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에 살게 되었다

예측할 수 없는 삶은 이곳에 불시착한다

by 대숲사진가
다시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예상과는 한참 벗어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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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최고의 번화가 부킷빈탕

아이슬란드라는 대숲사진가의 가장 큰 목표를 이후고 나서 다시 수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굵직한 이야기가 많이 쌓였고, 당연히 나의 소재들인 사진과 이야기들이 많이 쌓였기에 어떤 이야기부터 적어볼까 하는 고민이 컸다. 하지만 이제는 어렵게 운을 뗄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이 든다.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살게 되었어요."라고.


유럽은 많이 다녔지만, 동남아에서의 경험은 일천했던 내가 그중에서도 한국인에게 비교적 덜 알려진 말레이시아라는 사실 나와 전혀 연이 없는 나라일 것이라고만 믿었다. 내가 처음으로 말레이시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이슬란드를 다녀온 이후의 대숲사진가가 '그다음 여행지로 회사에서 휴가를 내면 어디로 갈까'라는 시시콜콜한 고민을 하면서 문득 말레이시아의 페낭 조지타운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때만 해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 쿠알라룸푸르와 페낭 지역에 대해 조사해보면서 '오 좀 재밌어 보이겠네' 정도의 반응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당시에 조지타운 여행이 결국 동행의 사정으로 무산되어버리는 바람에 그 조차도 없던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이내 내 마음속 깊고 먼 곳으로 잠시 사라져 있던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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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를 써내려 가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의 지나온 시간에 대해 좀 더 담담해지는 자세가 필요했다.


지난 직장을 퇴사한 이후로 점점 상황이 어려워져 가는 한국의 이직 시장 현황과 맞물려 퇴사 후 나의 공백기는 점점 길어지고 있던 찰나였다. 사실 '글 쓰는 사진가'로서의 정체성도 제법 많이 무뎌지고 있던 상태였다. 먹고살기가 퍽퍽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했으니까, 카메라와 키보드에서도 잠시 손을 떼야만 했다.


글과 사진은커녕 사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많이 무감해지고 무뎌지던 이 시기였다. '마케터로서의 내가 이직 시장에서 그렇게나 가치가 없는 것일까'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미 수십 번도 더 허공에 외쳐댔었고 어떤 면접에서는 이미 사실상 결과가 결정나버린 면접에서 면접관과 그냥 허심탄회하게 지금의 내가 무엇이 문제일까 하는 일종의 상담 같은 자리가 되어버린 채 담소를 나누고 돌아온 자리도 있었다.


플랫폼과 자리를 가리지 않고 넣었던 서류들이 못해도 2~3000개는 되었을 이 시기에서 자신에 대한 의구심 보다도 견디기 힘들었던 아마도 나에게 걸고, 기대하던 주변의 가까운 이들과 가족들이 같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시기를 어서 끊어내고 새로운 전환을 마련해야 했지만 결국 그것을 해내는 일 또한 나의 손으로 해야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살았고, 글과 사진과도 그렇게 잠시 멀어진 채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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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서류 지원 공고를 계속 뒤적이던 나의 눈에 이곳의 공고가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말레이시아에 있는 회사에서 구인을 한다는 공고였다. 해외 기업에 대한 가능성도 당연히 모두 염두에 두고 있던 나였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지원을 했고, 한 번의 면접 이후에 합격 공지를 받았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설마 진짜 말레이시아 가겠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놀랍게도 합격 연락까지도 받았지만 실감이 전혀 나지 않았던 것 같다. 또한 합격 연락을 받았더라도 이곳까지 입국하는 그 과정에 수많은 서류 제출, HR팀과 계속 오고 가야만 했던 연락들, 계속 딜레이 되어 확정이 나지 않고 있던 나의 입국날짜까지. 그 모든 것들이 맞물려서 나는 계속 원래 살던 대로 일상에 충실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을 다녀와 채용공고에 서류를 넣고, 평일에는 운동을 갔으며, 엄마의 도서관 출퇴근 운전을 도와드렸고, 집에 있는 동안 집안일을 계속 거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최종 합류일이 '정말로' 확정되어버렸다는 연락을 받았다. 밭 가는 소처럼 묵묵하게 흘러가던 시간이 이 순간부터 일순간 아주 빠른 속도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 몇몇에게는 조용히 인사를 전했고, 가족들과 마지막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함께 보냈다. 그리고 이곳에 가지고 들어와야 할 것들을 점검하고 차분히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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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024년 10월 29일의 새벽, 나는 인천국제공항의 쿠알라룸푸르행 비행기에 탑승하는 게이트 앞에 섰다. 이 순간의 감정을 정의할 수 없었지만, 분명 교환학생을 출발할 때나 큰 여행을 출발할 때의 그 감정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어찌 보면 인생의 중요한 시기의 한 조각을 걸고 또다시 새로운 싸움을 하러 간다는 감정일지도 몰랐다. 지난날의 나 자신과 싸워가는 시간은 끝났지만, 이제는 전혀 모르던 곳에서, 해보지 않았던 일을 떠나는 것이었으니까. 그런 울렁거리던 감정과 익숙했던 모든 존재들을 뒤로한다는 울컥함을 조금 가라앉히고 '그럼에도 이곳으로 떠나는 일에도 역시 의미와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을 할 때쯤 게이트가 열리고 탑승을 시작했다. 행선지는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였다.


쿠알라룸푸르 KLIA2에 도착했던 순간


그러했던 첫 순간으로부터 이제는 약 5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예기치 못한 불시착 이후 어느 정도는 안정을 점점 찾아감을 느끼기에, 이제부터는 지나온 시간과, 현재의 이야기를 써나가보려 한다. 예기치 못한 삶의 궤적이었지만, 다시 한번 대숲사진가가 사진과 글이 쌓이게 될 이곳 말레이시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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