메라 스크린으로 동시에 바라보고 있다는 게 갑자기 괜히 벅차오르고 기분이 좋아서, 잘 찍지 않는 스크린 화면을 폰을 꺼내서 같이 기록했다. 그와 동시에 한편으로는 데티포스를 이렇게 바라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벅찼을까 하는 아쉬움도 동시에 감출 수 없었다. 그렇게 상념에 잠겨 있다가 다시 빠져나와 삼각대에 그 어느 때보다도 단단하고 야무지게 카메라를 고정한 채 셔터를 누른다. 조리개와 감도를 최대한 어둡게 해 둔 채 셔터스피드를 느릿하게 잡아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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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크린을 바라보는 마음이 그렇게도 기분이 좋더라. 그리고 그 결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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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깊은 푸른색과, 그 푸른색을 빠르게 소용돌이치며 내리 떨어지게 하는 그 힘. 그 힘을 실제로 거스를 순 없지만 적어도 내가 규정한 스크린 속 세상에서는 그게 가능했다. 해리포터에서 정제된 기억을 유리병에 담아 펜시브에서 다시 들여다볼 수 있듯, 그 어떤 기록보다도 생생하게 나중에도 기억하겠다는 각오로 한 장 한 장 신중하게 고다포스를 담았다. 바람에도 삼각대가 넘어가지 않고 잘 버텨줬다. 그 모습의 삼각대와 카메라가 마치 이 북부를 위태위태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지나고 있는 내 모습과도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오늘 같은 험한 날씨에 미바튼 호수를 빠져나온 것도 이미 스스로 대견한 일이었지만, 아직 이곳에서 아큐레이리까지는 5~60km 정도의 길이 남아 있었다. 평소였다면 단숨에 갔을 길이지만, 오늘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었다. 잠시 고다포스 주차장의 휴게소에서 간단한 기념품 몇 개를 사고, 몸을 녹였다가 얼른 다시 갈 길을 재촉하기로 했다.



2022년 12월 25일 오후, 1번 국도 (고다포스에서 아큐레이리 가는 길)


이후 고다포스에서 아큐레이리까지 가는 구간은 5-60km였지만, 체감상 나는 이 여행에서 가장 길었던 길이라고 아직도 회상한다. 북부에서 서부로 넘어가던 이다음날의 약 400km 이동 거리 보다도 길었다. 고다포스까지 간신히 본 나에게 이제 목표는 아큐레이리까지만 무사히 들어가는 것이었지만 북부의 1번 국도는 내게 그 조차도 쉽게 허락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고다포스에서 아큐레이리로 들어가는 길은 총 2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1번 국도를 계속 타다가 마지막에 유료 터널을 질러 들어가는 길이 있었고, 아래쪽으로 돌아가는 국도로 통해 도시로 들어가는 길이 있었다. 어느 길을 탈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지만, 우선은 당장의 안전에 집중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강풍에 차가 흔들리고 거센 바람에 흩날리는 눈은 계속해서 나의 시야를 방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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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흐렸으니 일몰 시간 훨씬 전이었어도 이미 저녁과 같은 기분이 났다.

어느덧, 내비게이션에는 아큐레이리까지 남은 거리가 약 20km 남짓으로 뜨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돼' 라며 스스로에게 되뇔 때쯤 일순간 어마어마한 눈보라가 휘날리기 시작했다. 눈보라는 이내 순식간에 나와 차를 휘감더니 앞뒤 좌우로 온통 흰색 이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야가 되었을 때는 나 자신에 대한 그 어떤 믿음이더라도 일순간 크게 요동친다는 것을 그때 느꼈다. 핸들을 똑바로 잡고 있어도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지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두들겼고, 내 앞뒤로도 차가 각각 한 대씩 같은 차선에서 가고 있는 중이었다.


'맙소사, 이건 뒤차가 날 박더라도 어쩔 수 없는 거야'


절망에 가까운 기분으로 나는 비상등을 켠 채, 상향등을 함께 올리고 속도를 시속 10km로 서행하기 시작했고 핸들이 조금이라도 틀어지지 않도록 손 마디마디가 아플 만큼 핸들을 꽉 움켜쥐었다. (정말로 뒤차가 10km로 서행하는 나를 미처 못 보고 뒤에서 박더라도 이게 최선이었다.) 이곳에서 차선 밖으로 벗어나 눈밭에 빠지는 순간에는 그야말로 끝장이었다. 조난당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이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 터널 통행료가 아까우니 국도로 돌아갈 수 있으면 돌아가볼까 생각했던 마음 같은 것은 이미 저 멀리 날아간 후였다. 오히려 그 유료 터널이 10만 원의 통행료를 부과한다고 하더라도 이 여행의 가장 큰 위험을 통과하고 있는 이 순간의 나는 기꺼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지치고 정신없던 와중에도 마을 초입에 도착하여 이걸 찍었다.
2022년 12월 25일 저녁, 아큐레이리 초입


힘겨운 전진 끝에 유료터널의 입구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눈보라가 가린 시야를 뚫고 들어오자 나는 드디어 살았다는 마음에 혼자 운전하던 차 안에서 외마디 탄식을 내질렀다. 지체 없이 터널로 진입하였고, 터널에서만 약 6~7km 정도를 달렸던 것 같다. 언제쯤 끝날까 하는 생각과 그래도 일단 아큐레이리는 잘 들어가겠다는 긴장감이 풀림과 이 날 하루의 피로가 한 번에 몰려옴을 느낄 때쯤 터널의 반대편 끝이 보였다.


터널을 지나 마침내 도착해 낸 아이슬란드 북부의 심장인 이 도시, 아큐레이리였다. 도시에 진입해서도 여전히 눈이 거세게 내리고 있었지만, 이제는 안심할 수 있을 터였다. 오던 길에 당일 예약을 걸어둔 호스텔이 있는 거리에 도착하니, 전용 주차장이 별도로 없어 호스텔 주변 길가에 주차를 해야 했지만 크리스마스 저녁이었고 도심에 조차도 정말 단 한 명의 사람도 보이지 않았기에 문제 될 것은 없었다.


IMG_5746.HEIC 이다음날 아큐레이리에서 서부로 떠날 때 당시에 눈을 맞은 모습의 차. 그나마 치운 게 이 정도였다.
IMG_5740_jpg.JPG 호스텔에 도착하여 정신없이 해치운 저녁.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2022년 12월 25일 저녁, 아큐레이리 도심


무사히 따뜻한 곳에서 저녁을 해 먹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이 날 만큼 감사한 날은 없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식재료를 털어서 계란과 베이컨, 그리고 빵 몇 조각을 단숨에 해치워낸 나였다. 불과 어제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으로는 아늑한 곳에서 제법 감성 넘치는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천국에서 지옥을 오갔다는 생각에 혼자 실소를 터트렸다.


미바튼 호수에서부터 본 바와 똑같이, 아이슬란드 제2의 도시라는 아큐레이리 역시 크리스마스 저녁 도심에는 사람 하나 없는 유령도시와 같은 모습이었다. 볼거리가 단 하나도 없을 터였지만, 그래도 이 도시에 왔으니 도심을 조금은 구경하기로 마음먹고 산책을 나가기 위해 가방에 카메라를 챙기고 방한구로 단단히 무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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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비아트릭스 포터 작가가 쓴 피터래빗 동화 시리즈에 보면 <글로스터의 재봉사>라는 에피소드가 있다. 연말 마감일까지 귀족들을 위한 코트를 만들어야 하는데, 작중에 보면 눈보라가 거세게 치는 겨울날 거리를 걸어가는 재봉사의 모습이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이 순간의 내가 영락없는 그 꼴이었다. 그 어릴 때도 그 작품을 보면서 겨울철 혼자 쓸쓸하게 걸어가는 재봉사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느껴진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내가 정확하게 몇십 년이 지난 후 아큐레이리에서 이렇게 걷고 있었다.


그래도 위험을 벗어나고, 배고픔을 해결하니 외롭지만 그래도 나름 눈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아큐레이리의 모습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아마 인파로 붐볐다면 더 아름다웠을 밤거리였을 테지만, 미바튼 호수의 모습과 같이 온전한 크리스마스 저녁의 이 거리를 나 혼자 소소하게 즐기는 것도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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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광장에 홀로 외롭게 빛나고 있던 트리

그러다가 도심 중앙 광장에서 (서울의 명동 밀리오레 앞, 신촌역의 잠망경 앞 정도의 그런 곳이었다) 홀로 외롭게 서있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났다. 정말 주변의 모든 존재들보다도 독보적으로 빛나던 채 흩날리는 눈을 맞고 있는 모습이 제법 멋지다고 생각해 제법 집중해서 카메라로 담았다. 고된 여정 끝에 위기를 벗어나 마침내 빛에 도달하는 오늘의 서사가 생각나기도 하여 몇 분 동안은 가만히 그 트리를 감상하며 서 있었던 것 같다.


가만히 서 있다가 크리스마스트리에게 대답이 돌아오지도 않을 질문을 문득 던졌다. "그래서 이 북부 구간의 여정에서 내게 남은 게 무엇이죠?" 결국 북부에서의 나는 데티포스와 만나지도 못했고, 오로라도 이 구간에 만나지 못했고, 되려 미바튼 호수가 꾸던 악몽에 잡아먹힐 뻔했으며, 아큐레이리 역시 날 반겨주지 않았다. 물론 크리스마스이브의 저녁 식사는 근사 했지만 말이다. 남부와 동부를 지나온 길을 생각하면 사실 내게 남은 것은 그리 많지 았았다는 생각이 앞섰다.


저 날 밤의 나는 그 답을 내리지 못한 채 하루를 마무리해야 했지만, 지금의 내가 대신 답을 잠시 내려보자면 아마도 그것 역시 END가 아닌 AND의 의미가 아닐까라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 감정이 많이 갈무리된 지금 시점에 생각해 본다. 돌이켜보면 내가 했던 모든 여행들은 언제나 간절히 꾸던 꿈들이 조금씩 쌓여 하나의 거대한 실현이 되었던 여행도 있었고, 때로는 큰 아쉬움을 남기던 여정에서 다시 한번 파생이 되어 또 한 번의 다른 여행으로 그것을 새롭게 채워나가는 일도 있었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독도를 정말로 가게 되었던 일도 그랬고, 지금 이 아이슬란드의 여정조차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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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이 여정을 '대숲사진가의 끝이자 마지막 여정'으로 정의하곤 했다. 많은 이들이 나의 이런 거창한 발언에 동의하진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갤럭시는 유독 내 주변 사람들 중에서 그것을 가장 크게 반박하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한번 마침표를 찍었다가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라고 늘 나의 말을 자르며 뒤에 덧붙이곤 했다. 결국 그 말이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이 여행 또한 끝이 아닌 또 다른 미래로 가는 한 과정이 될 것이었다.


아이슬란드를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고, 누구와 어떤 시점일지도 알 길이 없다. 어쩌면 내가 사는 동안에 다시 한번의 기회가 요원할지도 모르는 여정이다. 그렇지만 이런 아쉬움을 남겨두고 떠나는 도시는 또 그것대로 기억에 남을 테고 그것은 또 다른 여정의 씨앗이 되어 다른 나무로 자라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그때는 이런 겨울이 아닌 아마도 여름의 하이랜드를 가면서 중간에 북부를 들리고 싶어 하지 않을까. 그조차도 아니라면 아마 아이슬란드에서 가치관의 확립과 변화를 받아들인 내가 또 다른 새로운 한 페이지를 넘겨낼 수도 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서부터 크리스마스 사이에 있던 이 시간, 나는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그런 끝없는 생각의 꼬리를 무는 기나긴 길 위를 걷고 있었다. 결국 눈이 다시 거세게 내리기 시작해 다시 숙소로 들어가 그런 생각들을 애써 지운 채 다음 날 다시 일찍 서부로 떠날 채비를 해야 했지만, 잠시 글의 시점을 벗어나 지금의 내가 저 때의 나에게 다시 이야기해 주고 싶다. 다른 여정은 또 언제든지 기다리고 있을 테니 또다시 일상에서 열심히 살자고 말이다. 끝은 곧 또 다른 시작과도 같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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